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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술이 부른 침묵과 유보가 필요한 이유에 관하여

쉬는날 효자동 어느 낡은 노포에서

by 구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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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 마시는 술은 밤의 술과 다르다.

그것은 취하려는 의지보다 멈추려는 마음에 가깝다. 밤의 술이 하루를 견디기 위한 보상이라면, 낮술은 하루를 잠시 내려놓는 선택이다. 아직 해가 높이 떠 있고, 세상은 분주한데, 그 흐름에서 살짝 비켜 서는 일. 낮술은 그 작은 이탈에서 시작된다. 남들과 다르게 주말에 일하고 평일에 쉬는 세계 사는 나에게 가장 좋은 시간은 가끔씩 즐기는 낮술이다.



효자동을 걷고 싶어 여기저기 흩어진 흔적들을 밟는다.

발이 가는대로, 머리는 자연스런 생각을 하게 내버려 두고, 햇살이 좋은 쪽을 따라 걷다가, 밝은 햇살이 싫어지면 그늘을 찾아 걷는다. 그렇게 걷다가 멈춰선 아름답고 소박한 작은 노포에 앉아 낮술을 즐긴다.



낮술의 가장 큰 미덕은 핑계가 필요 없다는 것이다.

밤이 되면 우리는 술을 마시기 위해 이유를 만든다. 수고했다는 말, 위로받아야 한다는 명분, 혹은 잊어야 할 어떤 사연. 그러나 낮술 앞에서는 그런 서사가 불필요하다. 그런 낮술을 나는 좋아한다. 쉬는 날이면 어딘가 앉아 홀로 즐기는 소주 한 잔이 그렇게 달콤하기 때문이다. 그냥 날이 좋다는 이유, 햇빛이 과분하다는 이유, 걷다가 문득 멈추고 싶었다는 이유면 충분하다.



낮술은 인생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몇 안 되는 순간이다.

효자동을 걷다가 들린 작은 노포에서 마시는 낮술이 작지만 훌륭한 자유를 선사하고 있다. 주말에 못쉬지만 남들은 일하는 평일에 쉴 수 있다는 것이 훌륭한 안주가 되기도 하다. 억울할 거 없는 평등이 여기 있다.



낮에 술잔을 들면 시간의 감각이 달라진다.

시계는 여전히 가고 있지만, 마음은 더 이상 쫓기지 않는다. 오후가 아직 남아 있다는 사실, 오늘이 끝나지 않았다는 여유는 술을 독하게 만들지 않는다. 그래서 낮술은 과하지 않다. 취함보다 느슨함에 가깝고, 망각보다 관조에 가깝다.



" 뭐하는 사람이야? "

" 날라리에요. 할머니. 파전 하나랑 처음처럼 한 병 주시죠."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멀대같이 큰 키에 드리워진 그림자에 호기심이 생기셨는지, 노포 주인장 할매는 작은 테이블에 앉아 있는 나에 대해 궁금하셨던 모양이었다. '날라리'라고 대답하고 나서 나도 모르게 그 대답에 흡족해 했다. 할매도 피식 웃으신다. 기름 냄새가 이렇게 좋았던가. 지글거리기 시작한 파전이 익는 소리가 술을 부른다. 허름하지만 세월의 냄새가 가득 베인 곳을 좋아한다. 묵뚝뚝한 할매도 마음에 들고 자주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낮술을 마시는 사람은 대개 말수가 적어진다. 원래도 말이 없지만 모든 것은 침묵에 가까워진다.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지나가는 사람들, 벽에 비친 햇빛, 유리창 너머의 거리. 이 모든 것이 대화 상대가 된다.



낮술은 세계를 다시 보게 한다.

늘 지나치던 장면들이 갑자기 또렷해지고, 아무 의미 없던 풍경이 사소한 위로가 된다. 또 하나, 낮술은 자신에게 솔직해질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한다. 밤의 술이 감정을 과장한다면, 낮술은 감정을 정리한다. 무엇이 불만이었는지, 무엇이 사실은 괜찮았는지, 어떤 욕심이 나를 피곤하게 했는지. 술기운 속에서도 생각은 맑고, 판단은 의외로 정직하다. 그래서 낮술은 후회보다 깨달음을 남길 때가 많다.



비스듬히 들어오는 흐릿한 햇살이 보기 좋아 만지작 거린다.

문득, '양들의 침묵'과 '미저리'라는 영화가 생각났다. 침묵과 집착. 칼. 망상. 부러짐. 지난 밤 마저 다 읽었던 알베르 카뮈의 행복한 죽음. '대단한 사랑까지도 모든 것이 다, 결국은 잊히는 거야.' 라는 카뮈가 내게 남겨진 문구. 그리고 걷는 내내 나를 따라다니는 스토커같은 그림자까지도 만지작 거린다. 너는 대체 뭐냐고 물어도 답은 없다. 쉬는 날에 현실 도피가 즐거워지기 시작한다.



물론 낮술은 도피가 아니다.

오히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잠깐의 정지다. 세상과 거리를 두었다가, 다시 그 안으로 들어가기 위한 숨 고르기. 낮술이 끝나면 우리는 다시 걷는다. 아직 해는 남아 있고, 오늘은 완전히 쓰이지 않았다는 사실이 마음을 가볍게 한다.



그래서 낮술이 좋은 이유는 단순하다.

그것은 삶을 더 사랑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더 많이가 아니라, 더 천천히. 더 크게가 아니라, 더 가까이. 낮술은 인생을 흐트러뜨리지 않는다. 오히려 잠시 내려놓음으로써, 다시 제대로 붙잡게 해준다.



홀로 낮술을 즐기다가 작은 창으로 스며드는 빛을 안주 삼으니 문득 침묵과 유보라는 말이 떠올랐다.

세상은 말로 가득 차 있다. 말은 속도이고, 속도는 미덕이 되었다. 우리는 즉각적인 의견을 요구받고, 망설임 없는 태도를 능력이라 부른다.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답을 내놓는 사람, 사건이 발생하자마자 입장을 밝히는 사람이 성실한 시민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이 과잉의 언어 속에서 점점 희귀해지는 것이 있다. 침묵, 그리고 유보이다.



침묵은 흔히 오해받는다. 무책임하거나 비겁한 태도로, 혹은 생각이 없다는 증거로 해석된다.

하지만 침묵은 언제나 비어 있지 않다. 오히려 가장 많은 생각이 머무는 자리다. 말이 세계를 밀어붙이는 힘이라면, 침묵은 세계를 가만히 견디는 힘이다. 침묵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사물의 결을 느끼고, 타인의 숨결을 상상한다.



유보 또한 마찬가지다. 판단을 유보한다는 것은 결정을 미루는 소극성이 아니다.

그것은 세계가 단순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적극적인 태도다. 우리는 종종 너무 빨리 단정한다. 한 사람을 몇 개의 정보로 요약하고, 한 사건을 한 줄의 문장으로 규정한다. 그러나 삶은 요약되지 않는다. 삶은 늘 문장 밖에서 울리고, 말해지지 않은 부분에서 가장 치열하다.



침묵과 유보가 필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우리가 말을 아끼는 순간, 타인의 삶은 비로소 말할 기회를 얻는다. 내가 판단을 미루는 동안, 세계는 나에게 더 많은 얼굴을 보여준다. 급하게 내린 결론은 나를 안심시킬 수는 있어도, 진실에 가까이 데려다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진실은 늘 망설이는 자의 곁에 오래 머문다.



특히 누군가의 삶이 걸린 순간일수록 침묵은 윤리가 된다.

한마디의 평가, 하나의 결정이 타인의 존엄을 흔들 수 있을 때, 말은 칼이 되고 판단은 낙인이 된다. 그때 필요한 것은 또렷한 의견이 아니라, 충분한 멈춤이다. 침묵은 그 멈춤의 형식이며, 유보는 책임의 다른 이름이다.



우리는 침묵 속에서 자신을 마주한다. 나는 이런 시간을 즐기고 좋아한다.

왜 나는 이렇게 빨리 말하고 싶었는가. 왜 이 결론이 나를 편안하게 만드는가. 이 질문들은 말보다 느리게 오지만, 훨씬 깊이 스며든다. 침묵은 자기 성찰의 공간이고, 유보는 오만함을 내려놓는 연습이다. 모든 것을 안다는 태도 대신, 아직 모른다는 자세를 선택하는 일. 그것이 인간을 성숙하게 만든다.



현대 사회는 침묵을 견디지 못한다.

공백은 곧바로 채워져야 하고, 유보는 무능으로 오해받는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큰 비극은 언제나 성급한 확신에서 시작된다. 확신은 생각을 멈추게 하고, 멈춘 생각은 타인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해하지 못한 타인에게 우리는 너무 쉽게 상처를 준다.



그래서 침묵과 유보는 약함이 아니라 용기다.

말하지 않을 용기, 결정하지 않을 용기, 그리고 충분히 흔들릴 용기. 그 흔들림 속에서 우리는 타인의 삶을 함부로 다루지 않는 법을 배운다. 침묵은 회피가 아니라 배려이고, 유보는 무책임이 아니라 존중이다.



어쩌면 우리가 더 나은 사회를 꿈꾼다면, 더 많은 말이 아니라 더 깊은 침묵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더 빠른 판단이 아니라 더 오래 머무는 유보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말하지 않은 문장들, 결정되지 않은 선택들 속에서 인간은 서로를 조금 덜 다치게 하며 살아갈 수 있다. 침묵과 유보는 그렇게, 세상을 늦추는 가장 인간적인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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