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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속에서 작은 세상을 넘겨 본다

아무것도 고치지 않은 언어의 밤

by 구시안


하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붉은빛은 이유 없이 번졌다.

나는 그 앞에서 아무 잘못도 하지 않은 사람처럼 괜히 숨을 죽였다. 세상은 늘 보호라는 말로 벽을 쌓고 불안이라는 이름의 어두운 방을 만든다.



그 안에서 사람들은 체온을 잃어가며 서로의 온도를 묻기만 한다.

열을 주었으나 돌아오는 것은 차가운 공기뿐. 손바닥 위에 남은 것은 전해지지 못한 비슷한 마음의 돌림노래같은 잔향들 뿐이다.



이불은 가장 얇은 요새였다.

어린 시절처럼 빛 하나 들여놓고 책장을 넘기면 글자들은 총알 대신 별이 되어 머리 위로 떨어지곤 했다. 그때의 말똥 했던 눈이 그립다.



어제와 같은 하루를 반복하면서 다른 내일을 기대하는 일은 어쩌면 가장 인간적인 모순일지도 모른다.

아인슈타인은 그것을 광기의 시작이라 불렀지만, 그의 문장은 언제나 그렇듯 지나치게 명료해서 오히려 마음을 찌른다. 너무 당연해서, 그래서 더 쉽게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문장. 천재가 남긴 말의 마력은 아마도 거기에서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요즘의 나는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보고 있다.

일은 여전히 일이고, 세상은 여전히 빠르게 흘러가지만, 그 사이에 다시 조금 더 많은 책을 끼워 넣기로 했다. 미친 듯이 읽어보자 해도 눈이 따라와 주질 않았다. 노안이 온 것일까. 시간은 주는 것도 많지만, 뺏는 것도 많다는 사실을 잠시 잊고 산뜻 바쁜 나날이 흩어지고 있었다.



퇴근길 큰 책방에 들려 요새 관심이 가는 작가인 '박웅현'작가의 모든 책을 집어 들었다.

이 책을 쓴 사람도 책의 두께도 색깔도 마음에 들었다. 오랜만에 마음이 가는 사람을 만났다.

'여덟 단어'라는 하늘색의 책으로 시작해 보자 해서 펼친 책자에는 좋은 글귀가 많았다. 예전 같으면 금세 읽어버리고 생각에 잠들 텐데. 세월은 선명함을 필요로 하는 눈을 흐리게 만들고 있었다. 그것이 서러워지는 것일까. 공허감은 이럴 때 온다는 것을 알면서도 익숙해지지 못하는 것은 여전했다. 현실적 문맹을 만들어 가고 있는 세월이 야속하기라도 한 걸까. 이런 생각은 접어버리는 게 좋다.



서울을 잠시 벗어나 바라보는 하늘은 더럽게 아름다웠다.

언제 저런 하늘을 봤었는지도 가물가물하다. 담배를 하나 물고 서성거리며 물드는 하늘을 바라본다. 차가운 바람. 머리에서 뚝뚝 떨어지는 생각들. 서울과 얼마 떨어지지도 않은 곳에 폐 속으로 빨려 들어오는 공기가 달랐다. 달리다가 멈춰 선 곳에서 바라보는 하늘은 거짓말처럼 아름답게 물들고 있었다. 왜 이런 풍경에 마음은 흔들리는 것일까. 이게 뭐라고.



잡생각이 사라지기를 바라며 활자에 마음을 기대는 일. 또 하나의 불안 탈출구는 우리가 읽는 책일 것이다.

페이지를 넘기는 동안만큼은 머릿속이 잠잠해진다. 생각이 사라진 다기보다는, 생각들이 제자리를 찾는 느낌에 가깝다. 타인이 쓴 책이라는 것을 통해 그들의 세계에 들어가 보는 것은 어릴 적부터 이어지던 것이었다. 책은 친구이자 가족 같은 것이었다. 세월에 흐릿해지는 눈처럼. 인생도 그런 것처럼. 서울을 잠시 벗어나 바람을 쐬는 곳에서 바라보는 노을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눈도 물들고, 세월도 물들고, 어느새 나도 물들고 있다.

가진 것을 소모하며 살아가는 생명체에게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회사든 주변이든 여전히 똑같은 말들이 반복되고 있을 뿐이었다. 뻔한 감성팔이들. 거지같은 따라쟁이들.

눈깔이 이미 사후세계인 그들은 도파민에 중독되어 있었다. 가볍게 던지는 말들에 가볍게 스며드는 그 미소가 싫었다. 여전히 나는 입을 다문채 생활을 하고 있다. 듣고는 있으나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것들은 일의 선상에서 여러 겹의 고운 채에 걸러내는 것뿐이다. 사람들은 여전히 상처받기 싫어서, 더 이상 손해 보기 싫어서, 이용당하고 싶지 않아서 스스로 보호막을 친다고 말한다. 그놈의 방어기제. 늘 비슷한 이유들이다. 뻔한 이유들.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것은 보호라기보다는 변명에 가까운 말들이다.

이미 겪은 일들, 이미 지나온 상처들. 누구나 한 번쯤은 겪었을 법한 이야기들을 각자의 인생에서 ‘가장 큰 사건’처럼 붙잡고 있는 모습이 겹쳐 보인다. 어쩌면 사람들의 경험은 생각보다 훨씬 닮아 있는지도 모른다. 다만 비교를 거부하는 이유는, 자신이 겪은 고통이 이미 최고치라고 믿고 싶어서일 것이다. 인간 모두가 자신이 주인공이 되야지만 직성이 풀리는 종일수도 있다. 그러면서도 관계를 맺고 또다시 상처를 입고를 반복을 하면서 말이다. 어쩌면 인간관계는 듣기 싫은 핑계만 늘어나는 일처럼 쓸모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우리는 말을 반복한다. 그리고 번복을 한다.
스스로는 절대 해결하지 않기 위해 남에게 의지하려 한다. 스스로를 달래기 위해서. “괜찮아질 거야”라는 문장은 이미 죽은 새처럼 바닥에 누워 있는데도 우리는 계속 그 깃털을 쓰다듬는다. 여전히 스스로는 아무것도 해결하지 않고서 말이다.



나이가 들수록 마음이 딱딱해진다는 말이 있다. 나는 부드러워본 적도 없지만 이 말이 이해 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굳어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잠을 청해도 잠이 오지 않는 밤, 손에서 떨어지지 않는 휴대전화, 이미 벌어진 일들에 대한 뉴스와 그 뉴스 위에 덧씌워진 날조들. 언젠가 또 창궐할 바이러스는 여전히 전진하고, 세상을 덮은 공포는 어느새 불안이 아니라 체념에 가까운 기다림으로 변해 있을 뿐이다.



이 불안 속에서 이불 안으로 들어가 안정을 찾는 일은 어리석다.

잠시 서울을 조금 벗어나서 잿빛이 아닌 다름 그림이 펼쳐지는 것을 보고는 마치 서울은 인구의 집중도만큼이나 가려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잠시 그 하늘을 바라보며 오랜만에 바라보는 물들어가는 하늘에는 또 한 해가 묻어가버리고 있었다.



싫은 걸 싫다고 말하고. 좋은 걸 좋다고 말하는 나 같은 인간은 호불호가 갈린다.

사회에 나와 그렇게 나눠진 그룹들의 선택을 신경 쓰며 살진 않았다. 여전히 나는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면서도 작은 정하나가 얼마나 큰 시한폭탄 같은 것인지를 배웠기 때문이다. 인간관계의 흥미를 잃어버리고 난 후 찾은 것이 문학과 예술이라는 세계였지만, 그 안에서도 완벽한 해소는 없었다. 사람이 관계에 상처를 받고도 또 사람을 찾게 되는 어리석은 짓을 하는 것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인간이 아닌 듯하다. 여전히 십여간 어떠한 인간관계를 맺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



혼자만의 단점은 불안이라는 새끼랑 맞다를 벌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방법이 없을 때, 가장 편안한 곳은 가장 초라한 피난처이기도 하다. 불안을 숨기기에 이불만 한 공간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명한 사람은 빈틈없는 사람이 아니라 쉴 틈을 만드는 사람이라는 말이 문득 떠올랐다. 잘 산다는 것은 바쁘게 사는 것과 다를 텐데, 우리는 종종 그 둘을 착각한다. 숨을 고를 정거장이 필요하지만, 요즘의 정거장은 휴식이 아니라 불안이다. 오히려 익숙해져 갈수록 이 불안도 제법 재밌는 새끼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린 시절, 이불로 만든 텐트 안에서 플래시를 켜고 읽던 책은 이상하게도 집중이 잘 됐다.

얇은 천 한 장이 전부였지만, 그 안은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공간이었다. 공포영화 속 아이들이 늘 이불을 뒤집어쓰는 이유도 비슷할 것이다. 그것이 실제로 보호해 주기 때문이 아니라, 보호받고 있다고 믿게 해 주기 때문에.



겨울이 오고, 맑았던 하늘은 점점 뿌옇게 변해간다.

밤하늘을 보고도 알 수 있다. 어딘가에서는 이미 보일러가 가동되고 있다는 사실을. 숨이 막혀오는 날들 속에서, 내가 살고 있는 나라의 위치를 원망해 봐야 지도를 바꿀 수는 없다. 중독처럼 번져가는 오염과 공포 속에서 가장 맑은 곳을 찾아내는 일은 시간이 갈수록 더 어려워질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모르는 사이, 이미 너무 많은 것들이 오염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스며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도미노처럼 퍼져가는 중독 증세는 어느덧 1년을 넘어섰다.

이제는 내가 가진 온도 10을 건네도 상대는 1도 느끼지 못할 만큼 세상은 차가워졌다. 사람들은 스스로를 보호하기보다는 벽을 쌓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관계는 점점 닫히고, 사람들의 온도는 예전과 확연히 달라졌다. 날씨만 추워진 것이 아니라, 사람의 체온도 함께 낮아진 것이다.



즐거운 얼굴로 하루를 보내려 애써보지만, 아무도 없는 집에 돌아와 거울을 마주하면 그 안의 나는 웃음기 없는 얼굴로 서 있다. 보호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감추기를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차갑고 눅눅한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라는 변명은 이제 그만둬야 할 때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에게 없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이유와 여유일 것이다.

해가 저물고, 하늘은 물든다. 그 노을에는 특별한 이유가 없다. 그저 그렇게 하루가 끝났다는 신호일뿐이다. 불안 속에서도, 이불 안에서라도, 잠시 숨을 고르며 생각한다. 내일은 오늘과 다를까. 아니면 같은 하루를 살며 또 다른 내일을 기대하게 될까. 그 질문을 품은 채, 다시 돌아온 집. 이불속에 작은 빛을 하나 들여놓고 옛날처럼 책이라는 작은 세상을 넘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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