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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마르기 시작한 날

시(詩)

by 구시안

눈이 마르기 시작한 날 - 구시안



눈이 마르기 시작한 날을
나는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울어야 할 순간에
눈물이 나오지 않았고

대신
눈이 따끔거렸다는 것만은
분명히 기억난다



감정이 먼저 말라버린 건지
몸이 먼저 신호를 보낸 건지
의사는 아니어서 알 수 없었다



약사는
말없이 작은 병 하나를 건넸다
투명한 액체가
투명한 위로처럼 보였다



하루 몇 번
필요할 때
참지 말고

그 문장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눈물도
원래는
필요할 때 흘리는 거였는데

나는 언제부터
필요한 순간을
미루는 사람이 되었을까



병을 흔들어
한 방울을 떨어뜨리면

눈은 젖는데
마음은 그대로여서



그날 이후로
나는
울지 못할 때마다
눈을 적신다



이건 치료일까
대체일까

아직은
이름을 붙이지 못한 채
오늘도
눈을 뜬다




The Day My Eyes Began to Dry - sian koo



I don’t remember exactly

the day my eyes began to dry.



Only that
when I should have cried,
no tears came,

and instead

my eyes stung
that much
I remember clearly.



Whether my feelings
dried up first,
or my body sent the signal,
I wasn’t a doctor,
so I couldn’t know.



The pharmacist
said nothing
and handed me a small bottle.
The clear liquid
looked like
a clear kind of comfort.



A few times a day,
when needed,
don’t hold it in.



That sentence

lingered
strangely long.



Tears, too,
were once meant
to fall when needed.



Since when
did I become someone

who postpones
the necessary moment.



I shake the bottle
and let a drop fall.

My eyes grow wet,
but my heart

stays the same.



Since that day,

whenever I cannot cry,
I moisten my eyes.

Is this treatment,

or substitution.



Still unnamed,
I open my eyes
again 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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