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의 언어를 잃어버린 이후의 상태
자유로움은 내가 선택한 가치가 아니라, 나를 여러 번 망가뜨린 사건에 가깝다.
자유는 언제나 삶을 더 낫게 만들지 않았고, 오히려 더 복잡하고 더 가난하게 만들었다. 안정적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관계를 끊어버렸고, 설명하면 이해받을 수 있었던 자리에서 굳이 침묵을 택하게 만들었으며, 이미 손에 쥔 신분과 역할을 스스로 바닥에 떨어뜨리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는 사라지지 않았다.
자유는 언제나 가장 나쁜 타이밍에, 가장 필요 없는 순간에 나타나서 이렇게 속삭였다.
지금 이 삶은 너의 감각을 죽이고 있다고. 이 말을 들은 이후로 나는 더 이상 예전처럼 잘 살 수 없게 되었다.
이 세상의 무리들은 잘 살아간다. 그들은 타협하는 법을 배우고, 적당히 속아 넘어가는 기술을 연마하며, 불편한 질문이 떠오를 때마다 현실이라는 단어로 그것을 눌러버린다.
그 과정은 잔인하지 않다. 오히려 친절하다.
주변 사람들도 모두 같은 방식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의심할 이유조차 사라진다. 무리의 삶은 그렇게 매끄럽게 이어진다. 그러나 자유는 그 매끄러움에 균열을 낸다. 어느 날 문득, 자신이 반복해온 말들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순간, 성실함이라고 믿어왔던 태도가 사실은 두려움의 다른 이름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자유는 사고처럼 발생한다. 준비할 시간도 없고, 되돌릴 기회도 없다.
자유로움은 깨달음이 아니라 손실이다.
자유를 택하는 순간, 사람은 많은 것을 잃는다. 이해받을 가능성, 보호받을 명분, 정상이라는 위치. 자유는 사람을 고립시키고, 그 고립 속에서 스스로의 감각을 끝까지 마주하게 만든다. 그 감각은 아름답지 않다. 때로는 유치하고, 때로는 잔인하며, 때로는 도저히 사회에 내놓을 수 없는 형태를 하고 있다. 자유로운 상태란, 그 불완전한 감각을 교정하지 않은 채로 견디는 일이다. 무리들이 제공하는 정제된 언어와 도덕적 완충장치를 거부한 채, 자기 안의 혼탁함을 그대로 들여다보는 일.
그래서 자유로운 사람은 종종 실패한 인간처럼 보인다.
그는 설명을 잘하지 못하고, 자신의 선택을 합리화하지 않으며, 결과로 자신을 증명하려 들지도 않는다. 그는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유는 성취로 증명되지 않는다는 것을. 자유는 오히려 성취를 의심하게 만든다는 것을. 왜 이것을 원했는지, 왜 이 방향으로 왔는지,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정말 자신의 감각에서 비롯된 것인지. 자유는 끊임없이 자신을 심문하게 만든다. 그 심문에는 판결이 없다. 다만 끝없는 불안과 각성만이 남는다.
자유로움은 희망이 아니다. 자유는 위로하지 않는다.
자유는 “괜찮아질 거야”라고 말하지 않는다. 자유는 단지 이렇게 말한다. 지금 느끼는 이 불편함을 거짓으로 덮지 말라고. 지금의 삶이 너를 소모시키고 있다면, 그 사실을 정확히 보라고. 자유는 해결책을 주지 않는다. 대신 도망칠 수 없게 만든다. 그래서 자유는 많은 사람들에게 과도하다. 그들은 자유를 동경하지만, 끝내 선택하지 않는다. 자유는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삶을 끝까지 책임질 것을, 남의 언어 뒤에 숨지 않을 것을, 이해받지 못하는 상태를 견딜 것을.
그럼에도 자유는 소멸되지 않는다.
그것은 이 세상의 무리들 사이에서 끈질기게 재생산된다. 아주 조용하게, 아주 개인적으로. 누군가는 갑자기 웃지 않게 되고, 누군가는 더 이상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지 못하며, 누군가는 이유 없이 모든 것이 거짓처럼 느껴지는 시기를 통과한다. 그 순간이 바로 자유의 입구다. 대부분은 그 입구를 다시 닫아버린다. 그러나 소수는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 대가를 치른다.
자유로움이란 결국, 더 나은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스스로를 속일 수 없게 되는 상태다.
그것은 진보가 아니라 노출이며, 성장이라기보다 박탈에 가깝다. 그러나 그 상태에서만 인간은 비로소 자기 삶을 직접 만진다. 남의 설계도가 아니라, 자기 감각의 거친 표면으로 삶을 더듬는다. 자유는 그 더듬거림 속에서만 존재한다. 불안정하고, 불완전하고, 언제든 추락할 수 있는 상태로.
그래서 나는 자유를 미화하지 않는다. 자유는 구원이 아니다. 자유는 형벌에 가깝다.
그러나 그 형벌을 한 번이라도 통과한 사람은 안다. 자유 없이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조용히 썩어가는지를. 자유는 사람을 망가뜨린다. 대신, 깨어 있게 만든다. 그리고 어떤 인간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다.
자유로움에 대한 사유는 언제나 실패로 시작한다.
자유를 말하려는 순간, 이미 말은 자유를 배반한다. 자유는 개념이 아니라 감각이고, 감각은 언어로 옮겨지는 순간 절단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말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자유는 삶 속에서 너무 자주 우리를 파괴하고, 그 파괴를 견디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의미를 만들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자유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자유는 언제나 선택 이후에 남는 잔여물이다. 선택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따라오는 불편함, 옳았는지 확신할 수 없음,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감각. 자유는 바로 그 되돌릴 수 없음의 감각에서 발생한다.
이 세상의 무리들은 되돌릴 수 없는 상태를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그들은 언제나 보험을 든다. 감정에도, 관계에도, 삶의 방향에도 안전장치를 단다. 실패해도 설명할 수 있도록, 포기해도 합리화할 수 있도록, 자신이 틀리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도록. 그렇게 구성된 삶은 안정적이지만, 점점 감각을 잃는다. 자유는 그 안정성에 대한 내부 붕괴로 나타난다. 갑자기 지금의 언어가 자기 것이 아니라는 느낌, 매일 반복하던 일상이 기이하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순간, 자신이 살아 있는지 연기하고 있는지 구분되지 않는 상태. 자유는 해방이 아니라 이 붕괴의 시작이다.
자유로움은 인간을 더 강하게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더 취약하게 만든다. 보호받던 해석을 잃고, 사회가 제공하던 명확한 기준을 잃으며, 타인의 인정으로 자신을 증명할 수 없게 된다. 자유로운 상태란 스스로를 설명할 수 없는 상태에 가까워진다.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 왜 이 길을 버렸는지, 왜 모두가 원하는 것을 거부했는지 묻는 질문 앞에서 자유는 침묵한다. 자유는 논리로 자신을 변호하지 않는다. 자유는 오직 감각으로만 존재한다. 그래서 자유는 언제나 오해받는다. 무책임하다고, 유치하다고, 현실을 모른다고. 그러나 그 비난 속에서도 자유는 사라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유는 타인의 평가를 먹고 사는 개념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자유는 인간을 구원하지 않는다.
자유는 삶을 더 낫게 만들지도 않는다. 오히려 삶을 더 어렵게 만든다. 자유는 더 많은 질문을 남기고, 더 적은 확신을 허용하며, 더 긴 고독을 요구한다. 자유로운 사람은 자신이 선택한 길에서조차 안주하지 못한다. 그는 끊임없이 의심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해체하며, 끊임없이 이 감각이 진짜인지 아닌지를 확인한다. 자유는 한 번 얻으면 유지되는 상태가 아니라, 매 순간 다시 잃을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긴장 상태다.
내가 생각하는 자유로움이란,
더 나은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할 수 없게 되는 상태다.
이미 알고 있는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지 못하는 상태, 자신이 무엇을 견딜 수 있고 무엇을 끝내 견딜 수 없는지를 정확히 아는 상태. 자유는 그 앎을 제거하지 않는다. 오히려 끝까지 들여다보게 만든다. 그것이 자유가 잔인한 이유다.
이 세상의 무리들은 여전히 잘 살아간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은 자유 없이도 충분히 삶을 이어갈 수 있다. 자유는 필수가 아니다. 그러나 자유를 한 번이라도 통과한 인간은 안다. 자유 없이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조용히 자신을 침식시키는지를. 자유는 사람을 망가뜨린다. 대신, 잠들지 못하게 만든다. 그리고 어떤 인간에게는, 그 깨어 있음이 삶의 전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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