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무엇을 넣을 것인가

끝없이 이어지는 밤의 심장

by 구시안

나는 걷는다.

텅 빈 거리 차가운 바람사이. 나의 폐가 한껏 부풀려 내는 힘 있는 악따구가 메아리 울린다. 아무도 미친놈이라고 욕하지도 쳐다보지 않는 시간. 순간의 악. 그 소리는 금세 밤의 정적속으로 빨려들어 간다. 어둠 속으로 미끄러지듯, 발끝이 무겁게 젖은 거리 위를 스치고, 가로등은 불타는 눈처럼 희미하게 빛나지만, 그 빛은 내 그림자마저 삼켜버린다. 어둠은 내 숨을 잡아 늘이고, 내 심장을 손바닥으로 눌러 파괴하며, 바람은 칼날처럼 내 얼굴을 스치고, 나는 아무 말도 없이 걷는다. 내 안의 생각들은 녹아내린 유리 조각처럼 부서지고, 그 조각 위를 걷는 내 발걸음은 고요를 짓밟는다.



어둠은 나를 바라보고, 나는 어둠을 바라본다.

그 눈빛 속에서 나는 나를 잃고, 나를 발견한다. 밤의 냄새, 젖은 아스팔트와 썩은 낙엽, 모든 것이 어둠 속에서 숨을 쉰다. 나는 걷는다, 어둠 속으로, 끝없는 그림자 사이로, 걸음을 옮길수록 내 안의 어둠도 깊어지고,

나는 그 속에서 스스로를 삼키고, 또다시 내 안의 어둠을 토해낸다. 여전히 별은 보이지 않고, 달도 떠나간 밤,
나는 오직 내 심장과 숨결과, 어둠만이 존재하는 세계를 걷는다.



어둠은 내 발끝에서 피를 흘리게 하고, 내 손끝을 얼어붙게 하고, 내 생각을 번개처럼 찢어놓는다.
그러나 나는 멈추지 않는다. 걸음을 멈추면 나는 어둠 속에서 사라질 테니까. 걸음을 멈추면 나는 나조차 잃을 테니까. 그래서 나는 걷는다. 더욱 깊은 어둠 속으로. 어둠은 끝없이 내 안으로 흘러들어, 내 눈을 막고, 내 숨을 막고, 내 목을 조이지만, 나는 그 어둠 속에서 내 존재의 뿌리를 느낀다. 내 그림자와 그림자 없는 내 몸을,

내 과거와 미래와 아직 오지 않은 모든 순간을 어둠 속에서 끌어안으며, 산책한다, 밤의 심장 속을 걷는다.



어둠은 나를 끝없이 시험하고, 나는 끝없이 저항한다.

그러나 저항 속에서 나는 비로소 살아 있음을 느끼고, 어둠 속에서 나는 나를 다시 쓰고, 다시 만들고, 또다시 부수고, 다시 걷는다. 나는 산책한다, 모두가 잠든 밤 깊고 깊은 어둠 속에서, 내 안의 어둠과 밤의 어둠과 세상의 어둠을 모두 안고, 끝없는 심연 속으로 나아간다.



나는 내 안의 빈 공간을 바라보며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를 묻는다.

어둠은 이미 내 몸 안으로 스며들어 피부와 살과 뼈 사이를 파고들고, 숨결조차 무겁게 늘어져서 흘러간다. 내 안의 무엇을 넣을 것인가. 불꽃일까, 차가운 바람일까, 끝없이 밀려드는 침묵일까. 손끝으로 만질 수 없는 그것들, 붙잡으려 하면 흩어지고 사라지는 것들이 내 안에서 꿈틀거린다. 어린 날의 기억이 떠오르고, 상처받은 나와 부서진 나와 사랑을 놓친 내가 동시에 내 안에 서성인다.



나는 그것들을 꺼내어 보지만, 하나도 온전히 붙잡을 수 없다는 사실에 무릎을 꿇는다.

그러나 알 수 없는 질문은 나를 포기하게 하지 않는다. 나는 여전히 묻고, 여전히 기다린다. 내 안의 무엇을 넣을 것인가, 그 답은 오지 않고, 그럼에도 나는 선택을 해야 한다. 나는 분노와 체념과 무심한 웃음과 폭발적인 사랑과 사라지는 눈물과 새벽의 공기와 부서진 별빛을 모두 손에 쥐고 흘려보낸다. 넣고, 비우고, 다시 넣고, 다시 버리고, 그 과정 속에서 나는 부서지고, 다시 일어나고, 다시 나를 만든다.



내가 넣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이고, 내가 비우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이다.

밤은 끝없이 밀려와 내 영혼을 뒤흔들고, 별빛은 부서지고, 바람은 내 살을 스치고, 나는 그 속에서 내 안의 무엇을 넣을 것인지 끝없이 묻는다. 답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깨닫지만, 그 묻음 속에서 나는 살아 있음을 느끼고, 그 묻음 속에서 나는 다시 태어난다.



내 안의 무엇을 넣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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