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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내면, 새벽의 대비

고요 속에서 도시와 나

by 구시안


네온이 깨어 있는 내가 살아오지 않은 거리, 나는 그 아래 서 있다.
발목까지 잠긴 그림자 속에서 마치 내 심장이 누군가의 손에 잘못 쥐어진 깃털처럼 떨리고 있었다. 자동판매기의 불빛이 내 눈꺼풀 속으로 녹아내리고, 담배 연기, 차가운 바람, 휴대폰 알람 소리 모두 한꺼번에 내 안으로 폭주했다. 너무 두꺼운 옷을 입고 온 것일까. 계절을 잃은 세계에 들어선 듯 가슴과 목덜미에 흥건하게 땀이 맺히고 있었다.



나는 웃고 싶지만, 입술은 이미 내 마음과 결별했다는 사실은 여전히 유효했다.

같은 곳에 뜨는 해가 싫어. 새해에 되지도 않는 다짐을 하는 사람들을 피해. 1월 1일이라는 숫자가 싫어. 핸드폰에 새겨지는 가식의 가면들이 뿌려대는 진실되지 않은 거지 같은 인사들이 남겨지는 게 싫어. 낯선 동네. 낯설지도 익숙하지도 않은 나라. 낯선 공기. 차라리 낯선 사람들이 가득한 곳에서 조용히 숨 쉴 곳을 찾아다니는 하이에나처럼 굶주린 머리를 이고 비행기에 올라 하늘을 날았다.



거기나 여기나 다를 것 없어 사람들을 피해 걷는 새벽의 거리에는 무겁고 습습한 공기가 가득하다.

누군가 지나가며 나를 스쳐간다. 그 속도 속에서 나는 내 존재를 깎아내는 기생충이 되어 밤을 보내고, 동시에 이 고통이 내 것임을 확인하는 이상한 기학적인 수행자쯤이 되어 있다.



벽돌 사이로 스며드는 새벽빛은 피 묻은 시선처럼 날카롭고 나는 그 빛에 얼굴을 내민다.
내 심장은 네온 아래, 도시의 심장과 뒤엉켜 스스로 박동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도시는 숨을 헐떡이며 하얀 연기를 하늘 위로 내뿜고 있었다.


네온, 광고판, 차라리 나를 향한 비명처럼 느껴지는 깊은 밤. 손끝에 닿는 진동.

진동하는 핸드폰을 무시하고, 나는 구겨진 골목에서 내 그림자를 스캔한다. 벽돌 사이로 스며든 바람, 누군가 버린 커피잔 모두 내 안으로 흘러들어 감각이 폭발한다. 걷는 동안 모든 시간이 내 몸을 통과한다. 과거, 미래, 모두 미끄러진다. 내 발밑, 수십 개의 발자국이 나를 지워가고. 전류가 흐르는 듯한 도시의 공기 속에 잠시 멈춰 나는 지금을 비웃고 있었다.


눈은 디스플레이.
도시 속 모든 파편과 혼합되어 돌아갈 수 없는 순간의 패턴들에 어지러움 속에 있다가, 거리의 가로등이 희미하게 길을 밝혀도 발걸음 소리 하나 없이 고요만이 머문다. 이 고요가 좋아 이 밤을 즐기는 피를 빨지 못하는 뱀파이어처럼. 먹잇감을 찾지 않아도 되는 밤의 중독은 이미 관이 되어 나를 눕게 하고 있었다.



담배 연기처럼 퍼지는 생각들. 내 안에서 흩어지다 빛과 그림자 사이로 스며든다.

하얀 갑옷을 두른 듯 입히다 벗겨버리기를 반복하는 연기 속에서 나는 그렇게 멈춰서 낯선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새벽의 공기 속에 서 있다. 이 고요 속에서 내 마음도, 도시도 서로를 비추며 서서히 깨어난다는 것을 느끼면서, 별 것도 아닌 아침이 또 밝아오고 있다는 사실이 한심하게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이 평화롭다.

도시의 내면이 나를 집어삼키고 있는 이 시간이 평화롭다. 어느 영화의 세트장처럼 지금의 거리를 재연해 놓은 섬이 있다면 당장이라도 그곳에 감금이 되고 싶을 지경이다. 현실을 벗어나 모든 것에서 자유롭게 미친 듯이 머릿속에서 스며 나오는 모든 것을 쓰고 싶다. 그것이 내가 품고 있었던 진실한 희망이라면, 들어줄 '신'이라는 존재는 과연 있을까. 부질없는 생각이 새벽의 대비가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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