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내 안의 불꽃
회색 담장 너머, 겨울 햇살은 희미하게 하얀 풀밭을 스미고 비둘기들이 모여든다.
털을 부풀린 몸은 바람에 떨지 않으려는 작은 요새처럼 보였다. 그들의 눈은 서로를 향한 생존을 위한 무언의 약속, 흐르는 시간조차 잠시 숨을 멈춘 듯하다. 서로에게 기대어 온기를 나누는 둥근 등, 검은 잿빛 하늘은 멀리서 차갑게 그들을 내려다보지만, 그 작은 몸짓 속엔 한순간의 불멸이 깃든다. 발을 살짝 들어 모래 위에 흔적을 남기고, 바람이 스치는 사이 그들은 서로를 품는다. 말없이, 그러나 확실히,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며 겨울의 공원을 채운다. 마치 조용히 희망과 고백을 동시에 속삭이고 있는 듯 파르르 떠는 깃털의 움직이 희망을 부르지 못하고 조용히 시들어 가는 회색빛 나팔꽃처럼 보였다.
희망이란 무엇인가. 내 몸속에 박힌 가시인가. 아니면 불타는 심장 속에 숨은 작은 빛인가.
나는 손을 뻗는다. 어둠을 가르는 손끝에 희망이 걸려 있다. 날개가 없어 날지는 못하지만, 그 밝은 빛을 잡고 싶다. 하지만 희망은 쉽게 잡히지 않는다. 내 안에서 무너지는 소리. 텅 빈 심장을 두드리는 소리. 누군가는 그것을 울부짖음이라 부른다. 비둘기들의 가슴통에 작은 하트모양이 새겨져 있다. 행복한 희망을 생각하기 전 그들은 혹독한 추위를 견디려 가슴을 움켜쥔다.
나는 그것을 고백이라 부르기로 했다.
빛은 여기에도 있다. 그러나 빛이 내 것이 되는 순간 나는 사라진다. 숨 쉬는 것조차 고문처럼 느껴진다.희망은 날개를 펼치지만, 나는 날개 없는 새. 고백은 입술을 스치지만, 나는 말할 수 없는 자. 그럼에도 나는 텅 빈 거리 위에 서서 내 그림자를 불러 고백한다. 나는 아직 여기 있다고. 그리고 희망은 내 목덜미를 스치며 살짝 웃는다. 그러나 웃음조차 나를 완전히 살리지 못한다. 나는 희망과 고백 사이에서 피로와 열망을 번갈아 삼킨다. 숨을 쉴 때마다 세상이 내 안으로 흘러 들어온다. 거친 바람과 젖은 거리와 무너진 별빛 사이를 걸으며 절규한다, 희망이 내 발목을 붙잡지만, 그 희망은 너무도 뜨겁고, 너무도 날카로워 내 살을 스친다.
나는 희망을 삼킨다.
그리고 그것이 내 속에서 마음껏 폭발하도록 내버려 둔다, 그 폭발 속에서 나는 미쳐가고, 그 폭발 속에서 나는 살아 있음을 깨닫기 때문이다. 나는 묻는다. 희망이란 진정 무엇인가, 그것이 내 안에서 나를 지탱하는가, 아니면 나를 갈라놓는 칼날인가. 내 안에서 불꽃이 튄다. 눈을 감아도 타오르는 불꽃. 말 없는 분노와 갈망이 섞여 심장을 쪼개고, 폐를 태운다. 이 불꽃이 저 비둘기들에게도 있다면 따뜻할까를 생각했다.
나는 소리친다.
내 심장과 내 폐와 내 뼈를 모두 모아 그 희망을 향해, 그 끝없이 밝은, 그 끝없이 날카로운, 빛 속으로 소리친다. 희망은 고통 속에서 빛나고, 절망의 심연 속에서 흔들리며, 나는 그 속에서 나를 태우고, 나는 그 속에서 나를 부수며, 나는 그 속에서 다시 희망을 움켜쥔다.
나는 여전히 묻는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내 안의 심장은 여전히 뛰고 있지만 그 박동은 희망인지 절망인지 구분조차 할 수 없으며,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끝이 차갑게 공기와 부딪히며 세상의 무게를 느끼고, 나는 그 무게 속에서 내 목소리를 찾아 헤매지만, 목소리는 흔들리는 불빛처럼 작고, 흔들리고, 금세 사라진다.
희망은 내 안에서 희미하게 빛나고.
고백은 내 입술 위에서 맴돌며 떨어지지 않은 채 기다리는데, 나는 어느 쪽을 먼저 붙잡아야 하는지 알 수 없다. 내 안에는 수많은 고백들이 쌓여 있고, 그 고백들 사이에서 희망은 조용히 숨을 죽이며, 내가 눈을 떼는 순간 사라져 버릴 것처럼 불안하다. 사람들은 희망을 말하고, 나는 그 말속에서 잠시 위로를 얻지만, 그 위로조차 내 심장을 뚫고 들어와 내면을 흔드는 강한 바람 앞에서는 약해진다.
희망과 고백 사이.
나는 걸음을 멈추고 숨을 고르지만, 숨결 속에 담긴 나의 진실은 여전히 말하지 못하고, 고개를 들어 바라보는 하늘은 별빛으로 가득 차 있지만, 별빛마저 내 마음을 밝히기에는 너무 멀고, 나는 그 거리를 걸어야만 한다. 내 안의 고백은 때로 절망과 닮아 있고, 희망은 그 절망 속에서 나를 지탱하는 가느다란 줄처럼 느껴지며, 나는 그 줄 위에서 내 마음을 저울질하며 한 걸음씩 나아간다. 나는 사랑을 고백해야 하는 순간, 내 안의 희망을 믿고 고백하지만, 고백이 끝난 뒤 찾아오는 침묵 속에서 나는 다시 희망을 재정비하고, 그 희망이 내 안에서 흔들리지 않도록 몸부림친다. 나는 희망과 고백 사이에서 내 존재를 시험하며, 내 심장을 쪼개고, 내 눈을 번쩍이며, 내 손끝으로 내 마음을 더듬는다. 그 과정 속에서 나는 스스로를 마주하고, 때로는 스스로를 잃고, 때로는 스스로를 붙잡는다.
희망과 고백 사이.
그 간극은 너무 좁아서 숨이 막히고, 너무 넓어서 걸음을 멈출 수 없으며, 나는 그 사이에서 내 존재의 가장자리와 마주한다. 내 안의 모든 고백은 날카롭고, 내 안의 모든 희망은 투명하며, 그 두 가지가 충돌할 때 내 심장은 폭발한다. 나는 폭발 속에서 살아 있음을 느끼고, 나는 침묵 속에서 나를 발견하며, 나는 그 사이를 걸으며 끝없는 내적 사유 속으로 들어간다. 희망과 고백 사이에서 나는 내면의 파도를 느끼고, 그 파도 속에서 내 마음이 부서지고, 그 파도 속에서 나는 다시 일어나며, 그 파도 속에서 내 존재는 다시 쓰이고, 다시 태어나기로 한다. 나는 그 길 위에서 모든 것을 놓고, 모든 것을 붙잡으며, 희망과 고백 사이에서 끝없이 흔들리지만, 흔들림 속에서 비로소 나를 알아보고, 흔들림 속에서 비로소 내가 살아 있음을 안다.
나는 끝없이 묻는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나는 무엇을 남기고 싶은가, 나는 무엇을 담아야 하는가.
그 질문 속에서 나는 오늘도 걸으며, 내 심장을 느끼며, 내 고백을 준비하며, 내 희망을 다듬는다. 희망과 고백 사이, 나는 그 끝없는 간극 속에서 나 자신을 완전히 꿰뚫고, 그 속에서 다시 나를 만들어 간다. 비둘기들은 여전히 깃털을 부풀려 긴 밤의 추위를 서로 엉켜 붙어 녹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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