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밤의 언어 26화

다양한 언어

언어는 소통이 아니라 장치다

by 구시안

밤은 하나의 문장이 아니라 동시에 폭발하는 수백 개의 음절이었다. 간판의 네온은 죽은 언어로 깜빡였고 술에 젖은 골목은 발음되지 않은 문법을 흘리고 있었다. 나는 걷고 있었지만, 내가 사용하는 언어는 이미 내 몸을 떠나 다른 입속에서 다른 의미로 번역되고 있었다. 프랑스어의 모음이 벽에 부딪혀 튕겨 나가고 아랍어의 자음이 어둠을 긁으며 지나갔다. 기도처럼 시작된 문장은 욕설로 끝났고, 사랑이라는 단어는 새벽 세 시에 의학적 증상처럼 떨고 있었다.


언어는 입속에서 증식한다. 의미는 아직 오지 않았고, 발음만이 먼저 튀어나와 공기를 오염시킨다. 문장은 제 기능을 잃고 서로를 침범한다. 단어는 주인이 없고, 화자는 이미 사라졌다. 신호와 잡음이 뒤엉킨 채 생각은 잘린 테이프처럼 반복 재생된다. 이해는 목적이 아니며, 전달은 실패를 전제로 한다. 이곳에서 언어는 소통이 아니라 증상이다. 말해지는 순간, 이미 다른 언어로 변질된다.



의미는 취했고 문장은 자기 몸을 통제하지 못했다. 나는 보았다. 언어들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서로를 껴안고 쓰러지는 장면을. 문법은 붕괴했고 은유는 더 이상 숨을 수 없었다. 모든 말이 과다 노출된 채, 피부 없는 신경처럼 밤공기에 노출되어 있었다. 시선이 불꽃처럼 스쳐 지나가 사물들은 갑자기 과도하게 선명해졌고

칼날이 문장을 잘라 의식은 불법 편집된 필름처럼 튀어 올랐다.


시간은 직선이 아니었고 나는 여러 개의 나로 동시에 존재했다. 한 명은 침묵했고 한 명은 중얼거렸으며 한 명은 이미 말해진 문장을 되감고 있었다. 언어는 쏟아졌다. 비처럼, 구토처럼, 계시처럼. 누구의 것도 아닌 말들이 도시의 배수구를 타고 흘러갔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의미들이 새벽의 신문처럼 길바닥에 널려 있었다. 그것들은 읽히지 않기 위해 존재했다. 아침이 오기 직전 모든 언어는 잠시 멈췄다. 그 순간에만 나는 생각했다. 말이 사라진 자리에서 비로소 세계가 숨을 쉰다는 것을. 그리고 곧 다시 언어가 시작되었다. 더 빠르게, 더 잔인하게, 이번에는 나를 통과해 수십개의 아니, 수천개, 수만개의 별이 되어 떨어지고 있었다.


언어는 생각보다 먼저 태어나 생각을 조종한다. 우리는 말을 선택한다고 믿지만, 실은 말이 우리를 통과해 스스로를 발화한다. 의미는 뒤늦게 덧붙여진 변명에 불과하고, 문법은 혼란을 숨기기 위한 임시 규칙이다. 사고는 직선으로 흐르지 않는다. 끊기고, 되감기고, 다른 장면에 덧씌워진다. 기억은 편집된 허구이며, 의식은 불완전한 녹음 파일이다. 현실이라 불리는 것은 반복 재생되는 언어의 잔상이고, 자아는 그 잔상에 붙은 임시 자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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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지 못한 감정과 쉽게 합의된 문장들 사이를 기록합니다. 빠른 공감보다 오래 남는 문장을 쓰고자 합니다. 내면을 중요시 여기며 글을 씁니다. 브런치 70일째 거주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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