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오의 태양

보이지 않을 만큼 밝았던 시간, 그리고 네 살의 감사

by 구시안

정오의 태양. 흐리멍텅한 정오의 태양은 잿빛 하늘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지만, 떠 있다. 정오의 태양은 위에서 내리쬐지 않는다. 그것은 이미 사물들 속에 들어와 있다. 벽의 석회, 마당에 놓인 금속 표면, 사용되지 않은 종이의 가장자리까지. 빛은 고르게 퍼져 있지만 공평하지는 않다. 어떤 것은 견디고, 어떤 것은 닳아간다. 이 시간에는 그림자가 짧아지는 것이 아니라, 그림자라는 개념 자체가 잠시 유예된다. 모든 것은 드러나야 하고, 동시에 과장될 수 없다. 정오는 사물을 정직하게 만든다. 너무 정직해서 잔인하다.


아침과 저녁에는 여백이 있다. 빛이 약할 때 사물은 기억과 예측을 빌려 현재를 흐릴 수 있다. 그러나 정오에는 그런 관용이 없다. 태양은 질문하지 않는다. 이유를 묻지 않고, 맥락을 허락하지 않는다. “여기 있다”는 상태만이 반복된다. 살아 있음, 남아 있음, 그리고 그것이 어떤 설명도 요구하지 않는다는 사실. 그래서 밤의 언어는 화려하게 꽃을 피운다. 아무것도 감추지 않은 날 것처럼.


정오의 빛 아래에서는 움직임조차 의미를 잃는다. 노동은 계속되지만, 그것을 지탱하던 서사는 증발해 있다. 손은 자동으로 움직이고, 몸은 배운 대로 반응한다. 생각은 언제나 늦게 도착한다. 특히 살아남은 이후의 생각은 그렇다. 생각은 사후적으로만 존재한다.


기억은 장면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소리도 얼굴도 아니다. 그것은 온도에 가깝다. 태양이 피부를 통과해 내부에 닿는 방식, 너무 밝아서 오히려 아무것도 분별할 수 없게 만드는 빛의 밀도. 그 밀도 속에서 과거는 재현되지 않는다. 단지 존재할 뿐이다. 설명되지 않은 채로.


진실은 어둠에 있지 않다. 진실은 정오에 가깝다. 너무 환해서 눈을 뜰 수 없는 상태. 보기를 거부해서가 아니라, 보는 능력이 잠시 중단되는 상태. 정오는 인간에게 과잉이다. 감당할 수 없는 투명함이다.


이 투명함 속에서는 거대한 단어들이 무력해진다. 정의, 책임, 의미 같은 말들은 빛에 노출되면 쉽게 마른다. 대신 아주 작은 질문들만이 남는다. 물을 마셔야 하는가. 지금 앉아도 되는가. 숨을 고르는 것이 허용되는가. 이런 질문들은 도덕이 아니라 생존의 형식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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