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가는 꽃이 아니라, 가성비가 낮은 꽃
매일 아침,
건물 담장으로 찾아드는
알람시계를 가진 까마귀 녀석이 있다.
도시의 계절은 풀밭이 아니라
회색 건물 사이에서 시작되고,
녀석은 그 틈을 누비며
먹을 것을 달라는 건지,
아니면 반갑다는 인사쯤 되는 건지
알 수 없는 목소리를 남긴다.
그 의미를 가늠하려 할 즈음,
사이폰 커피 메이커는
이미 달아올라
진한 커피 향을 공기 속에 풀어 놓고 있었다.
커피를 끓이는 동안
시간은 모래시계처럼
조용히 뒤집힌다.
사이폰 속에서
물은 서두르지 않고
김은 천천히 오른다.
향이 퍼지는 속도만큼
아침은 도착하고
겨울은
조금 덜 춥게 식는다.
커피를 끓인다는 건
시간을 재는 일이 아니라
기다림을 데우는 일
오늘은
모래 대신
커피가 떨어지고 있을 뿐이다.
쉬는 날이 거의 지나가는 시점에서
저녁을 어떻게 해 먹을까 고민하다가
겨울의 스프 정도로 하기로 한다.
빵을 곁들여 찍어 먹어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냉장고를 뒤져 본다.
야채는 뭐,
이 정도면 이빨에 낄 정도는 될 것 같고,
아무리 찾아도 없는 버터는
풍미를 낼 생각이 없는지
아예 숨어 버렸다.
생크림이 조금,
우유도 조금 남아 있으니
양파와 감자를 먼저
잘게 썰어 본다.
핸드블렌더가
조용하던 집안을
잠시 시끄럽게 했고,
소금과 후추를 꺼내 놓은 뒤
잠시 끓는 동안
라디오를 켰다.
빌리 아일리시인가.
이 여인은
틱을 갖게 된 대신
천상의 목소리를 얻었구나,
그런 생각이 든다.
감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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