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예된 약속에 대하여
사람들은 말한다.
열심히 살면 괜찮아진다고.
이 문장은 이상하게도 반박하기 어렵다.
성실을 부정하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 고개를 끄덕인다.
이미 지쳐 있으면서도.
나는 오래전 그 말을 믿은 적이 있다.
믿지 않으면 버틸 이유가 없었으니까.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나고,
퇴근 후에도 자격증 책을 펼치고,
주말에는 스터디 카페에서 시간을 잘게 쪼갰다.
피곤하다는 말을 삼키는 연습부터 했다.
열심히 살면 괜찮아진다고 했으니까.
괜찮아진다는 말의 뜻을 그때는 몰랐다.
월급이 조금 오르는 것인지,
타인의 존중을 얻는 것인지,
아니면 나 자신을 덜 미워하게 되는 것인지.
그런데 이상했다.
열심히 살수록 기준은 더 올라갔다.
이번엔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싶으면
곧바로 “요즘은 다 그 정도는 해”라는 말이 돌아왔다.
열심히는 기본이 되었고,
괜찮아짐은 항상 다음 단계에 있었다.
이 문장은 희망처럼 보이지만
실은 유예다.
지금은 아니지만 곧,
조금만 더,
조금만 버티면.
버티는 사람만 남고
약속은 늘 다음으로 밀린다.
열심히 살면 괜찮아진다는 말은
사실 이렇게 번역된다.
괜찮아지지 않았다면
아직 덜 열심히 산 것이다.
그래서 이 문장은 안전하다.
틀릴 일이 없다.
결과가 나쁘면 개인의 노력 부족으로 설명하면 되니까.
구조는 늘 무죄다.
나는 한 동료를 떠올린다.
그는 누구보다 일찍 출근했고
누구보다 늦게 퇴근했다.
프로젝트가 터지면 가장 먼저 불려 나갔고
실수가 나면 가장 먼저 사과했다.
그는 늘 말했다.
“그래도 배우는 게 있잖아요.”
1년 뒤, 그는 번아웃으로 회사를 떠났다.
회사에서는 이렇게 정리했다.
“원래 좀 예민한 사람이었어.”
열심히 살았지만
괜찮아지지 않았다.
이럴 때 사람들은 또 말한다.
“그래도 그 경험이 자산이야.”
열심히 살면 괜찮아진다는 말은
실패를 경험으로 재포장하는 기술이다.
망가진 시간을
의미로 환전해 준다.
그러면 마음이 조금은 덜 아프다.
대신 문제는 그대로 남는다.
도시는 부지런한 사람들로 가득하다.
첫차 지하철에서 졸고 있는 얼굴들,
점심시간을 줄여가며 자기계발 영상을 보는 직장인들,
퇴근 후 운동으로 체력을 관리하는 사람들.
모두 열심히 산다.
그런데 왜
괜찮아졌다는 사람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가.
아마도 이 문장은
현실을 바꾸기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니라
현실을 견디게 하기 위해 발명된 것인지도 모른다.
열심히 살면 괜찮아진다는 말은
희망의 문장이 아니라
통제의 문장이다.
지치지 말 것.
의심하지 말 것.
그만두지 말 것.
그만두는 순간 이 문장은 깨지기 때문이다.
나는 노력을 부정하지 않는다.
성실을 비웃지도 않는다.
다만 묻고 싶다.
왜 괜찮아지지 않는 구조에 대해선
아무도 말하지 않는가.
왜 언제나 개인의 태도만 교정하려 하는가.
열심히 살면 괜찮아진다는 거짓말은
사람을 움직이게 한다.
그리고 오래 쓰이게 한다.
효율적으로.
그래서 나는 이 문장을 의심한다.
괜찮아지지 않아도
당신의 잘못이 아닐 수 있다는 말을
누군가는 해야 하기 때문이다.
열심히 살았는데도
여전히 힘들다면,
혹시 당신이 부족한 게 아니라
이 약속이 틀린 건 아닐지.
나는 오늘도 묻는다.
괜찮아지지 않는 세상에서
우리는 왜
계속 더 열심히 살라는 말을 듣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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