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랗게 질린, 창백한 흰빛 속으로

by 구시안

밤은 언제나 조금 늦게 도착한다. 겨울이라는 두터운 어둠은 그렇게 일찍 드리워지지만, 진정한 밤은 조금 더 늦게 드리워진다. 살다 보니 기상청도 맞추지 못하는 날씨까지 맞추기 시작한 마음의 예측이 맞아떨어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비가 내린다.

그러나 세상에는 아직 봄이 찾아오지 않았다.


사람들이 하루를 정리하고, 웃음과 변명을 접어 서랍에 넣은 뒤에야 비로소 어둠은 천천히 의자를 끌고 와 앉는다. 나는 그 소리를 들었다. 긁히는 나무의 마른 마찰음. 오늘의 대기는 그보다 먼저 질려 있었다. 파랗게, 오래 앓은 사람의 입술처럼.


도시는 희게 떠 있었다. 간판과 가로등이 아니라, 어떤 창백한 흰빛이 골목을 메우고 있었다. 그것은 따뜻하지도 차갑지도 않았다. 다만 모든 것을 지워버리겠다는 듯한, 병실의 조명 같은 빛이었다. 사람들의 얼굴은 그 아래에서 더 얇아졌다. 웃음은 종이처럼 가벼워졌고, 눈동자는 깊이를 잃었다. 나는 그 사이를 걸었다. 아무도 나를 막지 않았다. 아무도 나를 보지 않았다.


어쩌면 이 빛은 오래전부터 우리 안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부끄러움과 후회의 틈 사이에서, 스스로를 들여다보지 않기 위해 켜 둔 작은 형광등처럼. 우리는 늘 조금씩 파랗게 질려 있었다. 사랑을 말하면서도 계산했고, 희망을 이야기하면서도 빠져나갈 구멍을 찾았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면, 공기는 더 탁해지고 더 얇아졌다. 오늘은 그것이 눈에 보일 뿐이었다.


창백한 흰빛 속으로 들어갈수록 소리는 멀어졌다. 자동차의 경적도, 취한 이의 웃음도, 창문 닫는 소리도 모두 솜에 싸인 것처럼 둔해졌다. 대신 나의 숨소리가 또렷해졌다. 들숨은 얕았고, 날숨은 길었다. 마치 무엇인가를 끝내 인정하려는 사람처럼. 나는 내 폐 속까지 이 빛이 스며드는 것을 느꼈다. 숨을 쉴수록 더 희어지고, 더 가벼워지고, 더 비어갔다.


어떤 날은 인간이 견딜 수 있는 것이 고통이 아니라 공허라는 생각이 든다. 고통은 적어도 증거가 된다. 살아 있다는 증거. 그러나 이 흰빛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 상처도, 멍도 없이 사람을 옅게 만든다. 우리는 점점 투명해지고, 서로를 통과한다. 악수는 형식이 되고, 포옹은 관습이 된다. 체온은 교환되지 않는다.


나는 한참을 서 있었다.

파랗게 질린 밤하늘 아래,

지나치게 정직한 가로등 밑에서.

그림자는 발밑에 납작하게 붙어 있었다.

도망칠 곳도 없이.

어쩌면 그림자야말로 마지막으로 남은 증거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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