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만 무료

The Aesthetics of Disgust

disgusting : 역겨움의 미학

by 구시안

아름다움은 늘 세탁을 마친 얼굴로만 나타난다.
향이 나고, 정돈되어 있고, 말끔하다.
사람들은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르고
예의라고 부르고
성공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나는 안다.
진짜 인간은
하수구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새벽 네 시의 골목은 정직하다.
술에 취해 벽을 짚고 서 있는 남자,
구토가 마른 자국,
편의점 유리창에 비친 퀭한 눈.
아무도 사진으로 남기지 않는 시간.
그곳에서야말로 인간은
꾸미지 않는다.


나는 그런 장면을 사랑한다.
냄새가 나는 장면들.
잘라내지 않은 손톱,
식은 치킨 기름이 굳은 상자,
씻지 않은 머리카락 사이로 스며드는 땀의 냄새.

불편하도록 꾸미지 않는 솔직한 욕망들.

굳이 지킬 필요 없는 욕망의 선.

성별이 필요 없는 세상에서의 자유.

나이가 필요 없는 그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자유로움.

틀을 벗어나도 좋고

그 새로운 틀을 느끼고

그것을 즐겨봐도 좋은.

더 깊어지고

더 정교해지고

더 위험해지는 것.

그것을 마음껏 드러내는 것.

그것을 창피해하지 않는 것.

나는 이런 것들을 사랑한다.


사람들은 고개를 돌린다.


“It's disgusting."

"Gross!"

"Ew! Eww!"

"Yuck! "

"That’s nasty."

"That’s so gross."

"That’s grossed me out."


그래. 역겹겠지.

그런 너도 화장실은 갈 테니까.


철학처럼 보이지만

속은 모두 쓰레기 골목인 것이다.

지금 내가 쓰는 솔직한 글처럼.


그런데 이상하다.

그 역겨움 속에서
나는 가장 정확한 숨소리를 듣는다.


그 역겨움은 단단하고

과장도 없으며

변명도 없어 보였다.


역겨움은 그런 것이다.

개인적인 고백 같은 것처럼.

하지만 거짓은 없다.

그것이 역겨움의 미학이다.


아름다움은 때로 거짓말을 한다.
빛을 잘 받는 얼굴,
완벽하게 다듬어진 문장,

비극마저 세련되게 연출하는 태도.

오히려 역겹다고 정확하게 정의 내릴 수 있는 것들은

설탕을 가득 친

거지같은 빛만 나는 문장들이다.

그 역겨움이란. 그 거짓들이란.

여전히 티가 나는 거짓들이란.

그것에 속아 넘어가는 그런 척하는 사람들이란.

가식의 틀에 맞춰 사는 그 역겨움이란.

나는 그런 것들이 더 역겹다.


진정한

역겨움은

거짓말을 잘 못한다.


망가진 이는 망가진 대로 서 있고
비참한 이는 비참한 채로 숨 쉰다.
그들은 자신을 포장할 여유가 없다.

거기엔 계산이 없다.
나는 계산 없는 것들을 좋아한다.


한때 나도 향수를 뿌리고
말을 다듬고
자기소개를 정리했다.

나는 이런 사람입니다.
나는 이렇게 살아왔습니다.
나는 괜찮습니다.
그러나 밤이 깊어지면
그 모든 문장은 쓰레기통에 처박힌 영수증처럼 구겨졌다.


남는 것은
지독한 열등감,
쓸모없는 질투,
구원받지 못한 욕망.
아무도 손뼉 치지 않는 감정들.
나는 그것들을 버리지 않았다.
씻어내지도 않았다.

그저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썩게 두었다.
며칠 지나자 냄새가 났다.

그리고 그 냄새 속에서
문장이 태어났다.
깨끗한 문장은 대개 안전하다.
그러나 안전한 문장은 오래 남지 않았다.

대신 썩고 비릿한 냄새나는 것들이 남겨졌다.

오히려 그것이 향기로워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정확하게 남겨지는 것들.


사람의 속을 긁는 문장은
대개 조금 더럽다.
말끝에 침이 묻어 있고
자기혐오가 조금 섞여 있다.


나는 그런 문장을 쓴다.
예쁘지 않게.
조금은 모자라게.
조금은 삐뚤게.
왜냐하면 인간이 그렇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랑을 말하면서도
동시에 배신을 준비하고,
도덕을 말하면서도
은밀한 욕망을 숨긴다.
식탁 위에서는 웃지만
화장실 거울 앞에서는 이를 갈기도 한다.


그 모든 것이
디스커스팅이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를 인간으로 만든다.
나는 믿는다.
역겨움은 부패가 아니라
발효에 가깝다고.
썩는 냄새와 닮았지만
조금 다르다.


시간이 스며들어
더 깊어지는 것.
사람의 상처도 그렇다.


처음에는 곪고,
피가 나고,
보기 흉하다.

그러나 오래 견디면
흉터가 된다.


흉터는 깨끗하지 않다.
그러나 정직하다.

나는 정직한 것을 택한 것뿐이다.
부드러운 문장 대신

거친 숨을,
고상한 위로 대신
투박한 고백을.


아름다움은 박수받지만
디스커스팅은 기억된다.


누군가 밤중에 혼자 앉아
자신의 치부를 떠올릴 때,
번듯한 말들은 떠오르지 않는다.


대신
자기 안의 더러운 생각,
말하지 못한 비열함,
버리지 못한 욕망이 떠오른다.


그 순간,
우리는 비로소
진짜 얼굴을 마주한다.
나는 그 얼굴을 사랑한다.


화장기 없는,
빛 받지 못한,
그러나 살아 있는 얼굴.
디스커스팅의 미학은
용서가 아니다.

미화도 아니다.
그저 외면하지 않는 태도다.


인간이 인간을
끝까지 바라보는 일.
냄새가 나도,
흉해 보여도,
도망치지 않는 것.
나는 그 자리에 앉아
오늘도 더러운 문장을 쓴다.

그들을 인정하면서.

나도 느껴보면서.

그리고 조금은 안심한다.
적어도
거짓말은 덜 하고 있으니까.


이것이
내가 말하는
디스커스팅의 미학이다.


그게 전부다.

디스커스팅의 미학은.


나는 앞으로도

태도는 분명하고

감정은 날것이고

방향도 선명할 것이다.


나는 앞으로도
안전한 문장은 쓰지 않을 것이다.

기억되는 문장을 쓸 것이다.

나는 이 역겨움의 미학을 사랑하니까.

그게 내가 택한 미학이다.


That’s all.



keyword

이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 전용 콘텐츠입니다.
작가의 명시적 동의 없이 저작물을 공유, 게재 시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brunch membership
구시안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자각(自覺). 나의 비릿한 언어가 향기로워질 때까지. 브런치 + 110

671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122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564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이전 09화그게 뭐 어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