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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이라는 종교

자기계발? 성장인가, 소모인가

by 구시안

사람들은 자주 묻는다.
“그래서 너는 자기계발을 하고 있어?”


나는 묻는다.
자기계발이란 무엇인가.
신앙인가,

강박인가,

아니면 위안인가.


매일 아침 목표를 기록한다.
명상 앱을 켠다.
유튜브에서 성공의 법칙을 반복해 본다.

서점에 가면 이미 성공한 사람들이 갈겨놓은

자기계발 서적에 손이 가는 사람들.


완벽한 몸.
완벽한 습관.
완벽한 인간관계.

자기계발의 종교.
그 종교에는 끝이 없다.

계속 배우고, 계속 개선하고, 계속 성장해야 한다.

멈추면 죄책감이 따른다.

그 묘한 고문을 즐기는 것인가.


멈추면 자신이 실패한 신자가 된다.

모두가 신자다.
그러나 이 자기계발이라는 신앙은 자유가 아니다.
속박이다.


좋은 강연.
인기 있는 책.
추천 루틴.

하루하루를 규율과 지침 속에 맞춘다.


성공은 숫자로 측정된다.
몇 시간 운동했는지.
몇 페이지 읽었는지.
얼마나 많은 목표를 달성했는지.

노력은 신성하다.
하지만 삶은 사라진다.


나는 묻는다.
우리는 성장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그냥 신자일 뿐일까.

자기계발은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규칙이 되었다.


그 규칙을 어기면 부족하다고 느낀다.
그리고 스스로를 심판한다.

왜 우리는 계속해서
자기계발이라는 신을 섬기는가?
자유롭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안전하고 통제받기 쉬운 신자가 되기 위해서인가?


나는 오늘도 루틴과 목표를 곱씹는다.

부드럽다.
그래서 더 위험하다.

혹시 우리는
행복을 원한 것이 아니라,
계속 성장하는 사람으로 남고 싶었던 건 아닐까.


자기계발이 목표가 되는 순간,
삶은 질문을 멈춘다.
질문이 멈춘 자리에서
순응이 시작된다.


나는 아직
자기계발이라는 종교가
내 삶을 지배하게 두고 싶지 않다.


자기계발은 언제부터 미덕이 되었을까.
칭찬이 굳어지는 순간,
그 안에는 이미 강요가 섞여 있었다.


사람들은 자기계발을 말할 때
대체로 고개를 끄덕이며 안도한다.

자기계발하는 사람은 위험하지 않다.
계획대로 살고,
루틴을 지키며,
목표를 지나치게 질문하지 않는다.


자기계발은 사회가 요구하는
가장 온순한 순응이다.

나는 자기계발 신자들을 오래 지켜보았다.
그들은 아침에 목표를 확인하고,
명상을 하고,
루틴을 수행한다.
밤이 되면
왜 이렇게 피곤한지 설명하지 못한 채 잠든다.


그 피로는 자기계발 때문만이 아니다.

자기 자신을 계속 눌러 담은 결과다.

자기계발은 종종
자기 삶에 대한 최소한의 변명으로 쓰인다.


“나는 노력했잖아.”

이 한 문장은 질문을 차단한다.


왜 루틴을 지켰는지,
왜 목표를 쫓았는지,
왜 삶을 선택했는지.

자기계발은 그 모든 질문을 덮는다.



인간이 스스로를 성실과 성장이라는 이름으로 마비시키는
가장 정중한 방식이다.

자기계발은 불안을 미화하고,
지속을 정당화하며,
멈추려는 마음을 부도덕한 것으로 만든다.


자기계발은 습관을 만들지만
삶을 바꾸지 않는다.
그저 사람을 오래, 힘겹게 움직이게 할 뿐이다.


움직인다는 건
살아 있다는 뜻과 다르다.
그 차이를 모른 채 루틴에 매달리는 순간,
사람은 천천히 자기 삶에서 밀려난다.


나는 자기계발이
재능 없는 사람들의 미덕이라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기계발이
성공을 의심하지 않아도 되는
편리한 대체물로 쓰이는 순간을
수없이 보아왔다.


잘하지 않아도,
의심하지 않아도,
그저 계속하면 된다는 안도.

그 안도는 위험하다.


자기계발이라는 강박은
쉼을 죄책감으로 바꾼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은
쓸모없는 시간으로 분류되고,
생각하는 시간조차
생산성이 없다는 이유로 경계된다.


결국 자기계발 신자는
가장 자기 자신을 돌보지 못하는 사람이 된다.

나는 자기계발을 혐오하면서도
그 강박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게으름 앞에서 불안을 느끼고,
멈추면 뒤처질 것 같고,
아무도 보지 않아도
스스로를 감시한다.


자기계발은 사회가 심어놓은 감시를
내면화한 결과다.

그래서 나는
자기계발 신자를 무너뜨리는 순간을 안다.

그들이 처음으로
“이건 내 몫이 아니다”라고 말할 때.
그 한 문장을 말하기까지
그들은 너무 오래 자기계발을 했다.

그리고 그 자기계발이
아무도 구해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다.


나는 이제
자기계발을 미덕으로 부르지 않는다.

다만 하나의 선택으로 남겨두고 싶다.
필요할 때 선택할 수 있고,
버리고 싶을 때 버릴 수 있는 것.

자기계발이 의무가 되는 순간,
삶은 이미 타인의 목표에 편입된다.


이 독설이 불편하다면
당신은 아마 자기계발 신자였을 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자기계발의 신자일 것이다.

그 사실을 부정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한 번쯤은 묻기를 바란다.


이 자기계발은 나를 성장시키고 있는가,
아니면 나를 소모시키고 있는가.


그래서 당신은 그들처럼 성공을 하였는가?

여전히 자기계발의 신앙을 따르고 있는가?

아닐 것이다.

여전히 당신은 자기계발 중일 것이다.


자기계발이라는 강박을 내려놓는 일은
게으름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그건
자기 삶에 대한 최소한의 주권을
되찾는 일에 가깝다.


자신은 자신이며

타인은 타인일 뿐이다.

당신은 그들처럼 될 수 없게

설계되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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