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왜 근로계약서가 되는가
관계는 언제부터 의무가 되었을까.
나는 그 질문을 자주 되돌려 본다.
처음에는 좋았을 것이다.
호기심이었고, 설렘이었고, 선택이었다.
그런데 관계가 “유지”라는 단어를 달고 오는 순간,
그 안에는 이미 피로가 스며 있다.
사람들은 관계를 소중히 여기라고 말한다.
하지만 소중함이라는 말은
대체로 관리하라는 뜻이다.
연락을 꾸준히 하고,
반응을 빠르게 하고,
상대의 기분을 예측하고,
지나치게 솔직하지 않도록 조절한다.
관계 유지란
감정을 자동응답 모드로 설정해 두는 일이다.
성실한 사람일수록
관계를 오래 붙든다.
상대가 서운해하지 않도록,
틀어지지 않도록,
끊어지지 않도록.
하지만 묻고 싶다.
왜 끊어지면 안 되는가.
사람들은 관계가 끝나는 것을 실패로 취급한다.
오래 버틴 관계를 미덕으로 치켜세운다.
그러나 오래 지속된다는 사실이
건강함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관계 유지라는 노동은
출퇴근 시간이 없다.
카톡 알림은 호출이고,
읽씹은 태업이며,
늦은 답장은 경고가 된다.
우리는 서로를 좋아한다고 말하면서
동시에 서로를 평가한다.
오늘은 몇 점짜리 연인이었는지,
몇 점짜리 친구였는지,
몇 점짜리 자식이었는지.
관계는 점수화되고,
사랑은 수행평가가 된다.
피곤하다고 말하면 무심하다는 말을 듣고,
거리 두겠다고 말하면 변했다는 말을 듣는다.
결국 많은 사람들은
상대에게 솔직하기보다
관계를 유지하는 쪽을 택한다.
왜냐하면 잃는 것보다
버티는 것이 덜 두렵기 때문이다.
관계는 상호적이라고 배웠지만,
실제로는 더 참는 사람이 손해를 본다.
더 이해하는 사람,
더 먼저 연락하는 사람,
더 많이 사과하는 사람.
그 사람이 관계를 떠받친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아무도 칭찬하지 않는다.
“그래도 사람이니까 맞춰야지.”
이 문장은 배려처럼 들리지만
실은 포기 선언에 가깝다.
나를 조금씩 줄여
관계의 모양에 맞추는 일.
관계 유지라는 노동은
자기 검열을 습관으로 만든다.
이 말을 해도 될까.
이 표정을 지어도 될까.
지금 서운하다고 말해도 될까.
계속해서 허락을 구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내 감정이 무엇이었는지조차 흐릿해진다.
관계를 지키느라
자기 자신을 놓친다.
나는 관계를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묻고 싶다.
이 관계는
서로를 살리고 있는가,
아니면 서로를 오래 쓰고 있는가.
관계가 끝나는 것이 항상 비극은 아니다.
때로는 계약 종료에 가깝다.
모든 인연이 평생이어야 한다는 생각은
사람을 과로하게 만든다.
떠나는 용기가 없는 사람은
끝까지 남아 소모된다.
이 독설이 불편하다면
당신은 아마 누군가의 관계를
오래 붙들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직도
조금 더 노력하면 나아질 거라 믿고 있을지도 모른다.
노력은 숭고하다.
하지만 모든 노동이
의미 있는 것은 아니다.
한 번쯤은 물어야 한다.
이 관계가 나를 단단하게 만들고 있는지,
아니면
조용히 닳게 만들고 있을 뿐인지.
관계는 선택이어야 한다.
의무가 되는 순간,
사랑은 이미 근로계약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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