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만 무료

허무가 보내는 수수께끼

깨어 있음과 꿈의 경계에서

by 구시안

앞날이 문득 권태로워질 즈음,
하늘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르르 쾅쾅 소리를 내며
비감 어린 물줄기를 쏟아낸다.


내 의식은 한 번도 멈춘 적이 없는데
어느 순간 기억이 희미해진다.
잠을 밀어낸 것이 커피 때문인가 의심하지만,
진한 커피를 몇 잔을 마셔도
잠에 빠지면 나는 곧바로 꿈을 꾼다.


라디오 음악에 이어진 꿈,
혹은 아무 연결도 없이

끝없이 펼쳐지는 이미지들.
빛과 사람들 사이로 끼어들고,
잠든 나에게만 나타나는 유령들 사이에서
속삭임은 달콤한 자장가처럼 들린다.


그럴 때면 문득 생각한다.
깨어 있다고 믿는 지금이
사실은 또 다른 꿈은 아닐지.


인생은 누군가 헝클어 놓은 실타래 같다.
잘 감겨 있거나 풀려 있다면
의미라도 쉽게 찾을 수 있으련만,
나는 마치 잘 짜인 니트를 완성해 가는 사람처럼
숨은 매듭을 찾느라 오래 헤맨다.


희미한 빗소리 때문일까.
점점 더 흐릿해지는 감각 속에서
낮과 밤,
내일 말할 문장들조차
이미 꿈속에 있는 듯하다.


나는 늘 사색 속에서 전율하며
허무가 던진 수수께끼를 풀고 있다.


지금 걷는 길이
그저 평범한 가로수길처럼만 느껴졌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허무가 부르는 수수께끼가 거짓이길 바라며
입술에 알싸하게 맴도는 에스프레소 한 잔과
담배 연기를 삼킨다.


어쩌면 나는
불행하게 사는 법을 너무 일찍 배운 것인지도 모른다.


연못은 있으나 고기가 없고,
분수대는 있으나 물이 흐르지 않는 것처럼.
겉보기엔 잘 짜인 니트 같지만
코가 빠진 채 여전히
열 손가락을 움직이며 짜고 있는 삶처럼.


누구의 소유도 되기를 거부하는
봉제 인형처럼
하얀 방 안에 놓인 나는
오늘도 허무가 보내온 수수께끼를 풀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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