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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감정을 앓게 할 때

새벽마다 다른 내가 되는 기록

by 구시안

나의 감정적인 삶은 이른 시기에 생각의 방으로 옮겨졌다. 깊은 밤이 돼서야 안정감을 찾게 되는 것은 인생의 감정들을 온전히 만끽할 수 있다는 조건이 붙었다. 생각은 한번 감정을 품게 되자 오히려 감정 자체보다 요구가 많아졌다. 감정을 체험하며 살게 된 것을 축복이라고 해야 할지 불행이라고 해야 할지, 어쩌면 내가 느끼는 방식을 더욱 일상적이고 육체적이며 제법 유쾌하게 만들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질병은 육체에만 깃드는 것이 아니라,

삶의 갖가지 골칫거리가

몸으로 느껴지고 마음을

감염시킨다는 사실을 알았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 섬은 꿈속에 고립된 이들이 숨을 수 있는 오래된 지름길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살아가고 직접 부딪치며 살아야 한다는 사실은 놀랍지도 않은 일이 되었다. 스스로 백신을 만들어 주사해야 하는 인생이라는 것이 얼마나 지독한 질병인지 알게 되었을 뿐이다.


나 스스로가 필요로 하니 언어를 사용하여 이렇게 글을 써야 한다는 것. 글 쓰는 것을 꿈만 꿀 수도 없으며 언어를 사용하거나 자의식을 거치지 않은 채 단지 음악과 여운으로 나를 표현한다면 가능할지도 모르는 일이겠으나, 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나에게는 턱 없이 부족하다.


마법에 홀린 사람처럼

오로지 신이 있을 뿐인

무의식 속에 머나먼 곳을 향하여 흘러간다면,

이 모든 것이 나아질 수 있을지를 생각한다.

나는 사람이고 신이 아니기에

신이 되고 싶은 갈망을 갖고 있기도 하지만

그것을 현실화 한다면

마법같은 인생을 살게 될 것이겠지만,

그 딴 것을 꿈꾸진 않는다.


나는 항상 감각보다 감각에 대한 인식이 더 강했던 아이였다. 나의 감정의 방이 어쩌면 너무 빨리 생각의 방으로 옮겨진 것인지도 모른다. 생각이 많아지면 메아리가 되고, 깊은 심연이 되어 찾아왔다. 몇 백년이나 떨어져 산 사람들이 님긴 마법의 책들을 읽어 내려가는 밤이 많아질 수록, 삶이라는 것은 어쩌면 하나의 주술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시대가 떨어져도 사람의 감정은 비슷하다는 사실만 확인할 뿐이다. 내 안으로 깊이 파고 들어갈수록 내가 아닌 나 자신이 여러 명으로 늘어나는 분신술을 부리는 것처럼. 향기롭지 못하고 비릿한 언어들이 나에게서 태어날 뿐이다.


사소한 현상과 하루의 빛의 변화들이 주는 감각 하나하나에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다. 산다는 것은 달라진다는 것이다. 어제 느낀 것을 오늘도 느씰 수는 없다. 깊은 새벽마다 새 사람이 되는 것이 해볼 만한 일이 된 것처럼. 이 새벽은 세상에서 가장 처음 맞는 새벽이 된다.


밤의 빛이 데려온 고요를 맞이하는 건물들을 바라보면, 따스한 희색으로 물들어 있는 날이 있는데, 그날이 오늘 같은 깊은 밤 벌어졌다. 이런 시간이. 이런 빛이. 나에게는 단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새로움이 가득한 광경을 보게 될 설렘 따위는 자리하지 않는다.


시간은 가늠하기 어렵고

순간들은 연결되지 않은 채로

이어진다.


모든 생각과

사람들이 죽게 만들었던

모든 감정이

그렇게 녹슨 별이 되는 것이다.

마치 어두운 요약본처럼

그렇게 아무도 모르게 새겨져

낡은 노트가 되는 것이다.


희미한 거품처럼 흩어지고 마오는 영원한 희망처럼 신은 노래하지 않는다. 원하는 것을 얻은 자들은 어떤 눈물을 흘리고, 원한 것을 이룬 자들은 어떤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세계를 살아가며, 잔물결로 부서지는 저 시끄럽고 차가운 세상에서 누가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생각하고 알 수 있을까.


새벽이면 귓가에 울려놓은 음악이 권유하는 감정에 속하지는 않는다. 피아노의 선율에 마음을 뺏기지도 않는다. 밤이 상기시키는 많은 일들 때문에 길게 누워 쉬는 평화를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나는 스스로 넘기는 침 넘어가는 소리를 듣고 있을 뿐이다. 고요한 심장으로 살아가고 싶을 뿐이다. 나에게 흘러가는 삶을 스스로 보는 일은 무언가를 꿈꾸는 일과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을 말할 필요도 없고, 누군가에 대해 말할 필요 없다.

그저 내려다보듯이 나의 꿈을 굽어보는 것이다.


이런 꿈이

사람들이 꾸는 꿈이

모두 똑같은 윤곽과 형태를 가졌다고 말한다면, 얼마나 재미없겠는가.

내게 꿈에 나오는 모습은 현실과 다르다.

저마다의 현실성을 갖고 있는 꿈이겠지만, 서로가 다르다. 내 흘러넘치는 감수성이 간절히 바라던 휴식을 찾도록 도와준 지난 삼일의 시간 동안. 깊은 밤이 지나 아침을 맞이하면서도 나는 무슨 은총의 입맞춤처럼 느끼거나 밝은 것에 기대지는 않는다. 천천히 밝아오는 햇빛 속에 지저분한 윤곽을 드러내는 도시에 대한 미련도 별로 없지만, 누그러지고 선한 동화를 들을 때처럼, 불안은 사라질 거라는 확신을 갖지 않는다.


인생이라는 것은 어쩌면 나 스스로가 품고 사는 생각이 전부 일수 있다. 나 자신이 소유한 경작지가 전부라고 여기는 농부처럼 그것을 일구어가며 살아가면 그만이다. 주어진 땅에 만족하며, 씨앗을 뿌리고, 그 농사가 망하더라도 상관없고 다시 시작하면 되는 순간들을 경험할 뿐이다.


나는 많은 꿈들을 꿨다.

많은 꿈을 꾸느라 지쳤다.

그래도

꿈꾸는 일에 지치지는 않으려

잊지 않으려

부담을 주지 않으려

깨어 있는 것에

꿈 없는 잠에 빠져든 상태다.


꿈속에서

이루어진 모든 것들을 보았고,

그것을 깨워 현실화시키는 데는 실패했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있겠는가.

결국 깨어나고 말았지만,

꿈속에서

모든 것을 이루어 봤다 해도 과언은 아니니.


현실 속에서 쉽게 바스러지는 명상 따위를 하지 않는다. 보고 듣고 느끼고 할 뿐이다. 그것을 믿는다. 그리고 이 모든 형이상학이 주는 수수께끼에 지치지 않는다. 포기라는 것은 어쩌면 현명할지 모르나, 정신이 없는 자들과 순응하는 자들만이 누리는 목표 없는 것들에서 승리하고 싶지는 않다. 단순한 의지만 있다면 환멸을 초월하는 구토감은 들지 않을 정도이기에.


행동하는 것은 이미 휴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문제들은 해결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사실을 찾아 나서는 것은 그 사실이 이미 없음을 의미하기도 했다.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지 모른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끝없이 불안에 대해 도전할 것이다.


괴로워할 걸 알면서도

그 고질병이 나를

가장 괴롭게 만든다는 것을 알면서도

진정한 괴로움이 아니기에

괴로워할 것이다.


창백한 새벽이

똑바로 걸어가게 하고

비틀거리지 않으며

제대로 반응할 수 있게

나는 멀쩡하게 존재한다.


불가능을 넘어서는 행진에서

몸을 앞으로 굽힌 채

그래도 걸어가게 만드는

졸음이 산들바람처럼 신선한 새벽에

나는 무언가에 중독되어 있다.

아무도 모르게 나의 하늘에

별을 띄우고

나의 무한대를 누릴 것이다.

사는 것은

어쩌면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무엇인가

이해하려 할 때

사람들은

혹은

나는

지독한 피곤함에 시달렸다.


지금 발생한 느낌이

가치가 있기를

바라며

써 내려가는 이 글의 기록들이

가벼운 쾌감처럼

욕망의 모호한 향기를

자극하는 달콤함을 주는 날이

분명히 있기를

바랄 뿐이다.


관찰하기에는 흥미롭지만

체험하기에는 괴로운 것임은

이미 뼈저리게 알고 있기 때문에.

삶의 결과물이 상상의 결과를

훼손한다는 사실만 기억하고

갈 뿐이다.


저무는 태양의 미학을

나는 매일 밤 함께 할 것이다.

선명하고

불가피한 선택지 일 뿐이다.


머무름을 설득하는 부름은

감추어진 부름 앞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나의 언어가

누군가에게 마법이 되기를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그렇게 작용하길

피할 수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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