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하면서도 불안한 밤
더운 공기의 차가움이라는 역설.
달빛으로 몽롱하고
좀처럼 별빛은 드러내지 않는
검고 푸른 밤.
무엇이든 가능한 존재로
결국 소멸하고 말아 버릴 기록.
존재로 성장하거나
기로에 선 이 지독한 시간.
암흑.
밤.
영혼.
방.
공기.
일부.
불안.
잔잔함.
아름다운 밤하늘은 여전히
불길한 평화처럼 보인다.
솔직히 밤이 찾아오면
기분이 달라지면서
편안함으로 물들 때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산들바람의 그 촉감처럼
피부에 번지기 시작하는
느껴지는 바람이
잔잔한 밤을 높이 떠 비추는
그 크기를 알 수 없으나
내 주먹 안에 들어오는
달을 바라보는 시간이
차분하게도
편안하게도
느껴지는 밤이 많다.
견디기 어려운 조바심 따위도 없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기 전 그 사이의 따듯한 시기에는 공기는 제법 무게를 갖고 색은 부드럽고 저무는 저녁은 가짜로 꾸며낸 조명이 비춘 것처럼 감각적인 빛깔을 띤다. 이런 밤이 물들기 전 저녁이 그러했다. 마치 사람들의 그리움을 빚어내어 속임수로 만들어 낸 것처럼, 붙일 이름이 마땅히 없는 그런 감정으로 나를 채운다.
모였다
흩어지는
어리석고
떠들썩한
집단 안에 있다가
홀로 자리하여
무심한 눈길로 쳐다본다.
행동하지 않음으로써
모든 것을 만회하는 시간.
꿈이어도 좋고
상상이어도 좋은 시간.
단념한 것이
진실이 되는 시간.
햇빛과 있을 수 없는
달빛 아래 완벽한 상태로
영원히 보존될 수 있는
유일한 시간.
오늘도 나는
무엇인가를 단념한다.
서로를 모르기에 어울려 살 수 있는 것이 사람이라면, 위험을 모른 채 하는 말처럼, 서로를 정말로 이해한다면, 살아가는 이 가면무도회에서 만나고 스치는 사람들은 무엇 일지를 생각한다. 행동하고 말하고 생각하고 느끼는 모든 것은 똑같은 가면을 쓰고 똑같은 옷을 입게 되는, 걸치고 있는 것을 아무리 벗는다 해도 결코 벌거숭이가 될 수 없는 존재는 사람뿐일 것이다.
음모.
책략.
조직.
비밀.
착각.
현자와 달인들 사이에서
나는 비밀을 닫고 있다.
비밀을 상기시키는 글을 쓸 때는
무슨 소리인지 통 알아들을 수 없게
쓰거나
문법을 다루는 것보다
알아서 읽으라는 듯
이미 열 손가락은 쓰고 있다.
모호함도 비밀의 일부일 테니까.
유려한 글쓰기.
흠. 그것이 무엇인가.
마술의 영역도 아니고
문학의 영역에서
읽고 이해되는 것이면
그것이 글이다.
나는 현자들을 신뢰할 수 없다.
차라리
보통 사람들처럼
글을 쓰지 못하는
이상한 시인이나 마찬가지다.
세련되지 못한 힘도
유려함이라는 것도
그저 덩어리일 뿐이다.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말하는 것보다 쓰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후자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단어들을 좋아할 뿐이다.
학문적으로도
문학적으로
아무런 흥미가 없다 보니,
누군가 멋지게 글을 쓰거나
멋지게 흐드러지게 피는 말이라도 할 때면
소름이 돋는다.
상상할 수 없는
행복으로 인한 숨죽인 경련이 이는 것처럼
어느 시인의 글을 읽었을 때
나는 감동과 무기력한 망상에 빠져
바람에 떠는 나뭇가지처럼 떨게 된다.
큰 감동에 빠졌다기보다
온전히 그 글을 쓴 사람을 느끼게 될 때
나는 그 책 속에 적힌 글에 이는 희열에 푹 잠긴다.
얼룩지고
가물거리는
달빛 아래
스치는 소리를 내며 지나가는
행렬처럼
통과하고
지나가는
단어들의 조합이 주는
산문을 좋아한다.
마치 경사진 곳을
흐르는 물처럼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생각의 표현들.
소리가 들리는 듯한
이상적인 색채를 주는
놀라운 모음 활용에
강렬한 무언가가 지나가며
남게 되는 것이다.
그런 글을 마주할 때면
멈춰서 마치 처음 맛보는 경험을
느낀다.
두 번은 맛볼 수 없는 경험.
이 단어를 누가 뱉었는지 상관없이
이미 그 사람에게 빠져 든다.
단어는 보이고 들릴 때 완성된다.
그 단어에 왕실에서나 입는 가운은 필요가 없다.
그런 단어에 눈이 가지도 않지만,
진정한 실체가 절대적인 힘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되는 진실한 글들이 나를 해방시킬 때가 있다.
심오할수록 소통이 불가한 나의 글과는 다른
마치 타인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써놓고 생을 마감한 사람처럼
진정한 본질을 다소 왜곡하더라도
나의 감정을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으로 전환한
책 속에 빠져 있다.
아무튼 어떤 이유로 인해
삶에 박힌 모호한 슬픔과
마음을 어지럽히는
불안에게
가장 딱 맞고
심정에 적절하게 들어맞아버린
어느 개인의 고유의 감정을 잘 드러낸 글을 만날 때면
이미 나는 다른 이에게 전달되는 것이 줄어들어 있다.
여전히 나는 소통할 수 없다면
차라리 쓰지 말고 그냥 혼자 느끼는 편이 더 쉽고
합당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글을 쓰게 되는 이유를 생각해 보지만,
소통을 원하는 것도 아니고
예술을 하고 싶어서도 아니고
아직도 그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그저.
글을 쓰고
평범한 감정을 찾아보고
잃어버린 어린 시절에 대한
그리움 정도라고 하기에는
나의 글에는 열쇠가 없다.
나는 이미 이해하고 있다.
이상적인 언어도 필요 없지만,
살아가며 결합된 결과인
내가 쓰는 단어들을 사용하여
누군가에게 맞춰야 할 필요성을
인정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떠올리면서 한참 동안
감상에 젖어 있을 뿐이다.
결코 표현할 수 없는
감정과 생각의 미묘하고
내밀한 움직임을
사실적으로
언어라는 것으로 전달하고자
노력하는 것처럼,
서로를 더욱 잘 이해하고자
노력하지만,
개인적이고
소통 불가능한
진실만으로는 서로를 결코 이해할 수 없다.
예술은 거짓이기 때문에.
사람처럼 거짓말을 하기도 하기에.
모든 것은 사람이 만들어 내기에.
그저
깊은 밤
깨어 있는 곳에 말을 걸어 볼 뿐이다.
표를 사고 싶지 않다.
그저 미소 짓고
눈빛을 보내든 간에
스쳐가도
잠시 머물러도
상관없는 글이길 바랄 뿐이다.
애정은 표면적으로 발생하지만,
그래도 그것은 진실하다는 것을 믿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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