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새 머리가 덥수룩해졌다. 바빠서 미용실을 가지 못했다. 하필 오늘이 이 시골 동네에 하나 있는 미용실이 쉬는 날이란다. 나는 오늘이 쉬는 날인데, 미용실도 쉬는 날이라니. 내게 쉬는 날은 머리를 자를 수 있는 날인데, 미용사들에게는 머리 자르는 일을 쉬는 날이다. 공휴일이니 어쩔 수 없겠지만 아쉬운 것은 사실이다. 머리를 자르지 않고 집에 가면 아내가 잘라주겠다고 할 텐데, 그건 죽어도 싫다. 아내에게 머리를 맡긴 적이 있다. 아내는 내 머리의 왼편만 자르고 손가락이 아파 도저히 못하겠다며 관뒀다. 그래서 거울을 보며 어느 유명배우처럼 스스로 머리를 밀어야만 했지만 썩 멋지지 않았다. 아내를 마냥 원망할 수만은 없었다. 내가 머리숱이 많은 편이라, 미용사들 마저 매번 농담 섞인 불평을 하곤 했기 때문이다. “손님 요금 더 내셔야 할 것 같아요.”, “모공 하나당 머리카락 세 개씩 나는 거 아니에요?”
요지는 머리를 자르지 않고 집에 갈 수는 없다는 것이다. 혹시 내가 모르는 미용실이 있을까 싶어 동네를 조금 걸었다. 멀리서 익숙한 색 조합을 발견했다. 홍청백 삼색이 사선으로 회전하고 있었다. 이용원이라는 굵직한 글씨의 양철 간판이 걸려있고, 녹갈색 미닫이 문이 활짝 열려있었다. 이발소는 가본 적이 없었지만, 남자 머리가 다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에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배 나온 중년의 남성이 친절한 듯, 무심한 듯 맞아줬다. 아저씨는 채도 낮은 주황색 카라티에 통 넓은 면바지를 입고 그 위에 의사처럼 하얀 가운을 둘렀다. 아저씨의 머리는 이발사 답지 않게 약간 덥수룩했다. 자기 머리는 남이 잘라주겠지.
“앉으세요-.”
입술을 거의 움직이지 않아 뭉개진 발음에 어미를 살짝 늘어 뜨리는 버릇이 있었다. 아저씨가 가리킨 합피로 된 까맣고 뚱뚱한 의자에 앉았다. 엉덩이 닿는 자리는 하얗게 주름이 지고 까만 합피가 군데군데 벗겨져 있었다.
“어떻게 해드릴까?”
“그냥 깔끔하게 해 주세요.”
길게 늘어뜨린 예 소리와 함께 아저씨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접은 수건을 내 목에 두르고, 매끄러운 폴리에스터 소재의 미용 가운을 내 상체와 의자 등받이 위에 둘러 덮었다. 아저씨는 숱가위를 들어 덥수룩한 머리를 먼저 숭덩숭덩 덜어냈다. 숱가위부터 드는 것은 내게 익숙한 순서는 아니었다. 아저씨는 곧장 상아색 전기면도기를 들어 올렸다. 면도기는 아마 하얀색이었을 것이다. 집에 있는 오래된 선풍기와 같은, 하얀색 플라스틱이 세월을 맞아 생기를 잃은 듯한 그런 상아색이었다. 전기면도기가 과감하게 머리카락을 쳐냈다. 면도기 소음을 비집고 낡은 TV에서 흘러나온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특검은 000 의원의 영장기각에…”
“에헤이 저 새끼들.”
아저씨는 화면을 보는지 오른쪽을 보며 짧게 불평을 했다. 전기면도기가 과감하게 머리카락들을 가르며 지나갔다. 아저씨의 시선은 내 머리가 아닌 저 오른쪽에 고정되어 있었다. 면도기가 지날 때마다 너무 깊게 파인 건 아닌지 신경이 쓰였다. 특히 뒤통수를 자를 때는 확인할 수도 없었다. 뒤통수 두피에 닿는 것처럼 전기면도기가 지나가거나, 빗질에 떨어지는 머리카락 뭉터기가 예상보다 클 때는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가도, 오른쪽을 향해 돌아선 아저씨의 반쪽짜리 얼굴을 보면 화가 끓어올랐다. 오르락내리락하는 사이 내 뒤통수에는 달의 뒷면처럼 온갖 상상의 존재들이 올라타있었다. 아저씨는 다시 나를 봤다. 내 머리카락을 보는지, 내 표정을 살피는지 알 수 없었다.
이번엔 가위를 들고 앞머리를 잘랐다. 잘린 머리카락이 눈에 들어갈까 눈을 감아야 했다. 사각사각 소리와 뉴스가 뒤섞여 들리고, 이따금 이마에 닿는 아저씨 손가락의 거친 피부가 느껴졌다. 앞머리를 다 자른 아저씨는 스펀지로 얼굴을 쓱쓱 털어주고는 머리 이곳저곳을 잡아가며 삐져나온 머리카락을 싹둑 잘라냈다. 가위의 두 날이 스치며 나는 가늘고 짧은 금속성의 소리가 문득 섬찟했다.
“아주 나라를 다 잡아먹으려고 하는구먼.”
작은 머리카락 조각이 코에 들어갔는지 코가 간지러웠다. 재채기하다 엉뚱한 곳을 자를까 봐, 최악의 경우 아저씨 손가락이 잘릴까 봐 재채기를 최선을 다해 참다 코를 찡긋거렸다. 아저씨가 동작을 멈추고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머리카락을 확인하는지 내 표정을 확인하는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인상 쓴 것처럼 오해받지 않으려 코를 더 열심히 찡긋거렸다. 아저씨는 다시 머리를 자르기 시작했다. 삐져나온 머리카락을 찾아내 날카로운 은색 가위로 경쾌하게 잘라냈다. 잘린 머리카락들이 어느새 눈처럼 어깨 위에 지저분하게 쌓여 있었다.
아저씨는 면도칼을 들었다. 미용실에서 본 적 없는 네모진 칼날이 달린 접이식 면도칼이었다. 칼날의 크기만 달랐지 단두대의 칼날처럼 두텁고 날카로워 보였다.
“면도도 해드려요?”
“아, 괜찮습니다.”
“그럼 잔털 정리만 해드릴게.”
아저씨는 면도날을 머리카락과 얼굴의 경계면마다 대고 눕힌 날의 수직 방향으로 짧고 절도 있게 밀어냈다. 날이 긁고 지나간 곳에서는 잔털과 각질이 함께 깎여나갔다. 아저씨는 날을 수건으로 한 번씩 닦아가며 면도날을 내 얼굴과 목에 긁어댔다. 뉴스에서는 A당 의원들의 비판이 중개되고 있었다.
“참나. 내란, 내란 하는데, 지금 지들이 하고 있는 짓이 내란 아니요?”
“하하…”
얼마 전 같은 주제로 아버지와 다툰 적이 있다. 오랜만에 본 아버지와 근황을 나누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소재가 고갈하면 결국 정치얘기가 시작됐다. 나와 아버지는 정치적 입장이 나이의 년수만큼 달랐다. 아버지가 화를 내거나, 내가 화를 내서 이야기가 끝나곤 했는데, 최근에는 내가 버럭 화를 내며 이야기를 마쳤었다.
이발소 아저씨에게도 해줄 말들이 혈관을 타고 두피까지 증기처럼 올라왔지만 내뱉지 못했다. 그렇다고 신념에 어긋나는 말을 할 수도 없었다. 이럴 땐 애매한 웃음이 가장 좋다는 것을 사회에서 배웠고 배운 대로 실천했다. 비겁해서라기보다는 스위니 토드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면도날로 손님 목을 그어 죽이는 연쇄살인마. 의자 주변에 레버가 있진 않은지 살폈다. 의자가 아래로 떨어지며 내 시체는 미트파이가 되는 시시한 상상을 하느라 대답하지 못한 것이다.
“계엄을 그냥 해? 필요하니까 했겠지. 안 그래요?”
바삐 움직이던 면도날이 멈췄다. 아저씨는 한 손에 면도칼을 들고 멈춰 선 채 무뚝뚝한 표정으로 내 얼굴을 응시했다.
“아… 그런가요?”
면도날이 활동을 재개했다. 이번에는 뒤통수에 올라탄 상상의 존재들의 팔다리를 잘라내고 있었다. 그들이 지르는 비명에 식은땀이 흘렀다. 처형 장소는 뒤통수와 목이 만나는 지점이었다. 한 번은 정말 뭔가가 잘려나갔다. 아팠다. 칼을 닦아내는 아저씨의 하얀 수건이 빨갛게 물들었다. 목에 난 뾰루지가 베인 모양이었다. 오늘 아침 머리를 감거나 빗을 때 나를 괴롭혔던 뾰루지였다. 흐르는 피를 마저 닦아내는지 아저씨는 수건으로 상처를 톡톡 두드렸다. 상처에 수건이 닿을 때마다 따끔거렸다. 갑자기 이발소 앞의 삼색등이 떠올랐다. 빨간색은 정맥, 파란색은 동맥, 하얀색은 붕대를 상징한단다. 옛날에는 이발사가 외과의사도 겸했기 때문이다. 잔털과 각질을 긁는 데 사용된 면도날은 용도에 비해 지나치게 예리했다. 하고자 하면 너무나도 쉽게 살갗을 갈라낼 수 있을 것이다.
피가 멈추자 아저씨는 사과도 하지 않고 하던 대로 면도날을 내 뒷목에 긁어댔다. 각질이 밀려나갔을 뿐인데 어쩐지 목이 가늘어진 기분이었다. 스펀지로 목과 귓등, 코를 무심하게 털어주더니 머리카락 쌓인 가운을 조심스레 벗겼다.
“됐습니다-.”
“얼마예요?”
“8천 원.”
지갑에서 만원 한 장을 꺼내 건네고 천 원짜리 두 장을 돌려받았다. 안녕히 가시라는 인사를 뒤로하며 이발소를 나섰다. 머리는 요구한 대로 깔끔해져 있었다. 뒤통수가 불안해 손으로 쓸어보다 상처에 닿아 따끔거렸다. 멀어진 이발소 앞에서는 삼색등이 어지러이 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