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야기의 말미였을까?
큰 아이가 갓난 아기였던 시절, 아기가 우는 이유를 알지 못하겠던 때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엄마의 처음은 뭐가 왜 그렇게 어려웠는지. 정신을 쏙 빼놓을만큼 내가 멍청이가 된 것 같은 시간들의 묶음이 그 때 그 시간들이었던 같다.
울어서 안아줬는데 안아줘도 울더라. 몇 시간을 그렇게 안아주다 다독이다 기저귀를 갈아줬다 젖을 물렸다 하다가 결국엔 아기를 내려놓으며 "됐어! 내가 어째도 울거면 편하게 누워서 울어. 나도 팔아파!" 했다. 그러다가 다시 가서 안으면서 "엄마가 미안해.. 니가 뭘 말하고 싶어도 말을 못해서 얼마나 답답할텐데... 엄마가 그것도 못 알아듣고.. 널 이렇게 팽게치고.. 미안해.." 했다.
큰 딸에게는 늘 이렇게 미안한 게 많았다. 딱 큰 딸만큼의 나이만 먹은 엄마는 그 아이가 1살일 땐 나도 1살짜리 엄마였다. 이제 막 엄마로 첫돌을 지낸 엄마. 이제 막 엄마로서 걸음마를 시작한 엄마. 잘못하고 사과하고 잘못하고 사과하고. 걸음마 하다가 넘어지고 부딪히고. 그 아이 덕에 아직도 엄마가 되어가는 중이다. 언제쯤 뜀박질도 수월한 엄마가 되는 걸까. 잘 뛰는 것 같다가도 맥없이 넘어지는 날이 숱한 걸 보면 완벽한 엄마효능감이라는 건 아마 없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야기를 듣던 큰 아이는 낄낄거리며 "ㅋㅋ내가 잘못했네~ 왜 그렇게 울었대~?" 하다가, 이내 "결국 내가 잘했네!? 엄마를 좋은 엄마 되게 했으니~" 하며 잘난 체를 한다. 작은 아이는 "엄만 그때 아기랑도 소통을 했네? 커뮤니케이션의 달인이네!!" 한다.
그래도 아이들 입으로부터 좋은 엄마, 커뮤니케이션의 달인이라는 표현을 들었으니 오늘은 엄마효능감이 좀 올라가는 날이다.
좋은 엄마가 뭔지는 잘 모르겠다. 배우고 익힐수록 더 모르겠다. 프로이트가, 클레인이, 위니컷이, 보웬이 아이들의 발달과 부모에 대해 이야기한 것들을 배우고 알수록 머릿속은 더 복잡해진다. 다만 명확한 하나는 불안과 염려, 죄책감 대신 그냥 오늘의 아이들을 최선을 다해 안아야지 하는 생각과 다짐. 아이들을 안을 에너지만큼은 남겨둬야지, 말은 아끼고 품을 내어줘야지 하는 생각들이 짙어진다.
어디서 무슨 일을 하고 겪든 나는 그저 언제든 눕고 뻗을 자리로 있을게. 지금의 다짐. 아니, 오늘도 다짐.
#엄마효능감 #안아주기 #누울자리 #뻗을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