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장.
끝까지 다정하고 싶다는 마음은 얼핏 아주 아름답게 들린다. 쉽게 마음을 닫지 않는 사람, 상처받았다고 해서 곧바로 거칠어지지 않는 사람, 관계가 흔들릴 때도 인간적인 태도를 잃지 않으려는 사람. 우리는 그런 마음을 귀하게 여기고, 동시에 그런 사람이고 싶어 한다. 사랑하는 일은 결국 누군가를 향해 끝까지 좋은 마음을 품으려는 일처럼 느껴지기도 하니까. 그래서 “끝까지 다정하고 싶다”는 말에는 어떤 윤리와 어떤 아름다움이 함께 담겨 있다.
나 역시 그런 마음을 오래 붙들고 싶었다. 힘들어도 너무 차갑게 굳어버리고 싶지 않았고, 상처받았다고 해서 곧바로 냉소적인 사람이 되고 싶지도 않았다. 삶이 거칠어질수록 오히려 놓치고 싶지 않은 어떤 마음이 있다고 느꼈다. 관계가 내 뜻대로 되지 않더라도, 적어도 나는 끝까지 다정한 사람으로 남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많았다. 그 마음은 한편으로 나를 지켜주는 기준이기도 했다. 삶이 흔들려도, 내가 어떤 사람이고 싶은지 잊지 않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랑을 오래 생각할수록, 나는 그 마음 안에도 그림자가 있다는 사실을 보게 되었다. 끝까지 다정하고 싶다는 바람은 때때로 끝까지 좋은 사람이고 싶다는 욕망과 아주 가까워진다. 상대를 향한 마음처럼 보이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어떤 사람으로 남고 싶은가를 더 강하게 붙드는 마음이 될 수 있다. 나는 쉽게 등을 돌리는 사람이 아니어야 하고, 나는 무너지는 순간에도 인간적인 태도를 잃지 않는 사람이어야 하고, 나는 상처보다 이해를 택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믿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다정함은 더 이상 타인을 향한 태도만이 아니라, 내가 포기하고 싶지 않은 자기 이미지가 된다.
바로 그 지점에서 그림자가 시작된다. 다정함은 여전히 선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그 안에는 나 자신을 놓치고 싶지 않은 욕망이 함께 들어 있다. 나는 끝까지 다정한 사람이라고 믿고 싶고, 그렇게 믿는 나 자신을 사랑하고 싶다. 그 마음은 쉽게 잘못이라고 말할 수 없을 만큼 자연스럽지만, 문제는 그 욕망이 실제의 관계보다 더 커질 때다. 내가 정말 상대를 보고 있는지보다, 내가 끝까지 다정한 사람으로 남고 있는지가 더 중요해지는 순간, 다정함은 조용히 방향을 바꾼다.
끝까지 다정하고 싶다는 마음의 또 다른 그림자는, 그것이 나를 계속 버티게만 만들 수 있다는 데 있다. 사실은 멈춰야 하는 관계인데도, 사실은 내 마음이 너무 지쳐 있는데도, 사실은 지금 필요한 것이 다정함보다 거리와 정직함인데도, 나는 끝까지 다정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이유로 더 오래 머무를 수 있다. 떠나야 할 때 떠나지 못하고, 선을 그어야 할 때 선을 긋지 못하고, 잠시 나를 먼저 돌봐야 할 때조차 계속 상대를 향해 있으려 한다. 그러면 다정함은 관계를 살리는 힘이 아니라, 필요한 결단을 미루게 만드는 명분이 될 수도 있다.
생각해보면 “끝까지”라는 말은 아주 무겁다. 그 말 안에는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 쉽게 닫히지 않겠다는 자부심, 무너지는 순간에도 어떤 태도만큼은 지키고 싶다는 결심이 들어 있다. 그러나 삶은 늘 그렇게 단정하게 흘러가지 않는다. 어떤 날의 우리는 끝까지 다정할 힘이 없고, 어떤 관계는 끝까지 붙들수록 오히려 서로를 더 흐리게 만들고, 어떤 순간에는 다정함보다 솔직한 거리두기가 더 필요한 진실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도 끝까지 다정해야 한다고 믿으면, 사람은 현재의 현실보다 자신이 믿고 싶은 윤리에 더 오래 묶인다.
나는 이 마음이 왜 이렇게 강한지 이해할 수 있다. 어쩌면 우리는 다정함을 통해 사랑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지키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세상이 거칠어질수록, 삶이 나를 메마르게 만들수록, 적어도 나는 그런 사람까지는 되지 않겠다는 마음. 함부로 굳어버리는 사람, 상처를 이유로 타인을 쉽게 밀어내는 사람, 자기 버거움을 핑계로 인간적인 마음까지 닫아버리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다는 바람. 그런 의미에서 다정함은 타인을 향한 태도이기도 하지만,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기 위한 방식이기도 하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끝까지 다정하고 싶은 이유가 정말 상대를 위해서인지, 아니면 다정한 사람인 나를 지키고 싶어서인지를 묻지 않으면, 우리는 아주 선한 얼굴을 한 자기집착에 머물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상처받아도 품는 사람이라고, 나는 쉽게 등을 돌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나는 관계 앞에서 끝까지 성실한 사람이라고 믿고 싶은 마음은 아름답지만, 그것이 실제의 상대보다 더 중요해지면 사랑은 어느새 자기 서사가 된다.
끝까지 다정하고 싶다는 마음의 그림자는, 그래서 종종 자기희생과도 연결된다. 나는 괜찮지 않은데도 괜찮은 척하고, 이미 마음이 바닥났는데도 조금만 더 견디자고 스스로를 설득하고, 상처가 쌓여가는데도 “이럴 때일수록 다정해야지”라고 말하며 자신의 피로를 뒤로 미룬다. 겉으로 보면 참 성숙하고 헌신적인 사랑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사랑이 계속 한 사람만 소모시키고, 그 소모를 다정함이라는 이름으로 미화하게 만든다면, 그 사랑은 오래갈수록 더 왜곡될 수밖에 없다.
나는 진짜 다정함은 끝까지 같은 온도를 유지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 다정함이 더 이상 살아 있는 마음이 아니게 되었는지를 알아차리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다정함이 상대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내가 믿고 싶은 나를 위한 것인지. 지금의 배려가 관계를 살리고 있는지, 아니면 필요한 진실을 계속 미루게 만들고 있는지. 지금의 부드러움이 자유로운 태도인지, 아니면 무너지는 자신을 끝없이 억누르는 방식인지.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을 때, 다정함은 비로소 그림자 속으로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어쩌면 성숙한 사랑은 끝까지 다정한 사람이 되는 데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다정함의 한계를 알고, 그것이 언제 진실을 가리고 있는지 볼 줄 아는 데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 어떤 순간에는 부드럽게 머무는 것이 사랑이고, 어떤 순간에는 분명하게 멈추는 것이 사랑일 수 있다. 어떤 날에는 품는 것이 다정함이고, 어떤 날에는 더 이상 나를 지우지 않는 것이 다정함일 수 있다. 사랑은 늘 한 가지 얼굴로만 우리를 시험하지 않는다. 그래서 다정함도 하나의 방식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여전히 끝까지 다정하고 싶다. 하지만 이제는 그 말의 의미를 조금 다르게 이해하고 싶다. 끝까지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다는 뜻이 아니라, 끝까지 진실한 사람으로 남고 싶다는 뜻으로. 상대를 향한 마음을 잃지 않되, 그 마음이 나 자신을 지우는 의무가 되지 않도록 지키고 싶다. 사랑을 이유로 필요한 경계를 늦추지 않고, 다정함이라는 이름으로 내 상태를 속이지도 않으면서, 그래도 가능하다면 인간적인 마음을 잃지 않는 쪽으로 가고 싶다.
끝까지 다정하고 싶다는 마음은 분명 아름답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이 나를 속이지 않으려면, 나는 그 안의 그림자도 함께 볼 수 있어야 한다. 사랑은 언제나 선한 얼굴로만 우리를 찾아오지 않는다. 때로는 가장 아름다운 마음 안에도, 나를 붙들고 싶은 욕망과 나를 지우는 두려움이 함께 숨어 있다. 중요한 것은 그 복잡함을 모른 척하지 않는 일일 것이다.
아마 사랑은 바로 그 지점에서 조금 더 깊어진다. 내가 믿고 싶은 아름다운 마음만 붙드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 안의 그림자까지 함께 보면서도 여전히 더 진실한 쪽을 선택하는 것. 끝까지 다정한 사람이 되기보다, 끝까지 사람을 함부로 단순화하지 않는 사람이 되려는 것. 나는 사랑이 결국 그런 방향으로 나를 이끌어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