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장.
작은 조직에서는 문제를 발견하는 속도가 빠르다.
누가 봐도 바쁘고, 누가 봐도 어딘가 막혀 있고, 누가 봐도 뭔가 정리가 덜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사람들은 곧바로 해결책으로 향한다. 회의를 늘리자, 보고 체계를 바꾸자, 지표를 만들자, 역할을 다시 나누자, 대표가 직접 더 챙기자. 이 모든 말은 얼핏 매우 합리적이다. 문제를 빨리 알아차렸으니 빨리 손대는 것이 당연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현장에서 자주 반대로 느낀다. 많은 조직은 해결이 늦어서가 아니라, 문제 정의가 너무 빨라서 같은 자리를 반복한다.
문제를 제대로 정의하지 않으면, 우리는 대개 가장 눈에 띄는 증상부터 건드린다.
회의가 많으면 회의를 줄이자고 하고, 실행이 약하면 더 독하게 하자고 하고, 대표가 바쁘면 대표가 덜 하게 하자고 하고, 팀이 움직이지 않으면 팀의 태도를 바꾸자고 한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증상과 원인을 같은 층위에서 보면 개입은 자꾸 빗나간다. 열이 난 사람에게 체온만 보는 것이 아니라 왜 열이 나는지 봐야 하듯, 조직도 “지금 무엇이 보이는가”와 “왜 그렇게 보이는가”를 분리해서 봐야 한다. 그 구분이 없으면 우리는 계속 눈앞의 현상만 더 세게 만지게 된다.
문제를 제대로 정의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왜냐하면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신이 익숙하게 느끼는 표현으로 문제를 설명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게을러서요.” “책임감이 부족해서요.” “소통이 안 돼서요.” “대표가 너무 많이 개입해서요.” 이런 말들은 편리하다. 빠르게 공유할 수 있고, 당장 뭘 바꿔야 할지 감이 오는 것 같고, 다들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그런데 이 표현들만으로는 실제로 무엇이 막히는지 잘 보이지 않는다. 문제를 이름 붙였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문제에 감정만 얹은 것일 수 있다.
내가 만났던 한 12명 규모의 조직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처음 대표가 문제라고 느낀 것은 “팀이 자꾸 늦는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처음 대화의 방향도 실행력, 책임감, 주도성 쪽으로 흘렀다. 하지만 조금 더 자세히 보니 실제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누가 어떤 일의 최종 책임자인지 불분명했고, 회의에서 합의된 내용이 실행 기준으로 옮겨지지 않았고, 중간 점검의 타이밍도 없었다. 즉, 팀이 느렸던 이유가 태도만은 아니었다. 문제를 “사람이 느리다”로 정의하는 순간, 원인은 사람에게만 머물렀지만, 문제를 “판단과 실행의 흐름이 끊겼다”로 다시 정의하자 개입 지점이 전혀 달라졌다. 그래서 나는 문제를 어떻게 정의하느냐가 사실상 해결의 절반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를 정의하는 데 실패하면 개입도 실패한다.
예를 들어 “회의가 많다”는 것이 문제처럼 보일 때, 사실 문제는 회의의 개수가 아니라 회의의 역할이 불분명한 것일 수 있다. “실행이 약하다”는 것이 문제처럼 보일 때, 실제 문제는 실행력이 아니라 실행 기준이 정리되지 않은 것일 수 있다. “대표 의존이 심하다”는 것이 문제처럼 보여도, 그 아래에는 결정권과 책임 분배가 분명하지 않은 구조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이 차이를 보지 못하면 사람은 늘 같은 방식으로 고치려 든다. 결국 잘못 정의된 문제는 잘못된 해법을 부른다.
문제를 제대로 정의한다는 것은 단순히 말을 고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현상을 더 세밀하게 분해하는 일이다. 무엇이 반복되고 있는지, 그 반복이 누구에게서 시작되는지, 어디서 멈추는지, 어떤 조건에서 더 심해지는지, 무엇이 빠져 있는지. 이런 질문을 던질 때 비로소 문제는 “느낌”에서 “구조”로 옮겨간다. 예를 들어 “팀이 주도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말은 겉으로는 명확해 보이지만, 더 들어가 보면 주도하지 않는 게 아니라 주도할 기준이 없을 수 있다. “구성원이 수동적이다”는 말도 마찬가지다. 실제로는 수동적인 것이 아니라, 결정해도 되는 범위가 불분명해서 기다리고 있을 수 있다.
문제를 잘못 정의하는 또 다른 이유는, 조직이 종종 문제를 사람의 결함으로만 읽기 때문이다.
그렇게 읽으면 해답도 사람을 바꾸는 쪽으로만 간다. 하지만 사람은 구조 안에서 움직인다. 같은 사람도 구조가 바뀌면 다른 태도를 보이고, 같은 말도 기준이 있으면 다르게 받아들인다. 그래서 조직의 문제를 다룰 때는 “누가 잘못했는가”보다 “어떤 구조가 이런 행동을 반복하게 만드는가”를 먼저 보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문제를 제대로 정의한다는 것은 사람을 덜 탓하고, 구조를 더 정확히 읽겠다는 태도다.
좋은 문제 정의는 개입의 범위를 좁힌다.
이 말은 곧, 불필요한 처방을 줄인다는 뜻이다. 문제를 제대로 정의하지 않으면 우리는 지나치게 많은 것을 바꾸려 한다. 회의도 바꾸고, KPI도 바꾸고, 역할도 바꾸고, 사람도 바꾸려 든다. 그런데 문제 정의가 선명하면 바꿔야 할 것이 보인다. 어떤 조직은 회의가 아니라 결정 구조를 바꿔야 하고, 어떤 조직은 숫자가 아니라 숫자의 층위를 정리해야 하고, 어떤 조직은 사람의 태도보다 책임의 선을 나누어야 한다. 문제를 잘 정의하면, 오히려 덜 건드리고 더 정확히 바꿀 수 있다. 이것이 작은 조직에서 특히 중요하다. 작은 조직은 여유가 없기 때문에, 넓게 흔드는 것보다 정확하게 건드는 것이 훨씬 낫다.
나는 문제 정의가 컨설팅의 핵심 역량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현장에서 사람들은 대개 이미 아프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프다”는 말만으로는 어디가, 왜, 얼마나, 어떤 방식으로 아픈지 알 수 없다. 문제를 정의하는 일은 바로 그 아픔을 구조로 번역하는 일이다. 그리고 구조로 번역된 문제는 더 이상 막연한 불만이 아니라, 손댈 수 있는 대상이 된다. 그때 비로소 사람들은 해석이 아니라 행동으로 넘어갈 수 있다.
문제를 제대로 정의하려면 먼저 현상을 있는 그대로 봐야 한다.
“회의가 많다”는 사실과 “회의가 효과 없다”는 해석은 다르다.
“대표가 자주 개입한다”는 사실과 “대표 의존이 심하다”는 해석도 다르다.
“팀이 늦는다”는 사실과 “팀이 게으르다”는 해석도 다르다.
이 두 층위를 섞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현상을 먼저 놓고, 그 뒤에 해석을 붙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사실을 보지 못한 채 이미 마음속에 정해둔 원인으로만 세계를 읽게 된다. 문제 정의가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이 자동 해석을 한 번 멈추게 해주기 때문이다.
문제를 제대로 정의하면 감정도 조금 다르게 보인다.
답답함, 서운함, 불안, 피로는 모두 진짜다. 하지만 그 감정이 곧 문제의 본질은 아닐 수 있다. 어떤 대표는 팀이 미안해서가 아니라 구조가 없어서 답답하고, 어떤 팀원은 대표가 싫어서가 아니라 무엇을 기준으로 해야 할지 몰라 불안할 수 있다. 감정은 문제의 결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그 감정만으로 문제를 정의하면 우리는 다시 사람만 보게 된다. 그래서 감정은 존중하되, 문제의 이름은 따로 붙여야 한다. 그래야 감정을 바꾸자는 말이 아니라, 구조를 바꾸자는 말이 가능해진다.
나는 문제를 잘 정의하는 조직이 결국 더 단단해진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 조직은 “무엇이 문제인지”를 두고 서로 같은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사람을 보고, 누군가는 구조를 보고, 누군가는 숫자를 보더라도, 결국 같은 문제를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이 합의가 없으면 개선은 계속 논쟁이 된다. 하지만 문제 정의가 선명하면, 다른 사람들이 같은 그림을 보게 된다. 그때 비로소 조직은 “누가 맞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바꿀 것이냐”로 대화를 옮길 수 있다.
결국 문제를 제대로 정의한다는 것은, 문제를 크게 보는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보는 것이다.
모든 것을 한꺼번에 고치려는 욕심을 줄이고, 지금 가장 핵심적으로 막힌 지점을 찾아내는 일. 사람의 태도 뒤에 숨어 있는 구조를 보고, 현상 뒤에 있는 반복을 보고, 감정 뒤에 있는 흐름을 보는 일. 나는 이 능력이야말로 조직을 바꾸는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이 장은 이렇게 마무리하고 싶다.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 문제를 제대로 정의해야 한다.
왜냐하면 잘못 정의된 문제는 늘 잘못된 해결을 부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직을 바꾸는 일은 결국, 가장 먼저 무엇이 문제인지 정확히 보는 일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