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아닌 협상

불안감과 조율하기

by 이시안

평소와 다르게 오늘은 오후 5시가 되어서야 침대에서 일어났다.

저번에 진상으로 찍혀 쫓겨난 카페 말고 다른 카페에서 글을 쓰게 됐는데, 그곳의 자리가 워낙 좋지 않아서 허리통증이 또 시작된 것이다.

의자가 아닌, 나무로 된 딱딱한 벽에 허리를 기댄 채 글을 썼는데 딱 직각을 이루는 그 각은 내 허리를 아작내기에 충분했던 것 같다.

원래 허리 디스크 초기가 있긴 했지만, 복싱을 열심히 하는 나 자신을 믿으며 이 정도쯤이야 코어 근육으로 버틴다! 라며 이제 노화가 시작되어 가는 내 몸을 무시한 결과이다.

덕분에 아침 일찍 일어나 물리치료를 받았는데 그 여파로 몸이 피곤해져 늦게 일어난 것이다.


하루를 이렇게 날려먹다니….

일단 한숨부터 쉬어준다.

내 몸은 그냥 누워서 쉬라는 듯 통증으로 허리를 대변해 준다.

하지만 내가 누구인가.

의지의 이시안 아니, 불안의 이시안이다.


사실 솔직히 얘기하자면 나를 움직이는 동력은 의지도, 꿈도, 희망도 아닌, 불안이다.

이게 나쁘다고 생각은 하지 않는다.

거대한 불안은 큰 문제가 되겠지만, 가벼운 불안은 인생의 동력이 되기도 하고, 동기가 되기도 하니까.

하지만 내가 느끼는 불안은 가벼운 것을 넘어서 가끔은 나를 마리오네뜨 인형마냥 가지고 노는 거대한 손이 되어버리고 만다.

그 상태를 놔두게 되면 무슨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마냥, 내 인생을 좌지우지해버린다.

이게 또 잘 좌지우지하면 모른다.

공포영화에 나올 법한 지하실, 그것도 끝이 보이지 않고 사방이 어두운 지하실 계단으로 끌고 내려가버린다.

그런 상황이 되기 전에 조치만 잘 취하면 다행히 지하실 문턱에 발만 걸치고 끝난다.


불안의 이시안은 불안감이 나를 끌고 지하실로 가기 전, 가까스로 녀석의 멱살을 잡아 내동댕이 치고 자리에 앉혀 진정시킬 수 있었다.

일단 배가 고프니 밥을 먹자.

차리기 귀찮고 힘드니 있는 밥과 된장국을 데펴 먹는다.

김치를 꺼내 먹으면 입안이 상쾌해지겠지만 그럴만한 기력도 없다.

그냥 일단 배를 나름 건강하게 채우는 게 목적이다.

그리고 글을 쓰기 위해 고민한다.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며 작업을 할 것인가, 아니면 커피를 사 와서 집에서 작업을 할 것인가.

고민은 길지 않았다. 내 통장을 보면 답은 바로 나오니까.

1,500원짜리 테이크아웃 커피를 사들고 추운 겨울바람을 뚫어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이미 망치긴 했지만 내 허리 건강을 위해 쿠션을 허리에 받치고 의자에 앉아 아이패드와 블루투스 키보드를 켠다.


예전에는 이 불안감이 치솟아오를 때면 자괴감에 빠졌다. 난 게으르고, 실력도 쥐뿔 없으면서 노력조차 안 하는 한심한 루저라고 그렇게 자신을 탓했다.

그래서 이 불안감을 없애고 싶었다. 좀 가만히 있으면 어때. 쉰다고 불안해할 필요 없다고! 물론 맞는 말이었다. 쉴 때는 확실히 쉬어야 한다.

하지만 가끔씩 나를 찾아오는 무기력을 만날 때마다 나는 불안감을 이겨낼 수가 없었다.

무기력이 오면 오는 데로 그냥 그날을 쉬어도 되는데 말이다. 웃기는 말이지만, 마음 놓고 무기력 해질 수 조차 없었다. 결국 이 불안감은 나를 놔주지 않았다.

다행히 가끔은 마음 놓고 쉴 때도 있었지만 이게, 가끔도 너무 가끔이어서 문제였다.


그렇다.

난 불안했다.

하루의 시간을 낭비했다는 사실에 불쾌했고, 얼마 남지 않은 이 시간에도 허리통증으로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 이 사실조차 불안했다.

하지만 난 예전의 내가 아니다. 불안감에게 목줄을 채운다. 씁! 덤벼? 앉아! 으르렁 거리기는 하지만 달려들지는 않는다.


우리는 불안을 부정적으로 바라본다. 없애야 하고, 있으면 안 되고, 안 좋은 것이라고.

하지만 우리가 살면서 과연 불안 없이 살 수 있을까? 앞을 알 수 없는 미래, 어떻게 될지 모르는 관계 속에서 마음 놓고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그렇다면 우리는 생각의 메커니즘을 바꿔야 할 때가 된 것이다.


”불안감과 협상하자. “


불안감과 협상하자는 말이 게임에서 흔히 쓰는 주제인 악마의 힘을 빌리자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래서 사뭇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불안은 우리에게 실제 일어나는 감정이다.

그리고 우리는 충분히 감정을 잡아낼 수 있다. 컨트롤할 수 있다.

물론 힘든 사람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나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의식적으로 내 마음속에서 불안감과 대화를 시도해 보자.

‘넌 뭐가 그렇게 불안하니?‘,

이런 대화의 시도는 협상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 아아, 그건 안 될 거 같아, 다른 방법은?’

그리고 그런 협상은 행동으로 이어진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무기력이 발목을 잡고 있다면 조금 힘들 수는 있겠다.

하지만 걱정말자. 무기력하고 힘이 없다는 것도 불안감에게 얘기하자.

‘야, 나 힘들어. 무기력해.‘

이런 과정들을 통해서 우리는 불안감과 대화하고 협상하고 결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 오늘은 그냥 걱정하지 말고 푹 쉬어버리자.‘, ’딱 이것만 하자’ 등등.

맞다, 말이 쉽다. 하지만 조금씩 조금씩 시도하다 보면 어느 순간 성공적인 협상을 이뤄낼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나는 1,500 원짜리 커피를 쪽쪽 빨아재끼고 잔잔한 노래를 들으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한편으로 불안감과의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끈 것 같아 뿌듯하다. 비록 늦게 시작하기는 했지만 필사도 했고, 글도 썼으니까.

그리고 음… 글 다 쓰고 컴활 2급 실기공부를 해야 할 텐데 하기 싫다. 앗, 불안감이 다시 솟아오른다. 다시 협상해봐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