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등을 타고 내리는 비

비 오는 지우펀

by 김배용

스펀을 떠나, 우리는 다음 목적지인 지우펀으로 향했다.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가이드는 다시 마이크를 들었다. 흔들리는 차 안에서도 그의 ‘꿀팁’은 쉬지 않고 이어졌다. 몇몇 가게를 콕 집어 “여기는 진짜다”라고 말해 주었고, 반대로 호객행위를 하는 가게는 피하라는 조언도 덧붙였다.


“유명한 집은 굳이 부르지 않아도 사람들이 알아서 찾아가요.”

짧은 말이었지만, 꽤 설득력 있게 들렸다.


그중에서도 우리 가족에게 가장 중요했던 정보는 따로 있었다. 지우펀의 복잡한 골목에서 길을 잃지 않는 방법. 가게마다 붙어 있는 번호를 기준으로, 몇 번 지점에서 어느 방향으로 몇 계단 내려가면 목적지가 나온다는 설명이었다. 머릿속에 그려질 만큼 명확한 안내였다. 그리고 훗날, 이 정보는 정말 유용하게 쓰이게 된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우리가 지우펀에서 두 번이나 큰 실수를 하게 될 줄은.


지우펀에 도착하니 비는 다시 굵어져 있었다. 이제는 우비를 입지 않으면 겉옷이 젖을 정도였다. 아이들은 미리 준비한 우비 덕분에 괜찮았고, 아내 역시 바람막이로 버틸 만해 보였다. 문제는 나였다. 나는 아들의 겉옷을 억지로 입었다. 사이즈가 맞지 않아 몸에 딱 붙는 불편함이 있었지만, 적어도 비를 막아주기는 했다.


아이들의 표정이 스펀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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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골목을 따라 많은 사람들과 함께 천천히 움직여야 했고, 이미 하루의 피로가 쌓여 있었다. 걷는 속도는 점점 느려졌고, 얼굴에는 지친 기색이 드러났다. 그래도 사진을 찍을 때만큼은 애써 웃으려 했다. 나 역시 발바닥이 꽤 아팠지만, 그 말을 꺼내는 건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일부러 더 밝은 목소리로 말을 건네며 걸었다.


골목 깊숙이 들어갈수록, 돌아갈 길이 더 멀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해진 코스이니 우리만 힘든 건 아니겠지만, 첫날부터 이렇게 빡빡하게 일정을 잡은 스스로가 조금은 원망스러웠다. 다행히 가이드가 알려준 번호와 방향을 기억하고 있었기에 헤매지 않고 지우펀의 명소로 가는 계단에 도착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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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계단을 내려가야 했고, 돌아오려면 그 계단을 다시 올라와야 했다. 비에 젖은 계단을 조심스럽게 내려갔다. 양옆으로 걸린 붉은 등이 빗물을 머금었다가 한 곳으로 떨어뜨리고 있었다. 하필이면 그 물줄기가 우리가 지나가는 길 위, 우리 머리 위로 떨어졌다. 그 모습이 어딘가 우스워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아이들이 물었다.
“아빠, 다시 올라가는 거 아니지?”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일단 가보자. 뒤에서 계속 내려와서 올라가기도 힘들어.”


사실은 반쯤 거짓이었다. 하지만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는 건 더 어려워 보였다. 결국 우리는 사람들의 흐름에 몸을 맡긴 채 계속 내려갔다. 그리고 도착한 촬영 명소. 많은 사람들이 비를 맞으며 줄을 서 있었다. 우리는 줄을 서지 않고 조금 더 아래로 내려가 사진을 찍었다. 굳이 같은 구도일 필요는 없었다. 우리에게 중요한 건 ‘그곳에 있었다’는 사실이었지, 남들과 똑같은 장면은 아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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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에 잠시 여유가 생겼다.

지금이 올라갈 타이밍이었다.


지우펀은 여러 투어 버스가 비슷한 시간대에 몰리기 때문에, 어느 순간 사람이 한꺼번에 쏟아진다. 그때는 모든 것이 느려진다. 기다리는 시간도, 움직이는 속도도. 그래서 우리는 더 머물지 않고, 사진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우리는 내려가기 시작했던 계단까지 쉼 없이 올랐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우리는 올라가는 계단을 발견했고, 아무 의심 없이 그 길을 따라 계속 올라갔다.


그게 첫 번째 실수였다.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고, 다리는 점점 무거워졌다. 머리는 젖었고 옷은 축축했다. 그렇게 한참을 올라갔지만, 끝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뭔가 있어 보이는 건물이 있었지만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결국 우리는 관광객이 아닌, 실제 주민들이 사는 공간까지 올라가 버렸다. 그리고 아래쪽을 내려다보니 작은 사원이 하나 보였다.

그제야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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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잘못 들었다는 것을.

다시 계단을 내려왔다.


이번에는 들어온 출구도 아니고, 아까 사진을 찍었던 곳도 아닌, 남은 한 방향, 더 깊은 지우펀 안쪽으로 들어갔다. 지우펀의 골목은 좁고 길었다. 양옆에는 찻집, 기념품 가게, 음식점들이 끊임없이 이어져 있었다. 유튜브에서 보았던 오카리나를 부는 아저씨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고, 길거리 음식들은 각자의 향으로 존재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취두부의 향은 유독 강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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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의 끝은 절벽이었다. 멀리 보이는 가로등 불빛이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주변을 비추고 있었다. 그곳에 도착했을 때, 우리에게는 여전히 한 시간 정도의 시간이 남아 있었다. 너무 많은 시간이었다. 그리고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저녁을 해결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 선택.

그날 우리가 한 가장 큰 실수가 될 줄은 그때는 몰랐다.


우리는 식당을 찾기 위해, 조금 전 지나왔던 길을 다시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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