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색 천등과 닭날개볶음밥

스펀에서 천등 날리기

by 김배용

버스가 출발하자마자 가이드는 다시 마이크를 들었다. 다음 목적지인 스펀까지는 약 40분. 흔들리는 차 안에서도 그는 차분하게 스펀의 유래와 그곳에서 즐길 수 있는 것들을 설명해 주었다. 스펀은 관광지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기찻길과, 종이에 불을 붙여 하늘로 띄우는 천등으로 유명한 곳이다. 이미 수많은 여행기와 영상으로 어떤 곳인지 머릿속에 그려두고 온 장소이기도 했다.


가이드는 천등의 색과 닭날개볶음밥의 수량을 미리 정하라고 안내했다. 가격을 높여 부르는 방식이 아니라, 오히려 시간을 아끼기 위한 선택이었다. 천등은 미리 예약해 두면 도착과 동시에 바로 글을 쓸 수 있고, 닭날개볶음밥 역시 현장에서 주문하면 대기가 생겨 기다리다 포기하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생각해 보니 합리적인 방식이었다.


대만에서는 붉은색이 인기가 높다. 천등 역시 대부분이 붉은색이었다. 그 외에 선택지는 ‘무지개’라 불리는 네 가지 색 조합. 실제로는 8가지 색 등 더 다양한 색이 있지만, 우리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만 주어졌다. 각 색마다 의미가 있다고 설명해 주었지만, 솔직히 귀에 들어오지는 않았다. 가격 차이도 없었고, 결국 우리는 건강과 평안을 의미한다는 붉은색을 선택했다. 닭날개볶음밥은 가족 네 명, 각자 하나씩 총 네 개를 주문했다. 가이드는 배가 고프다면 두 개씩도 추천했지만,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스펀으로 향하는 길, 하늘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고, 앞 유리에 부딪히는 빗물을 밀어내는 와이퍼의 움직임은 점점 빨라졌다. 예류를 떠날 때보다 확실히 더 짙어진 회색빛 하늘. 그렇다고 가로등이 필요할 만큼 어둡지는 않았지만, 분명 날씨는 한층 무거워졌다. 선택을 마친 뒤 버스 안은 조용해졌다. 그렇게 잔잔한 시간이 흐르고, 어느새 스펀에 도착했다.


비는 어느새 그쳐 있었다.


조금 전까지 창문을 두드리던 빗소리도, 바쁘게 움직이던 와이퍼의 리듬도 모두 사라지고, 남은 것은 젖은 공기와 눅눅한 풍경뿐이었다. 비가 지나간 자리에는 특유의 차분함이 남았다. 막상 그치고 나니, 아까 그 비조차 여행의 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아내와 딸이 나를 향해 따지듯 말했다.
“왜 상의도 없이 네 개나 시켰어?”

둘이 하나 정도 나눠 먹으면 충분할 거라 생각했고, 혹시 입맛에 맞지 않으면 남길까 걱정이었다는 것이다.

나는 항변했다.
“닭날개가 아무리 커도, 둘이 나눠 먹기엔 적어.”
“남으면 내가 다 먹으면 되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나도 조금은 긴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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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가이드를 따라 예약된 매장으로 곧장 이동했다. 주변을 둘러볼 틈도 없이 빠른 걸음이었다. 잠시 한눈이라도 팔면 앞서가는 가이드를 놓칠 것 같아 자연스럽게 발걸음이 빨라졌다. 가는 길은 관광지라기보다는, 실제 사람들이 살아가는 동네처럼 보였다. 2~3층 높이의 직사각형 건물들이 빽빽하게 이어져 있었고, 낡은 외벽과 창살이 덧대어진 창문들이 인상적이었다. 낯설지만 묘하게 현실적인 풍경.


천천히 둘러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그럴 여유는 없었다.


골목을 빠져나오자 갑자기 시야가 트이며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공간이 나타났다. 기찻길 위에서 천등을 날리는 장소였다. 천등은 쉬지 않고 하늘로 떠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기대했던 장관은 아니었다. 라푼젤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수십, 수백 개의 천등이 한꺼번에 떠 있는 모습은 아니었다. 대신 일정한 간격을 두고, 보이지 않는 순서에 따라 하나씩 하늘로 올라갔다.


그 이유는 곧 알게 되었다.


우리는 예약해 둔 매장으로 들어가 각자의 소원을 적기 시작했다. 붉은 종이 위에 앞뒤로 나눠 글을 쓸 수 있게 되어 있었고, 직원은 익숙한 손놀림으로 종이를 넘겨주었다. 한 면을 채우면 곧바로 다음 면이 이어졌다.

그렇게 빠르게 네 면을 채운 뒤, 완성된 천등을 들고 밖으로 나와 순서를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기차 한 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예상하지 못한 순간이라 모두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기차는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갔다. 가까이 지나갈 때는 마치 스치면 위험할 것 같은 긴장감이 느껴졌다.


창문 너머로 우리를 바라보는 사람들과, 선로 위에 서 있는 우리.
서로가 서로를 신기하게 바라보며 손을 흔들었다. 잠깐이었지만, 묘하게 기억에 남는 순간이었다.


곧 우리 차례가 되었다.


기찻길을 건너 조금 한적한 곳으로 이동한 뒤, 직원에게 카메라를 건넸다. 그는 능숙하게 포즈를 요구했다.

“손하트!”
“파이팅!”
“브이!”

유창하지만 어딘가 어색한 한국어 발음. 하지만 그 모습에서 오히려 프로다운 여유가 느껴졌다. 우리는 그의 지시에 순순히 따랐다. 그제야 알았다. 천등이 일정한 간격으로 떠오르던 이유를. 각 팀이 사진을 찍고, 순서를 지키며 천등을 띄우는 과정이 반복되고 있었던 것이다. 혼란 속에서도 나름의 질서가 있었다.


우리가 적은 소원은 그렇게 하늘로 떠올랐다.


손을 떠난 천등이 점점 멀어지며 작아지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문득 그 안에 들어 있는 불씨가 눈에 들어왔다. 생각보다 꽤 큰 불이었다. 그 불씨가 공기를 데우며 천등을 띄우고, 결국 어딘가에 다시 떨어진다. 주변은 온통 나무가 많은 산. 조금은 걱정이 됐지만, 가이드 설명이 떠올랐다.

“여기서는 그런 일 한 번도 없었어요.”

습한 기후와 잦은 비 덕분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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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등을 날리고 나서야 닭날개볶음밥을 받아 들 수 있었다. 생각보다 훨씬 컸다. 그리고 향이 좋았다. 매콤하면서도 구운 닭의 풍미가 분명하게 느껴졌다. 한 입 베어 문 순간, 생각이 스쳤다.

‘아, 이건 성공이다.’

혹시 남으면 내가 다 먹겠다고 했던 걱정은 괜한 것이었다. 우리 네 명 모두 입맛에 잘 맞았다. 대만에서의 첫 길거리 음식은 그렇게 성공적이었다. 그리고 이번 여행에서 기억에 남는 음식 중 하나가 되었다.


기분 좋게 시작한 우리는 곧바로 다음 먹거리를 찾아 나섰다. 대만은 길거리 음식으로 유명한 곳이다. 한국에서는 쉽게 먹을 수 없는 것들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렇게 고민하다 보니 어느새 땅콩 아이스크림 가게 앞에 서 있었다. 두 개를 주문했다. 하나는 고수가 들어간 것, 하나는 없는 것.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우리 가족 모두 고수가 들어간 쪽을 더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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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로 돌아갈 시간이 다가왔다. 두 번의 성공에 취한 우리는 마지막으로 하나를 더 선택했다. 골목 입구에서 본 소시지였다. 멧돼지 소시지인지, 그냥 돼지고기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굽는 모습과 향이 이미 답을 대신하고 있었다.


돌아가는 길, 처음 지나왔던 골목을 이번에는 조금 느리게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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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시지를 한 입 베어 물었다. 마늘과 함께 먹으니 익숙하면서도 낯선 맛이었다. 육즙이 풍부했고, 씹을수록 고기의 결이 느껴졌다. 꽤 잘 만든 소시지였다. 다만 닭날개볶음밥이나 땅콩 아이스크림처럼 ‘여기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함과는 조금 달랐다. 한국에서도 좋은 재료로 잘 구우면 비슷한 맛을 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물론, 어디까지나 느낌일 뿐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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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로 돌아가기 전, 한 번 더 뒤를 돌아봤다. 처음 도착했을 때는 그저 따라가기 바빴던 길. 이번에는 천천히 눈에 담아 보기 위해서였다. 갈 때의 풍경과 돌아올 때의 풍경은 다르다.


앞으로만 보고 걸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돌아보는 순간 비로소 눈에 들어온다. 갈 때의 풍경은 돌아갈 때 모습과 다르다. 돌아가는 길에서 뒤로 돌아야 갈 때 지나친 모습을 볼 수 있다.


들어갈 때 보이는 모습은 갈 때 모습의 반대편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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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몇 장의 사진을 남기고 우리는 버스로 향했다. 서로 다른 듯 닮아 있는 건물들 사이를 지나며, 스펀에서의 시간을 마음속에 조용히 담았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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