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못한 문장이 쌓일 때[1] 왜 글을 쓰고 싶을까

유조일기

by 유조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한 건 특별한 계기가 있어서가 아니다.

[...... 지잉 카톡]
["자기야 저번에 말한 글쓰기모임"]
["책 좋아하니까 한번 도전해 봐"]

그렇게 다시 시작된 나의 일기.



요즘은 하루가 빠르게 지나가는데, 정작 나는 그 안에서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놓칠 때가 많다. 말로 꺼내지 못한 것들이 마음 한쪽에 쌓여서 무거운 먼지처럼 남을 때, 글을 쓰면 그게 조금 가벼워진다. 당시에 표현하지 못했던 게 문장으로 단어로서 표현될 때 내 마음의 위치를 다시 확인하게 해 준다.


나는 말이 적은 편이다. 누군가 길게 묻거나, 불필요한 말을 이어가려 하면 '굳이 왜 저런 말을 하지?'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말 자체가 어렵다기보다, 꼭 필요하지 않아 보이는 말에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은 사람에 가깝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침묵이 편해지고, 말보다는 생각이 먼저 움직인다.


사회에서 사람들이 말하기를 침묵이 어쩌면 좋은 무기가 될 수 있다고 하지만 이 침묵은 때때로 악한 사람들에게 쉬운 먹잇감이 되기도 했다. 이런 일을 겪고 나면 마음속에서 흘러가는 생각들은 나 스스로를 점차 갉아먹었다. 그 누구가 아닌 나 스스로에게 화살을 돌렸고, 나의 마음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시달리는 날들을 보냈다. 잡아두지 않으면 금방 사라질 텐데 왜 나는 곱씹고 있는 걸까 생각이 들던 어느 날, 조금씩 블로그에 글을 쓰면서 조금씩 생각이 정리되고 해답을 찾아나갔고 나를 잃지 않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글을 쓰다 보면, 그날그날의 감정과 상황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별일 아닌 것에도 마음이 출렁였던 이유, 이상하게 예민해진 하루, 지나가면서도 무겁게 남은 말들. 억울함, 부당함, 분노처럼, 말로 대응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던 감정들까지도 아무한테도 설명하지 않아도 글 안에서는 자연스럽게 정리된다. 감정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애쓰는 나한테는 이런 기록이 일종의 균형처럼 느껴진다.


요즘은 예측하기 어려운 불확실성의 균열이 잦다. 가족 일도 그렇고, 내 의지와 상관없이 생기는 내면의 감정적인 피로도 그렇다. 10대, 20대의 어린 날 부당함을 겪게 했던 과거의 잔해들과, 혹은 거짓말로 사람을 엮어 유언비어를 퍼트리는 무례한 사람들의 소음에 노출될 때도 그랬다. 그런 날에는 ‘내가 어디까지 괜찮고 어디부터 힘든지’ 감각이 흐릿해진다.


글은 그 흐릿함의 해상도를 부여해 준다. 글쓰기는 타인의 소음 대신, 내면의 중심을 붙드는 닻이 되어 나의 고유한 목소리를 잃지 않기 위한 유일한 통로가 되어준다. 이는 곧, 격렬한 외부 상황 속에서 저 자신에게 '나는 여기 있고, 괜찮지 않다'는 최소한의 서약을 건네는 사려 깊은 방식이다.


사실 나는 누군가에게 삶의 거창한 메시지를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그럴 의무도, 능력도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내가 지나온 마음의 지도를 어딘가에 남겨두고 싶었다.


그 기록이 언젠가 나를 지키는 단단한 울타리가 되어, 부당함 앞에서 내 내면의 경계를 그리는 무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작은 기대를 품는다. 만약, 아주 가끔 누군가가 내 글을 읽고 ‘나도 이런 마음이었어’라고 느낀다면, 그건 그냥 예상치 못한 보너스 같은 일이다.


글은 나에게 고요한 구심점 같은 존재이다. 소리 없이 내면을 붙잡아주고, 흔들릴 때 돌아올 자리를 마련해 준다. 오늘 하루가 그냥 허무하게 흘러가 버리지 않도록 시간에 새기는 최소한의 표식을 남기는 것. 그 작은 행동이 나를 매일 조금씩 단단하게 만든다는 걸 나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글을 쓴다. 잘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의 나를 잊지 않기 위해서, 세상의 소음 대신 나에게 필수적인 언어만 남기기 위함이다. 글 안에서는 굳이 이유를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라는 결만 남는다. 누군가에게 보이는 내가 아닌 오롯한 나의 결로 돌아오게 하는 나의 근원적인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