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못한 문장이 쌓일 때[2] 나를 바꾼 경험

시급 3,300원짜리의 중국 유학

by 유조
시급 3,300원이 전부였던 시절, 나는 처음으로 세상을 배웠다. 조건은 부당했고 현실은 거칠었지만, 얄궂은 감정 대신 현실을 직시했다. 그때 쌓인 배움들이 내면의 중심을 잡아 주었고, 그 시간들이 모여 중국이라는 낯선 땅으로 나아가는 궤적이 되었다.


2011년, 열여덟의 나는 빵집에서 주말 열 시간 동안 시급 3,300원을 받았다. 의자 하나 없는 매장에서 빵을 썰며, 포장 및 진열과 판매, 청소까지 홀로 도맡아야 하는 쉼 없는 노동이었다. 1년 반 정도 일하며 식대나 휴게시간도 없이 화장실마저 제대로 못 가고 꼬박 서 있어야 했지만, 당시 나는 부당함을 분별하는 감각 자체가 닫혀 있었다. “동네에서 누가 시급 제대로 줘? 원래 그래.”라는 어른들의 말을 진실로 믿었고, 그들이 봉투에 더해준 몇백 원의 호의에 진심으로 고마워했었다.


그러나 이후 프랜차이즈 빵집에서 근로계약서를 쓰면서 알게 되었다.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이 사실은 전혀 당연하지 않았다’는 것을. 기울어진 내면의 저울이 비로소 제 자리를 찾아 무게를 재기 시작했다. 무지를 벗어나, 이제는 내가 나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만이 명확해졌다.


2013년부터는 선박수리업체에서 사무직으로 일했다. 어리다는 이유로, 여성이란 이유로 쏟아지는 불편한 소음들을 속으로 삼키며 그 침묵의 시간 동안 나를 위한 밑천을 묵묵히 모았다. 나의 가능성을 알아봐 준 이사님은 "뭐든 배우고, 기회가 된다면 다시 대학에 가라"며 진심 어린 조언을 건네주셨다. 그 한마디는 막연했던 꿈에 확신을 주었다. 월급을 쪼개 중국어를 배우고, 업무에 필요한 자격증을 땄다. 사무실의 마감이 끝난 주말과 공휴일에는 다시 빵집으로 향하며, 부당한 현실에 내어주지 않을 나만의 영역을 고요히 넓혀갔다.


결국 내가 나를 끌어올려야 한다는 결핍은 학벌에 대한 간절함으로 치환되었다. 2015년 겨울, 사직서를 내고 모은 돈으로 대학에 원서를 냈다. 이듬해 합격과 비자를 받았을 때 오래 짓눌렸던 마음이 한순간에 탁 트이는 해방감을 안겨 주었다.


2016년 8월 말, 9월 출국 4일 전까지 조직과 엮인 일을 마무리했다. 부당한 상사와의 통화는‘사람과 조직에 기대지 않겠다’는 결심에 마지막 쐐기를 박았다. 타인에게 내어줄 마음의 폭을 가늠하며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마음의 선을 그었다. 존경에 대한 기대가 실망으로 돌아왔다. 마음이 씁쓸했다.


10대부터 20대까지 모은 돈으로 홀로 우한에 도착했다. 길을 닦아준 이도, 선택을 대신해 준 이도 없었다. 완전히 홀로 선 여정이었다. 그러나 좋은 친구들과 멀리서 곁을 지켜준 사람의 존재는 내가 나를 믿고 목표를 향해 나아가게 하는 가장 단단한 내면의 지지대가 되어주었다.


2018년 재학 시절, 샤오미 회장 레이쥔의 말이 오래도록 남았다. “우수한 회사는 돈을 벌지만, 위대한 회사는 인심을 얻는다. 비록 당신의 이력서 속 한 줄이지만 영원한 힘이 되어줄 것이다.” 그 말은 부당함 속에서 버티던 내 마음에 작은 균열을 냈다. 사람과 지나온 시간도 결국엔 나를 지탱하는 ‘자’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세상에는 좋은 사람도, 나쁜 사람도 있다. 나는 그 사이에서 스스로 방향을 정하는 주체였다. 그 믿음이 나를 중국 우한까지 이끌었다. 부당함 속에서도 나만의 한 줄을 새기기로 결심했던 순간, 그것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결정적 장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