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선택을 하는 것에 있어서는 굉장히 우유부단한 사람이다.
살아가다가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될 때는 항상
내가 '선택을 함'으로써 불러오는 나비효과들을 생각하다 보면,
좋은 선택을 할 수 있었던 최적의 골든타임을 놓쳐버리고 만다.
그래서 누군가의 눈에 나는 굉장히 게으른 사람, 또는 생각이 깊은 사람으로 비치긴 하지만
사실 그건 가면을 굉장히 잘 쓴 선택장애의 모습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의 기본값이 선택장애라면, 가끔 미친 듯이 추진력이 있는 사람이 되어서 선택을 할 때가 있다.
그 선택은 내 인생에서는 선택이라는 단어로 불리고, 어떤 이에게는 아마 꿈이라고 불릴 것이다.
나는 내 꿈, 하고 싶은 돈벌이 수단은 항상 내 손으로 선택해 왔다.
하지만 내가 이런 선택을 추진력 있게 하듯, 나와 공명하는 타인들도 선택을 하게 된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
나는 꿈이 교수였다.
가르치는 것에는 관심이 하나도 없음에도 꿈이 대학교수였던 이유는,
첫째는 아이들을 좋아하진 않지만, 성인은 좋아하기 때문에.
두 번째는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오면 안정적인 수입이 보장되는 직업.
세 번째는 음악이라는 장르에서 나의 그릇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가 하나 있다.
대학교수는 자격증시험이 아니다.
내가 열심히 공부해서 시험을 보고 합격하는 시스템이 아니라는 것이다.
좋은 대학교의 졸업장, 그 졸업장을 들고 가는 대학원, 대학원에서의 석사/박사 과정.
보통 10년이 넘게 걸리는 시간을 뚫고 올라갔을 때는 비로소 지방대학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돈이 없으면 할 수가 없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그들의 가난한 삶 속에서도 나를 도와주려고 애쓰던 사람들이다.
가장 가까운 부모님부터 먼 친척까지 나를 많이 도와주었다.
나를 도와주려던 그 선택들이 나를 포근하게 안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내 살을 파고들어 피를 내는 가시인 것은 많은 시간이 지나고 난 뒤에 느꼈다.
갑자기 '선택'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냐고 묻는다면
사실 나는 20대 초반 교수의 꿈을 버린다는 선택을 했다.
명문대학교의 졸업장을 딸 수 있었는데, 하필 학점은행제여서 학자금 대출이 어려웠었다.
(그 당시에 학점은행제는 낮은 금융권에서 등록금을 빌렸어야 했다.)
그래서 나는 합격은 했었지만 대학교를 가지 않고, 경제활동을 한다는 선택을 했었다.
하지만 첫 등록금은 내어줄 테니, 입학 후 내가 돈을 벌어서 다니는 것이 어떻겠냐는 가족의 선택이 있었다.
등록금을 내준다는 이야기에 들떠서 추운 줄도 모르고, 같이 합격한 친구들과 신나게 이야기할 때
나의 가족은 재정적으로 힘들 것 같아서 등록금을 뺀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교수의 꿈을 포기한 채 다른 방향을 모색하던
5년 정도의 시간 동안 우리 가족은 사정이 많이 좋아졌다.
경제적으로 괜찮아졌을 때 무엇이 먼저 생각나겠는가?
돈 때문에 대학교를 가지 못했던 내가 생각이 났을 것이다.
그렇게 대학교 이야기가 다시 나왔고,
나는 이야기가 나온 년도에 바로 대학교에 또 합격을 했다.
처음 대학교에 갔을 때는 지하철역 출구에서 나와 내딛는 걸음걸음이 너무 벅찬 느낌이었다.
나도 대학 캠퍼스를 즐길 수 있다는 것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배울 수 있다는 사실에 행복했다.
모든 강의를 단어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듣기 위해 매일 노력했다.
교수님과 면담을 할 때는 항상 나는 교수가 되고 싶다고 말했고,
그들에게 교수가 되기 위한 많은 팁들을 배우고 다시 꿈을 꿀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인생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내가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 채 3개월을 넘지 못하고 우리 가족은 사기를 당했다.
실제로 뉴스에서 다루었던 사기, 그리고 간통까지.
나의 나이가 30이 되는 순간, 두 번째 선택도 강탈당했다.
···
처음부터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아무도 원망하지 않기 때문에, 실제로 아쉬운 소리를 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그들의 선택을 했을 뿐이고, 나는 항상 그 선택지 때문에 피해를 봤던 것뿐이다.
그들은 잘못이 없다.
나의 조카를 위해 선뜻 거금을 내어주는 것도, 나의 아들을 위해 노력했던 시간도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잘못이 있다면 내 선택들을 남들에게 의탁해서 어떤 것도 책임지지 못했던 나에게 있을 것이다.
태어난 것에는 나의 선택이 아니었지만, 떠나는 시간까지는 나의 선택이다.
이제 나는 세 번째 선택을 했고, 나는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다 할 것이다.
두 번의 실패로 깨달은 사실은 내 선택은 그냥 '내 선택.'이라는 세 글자가 아니다.
그 단어 속에는 다른 누군가가 해줄 수 없는, 나만이 할 수 있고,
나만이 책임질 수 있는 힘이 있다.
누군가가 내 인생의 선택권을 가져갈 수는 있어도, 그들이 그에 대한 책임까지 지지는 않는다.
나는 앞으로 죽는 날까지 계속해서 선택을 하겠지만 그건 내 선택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