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

둘리는 어떻게 고길동 집에 눌러앉았나

by 하루

나는 사람들에게 최대한 호의를 베푸려고 한다. 후배가 자료를 부탁하면 준다. 동료가 도움을 요청하면 돕는다. 친구가 부탁하면 들어준다. 왜 그럴까? 호의는 나를 괜찮은 사람으로 만들어주니까. "선생님은 엄청 친절해요." "정말 도움이 많이 돼." "매너가 좋아요." 이 말들이 좋았다. 나는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다. 호의는 나의 명함이었다.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라고 건네는. 그리고 호의는 안전했다. 호의를 베풀면 미움받지 않는다. 거절하면 관계가 틀어질 수 있지만, 도와주면 관계가 좋아진다. 최소한 나빠지지는 않는다. 그래서 나는 계속 베풀었다. 호의를, 친절을, 시간을.


하지만 그러면 언제든지 나의 호의를 당연하게 치부하려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나는 이들을 '둘리'라고 부른다. 둘리를 아는가? 고길동 집에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아기공룡. 처음에 고길동은 호의로 재워줬다. 하룻밤만. 하지만 둘리는 눌러앉았다. 밥도 얻어먹고, 잠도 자고, 집을 제 집처럼 썼다. 고길동이 뭐라고 하면 둘리는 말했다. "고길동 아저씨는 원래 이렇게 잘해주시잖아요~"


내 주변에도 둘리가 있다. 처음엔 한 번 도와줬다. 호의로. "감사합니다! 정말 큰 도움이 됐어요." 그들은 고마워했다. 나도 뿌듯했다. 그래서 두 번째도 도와줬다. 세 번째도. 그런데 어느 순간, 감사가 사라졌다. "이것도 좀 해주세요." 부탁이 요구가 되었다. "빨리 좀 해주세요." 재촉이 들어왔다. "왜 안 해주셨어요?" 하지 않으면 따지기까지 했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어? 이건 내가 해줘야 하는 일이었나?' 하지만 그들은 당연하다는 표정이었다.


'너는 원래 이렇게 해주잖아. 당연한 거 아냐?'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 나의 호의는 그들의 권리가 되어 있었다. 마치 둘리처럼. 고길동의 호의가, 둘리의 당연한 권리가 된 것처럼. 문제는 나도 모르게 그 관계를 만들었다는 거였다. 거절하지 않았다. 경계를 긋지 않았다. 계속 줬다. "괜찮아, 내가 할게" 하면서. 그러니까 그들은 배웠다. 나의 끊임없는 호의가, 그들에게 눌러앉을 자리를 만들어준 것이다.


그리고 더 고통스러운 건, 나 스스로도 혼란스럽다는 거였다. '내가 호의를 베풀었는데, 왜 이렇게 된 거지?' 분명 좋은 의도였다. 도움을 주고 싶었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결과는 이용당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다고 호의를 끊기도 어렵다. "이건 제 호의였습니다"라고 말하면, 나쁜 사람이 되는 것 같아서. '지금까지 해주다가 갑자기 안 해주면, 배신하는 거 아닐까?' '차갑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관계가 틀어지는 거 아닐까?' 이 두려움 때문에, 나는 계속 호의를 베풀었다. 불편해도. 아직 어디서 균형을 잡아야 할지 모르겠다. 호의를 아예 안 베풀 수는 없다. 그건 나 자신을 부정하는 것 같다.


하지만 계속 베풀면 둘리가 생긴다. 내 호의를 당연하게 여기는. 어디까지가 적당한 호의이고, 어디부터가 과한 호의인지. 언제 "여기까지입니다"라고 선을 그어야 하는지. 그것 또한 배움의 과정이다. 30년 넘게 호의를 베푸는 것만 연습했다. '좋은 사람이 되어라. 남을 도와라. 친절하게 대해라.' 하지만 호의를 거두는 법은 배운 적이 없다. '여기까지만 도와줘라. 이제 그만해라. 네 것을 지켜라.' 이건 새로운 언어다. 아직 익숙하지 않은.


이제는 둘리들에게 청구서를 내미려고 한다. '제가 해준 것들, 기억하세요? 그건 공짜가 아니었어요. 제 시간이었고, 제 노력이었고, 제 선택이었어요.' 호의는 선택이어야 한다는 것. 의무감에서 베푸는 호의는, 호의가 아니라는 것. "해줘야 하니까"가 아니라 "해주고 싶어서" 할 때만, 진짜 호의라는 것. 그리고 호의에는 한계가 있어야 한다는 것. 무한정 줄 수는 없다. 나도 사람이니까. 어디선가 선을 그어야 한다. "여기까지입니다"라고.


그 선이 나를 이기적인 사람으로 만드는 게 아니라, 나를 지키는 것이라는 걸. 호의는 내가 주고 싶을 때 주는 것이다. 상대방이 원한다고 줘야 하는 게 아니다. 상대방이 기대한다고 줘야 하는 게 아니다. 내가 주고 싶을 때만 주는 것이다. 여전히 어렵다. 호의를 베풀고 싶은 마음과, 이용당하기 싫은 마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과, 나를 지키고 싶은 마음. 이 둘 사이에서 나는 아직도 흔들린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둘리가 생기는 건, 내 잘못이 아니다. 둘리가 되는 건 그들의 선택이다. 다만 둘리를 계속 재워주는 건, 내 선택이다. 고길동은 계속 화를 냈다. "나가! 나가라고!" 하지만 둘리는 안 나갔다. 왜냐하면 고길동이 실제로 내보내지 않았으니까. 나도 마찬가지다. "이건 제 호의였습니다"라고 말만 하고, 실제로 호의를 거두지 않으면 소용없다. 말과 행동이 일치해야 한다. 아직 어디서 균형을 잡아야 할지 모르겠다. 언제 호의를 베풀고, 언제 거둬야 하는지. 어떻게 좋은 사람으로 남으면서도, 나를 지킬 수 있는지. 그것 또한 배움의 과정이다.


서툴고, 실수하고, 후회하면서 배운다. 오늘 아침, 또 부탁이 들어왔다. 나는 물었다. 내게. '나는 이걸 하고 싶은가?' 그리고 답했다. 솔직하게. 하고 싶으면 했다. 하고 싶지 않으면 거절했다. 균형은 아직 못 찾았지만, 방향은 찾았다. 나의 호의는 나의 선택이어야 한다는 것. 둘리에게 자리를 내줄 것인지, 내보낼 것인지도 나의 선택이어야 한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