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 나빠"라는 네 글자

솔직함은 관계를 맑게 한다

by 하루

기분이 나빴다. 하지만 나는 말하지 못했다. "괜찮아요." 왜 말하지 못했을까?


말하면 관계가 틀어질 것 같아서. '기분 나빠'라고 말하는 순간, 상대방이 당황할 것이다. 화를 낼 수도 있다. 그리고 나는 예민한 사람이 될 것이다. 까다로운 사람이 될 것이다. 그게 무서웠다. 말하면 내가 나쁜 사람이 될 것 같아서. '농담인데 왜 그렇게 받아들여?' '별것도 아닌 걸 가지고.' 상대방은 생각할 것이다. '쟤 너무 예민하네.' 그럼 나는 문제 있는 사람이 된다. 어른스럽지 못한 사람이 된다. 그게 싫었다.


말하면 분위기가 나빠질 것 같아서. 공기가 무거워진다. 침묵이 흐른다. 어색함이 자리를 차지한다. 그 불편함을 견디는 게 두려웠다. 차라리 내가 참으면, 분위기는 괜찮았다. 다들 웃고, 대화는 계속 흘렀다. 그래서 나는 참았다. 기분 나쁜 농담을 들어도 웃었다. 무례한 말을 들어도 넘어갔다. 선을 넘는 행동을 봐도 괜찮은 척했다. "괜찮아요." "별거 아니에요." "하하,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참은 감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마치 땅에 묻은 씨앗처럼, 그 감정은 내 안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썩었다. 처음엔 작은 불편함이었다. '좀 기분 나쁘네. 하지만 뭐, 괜찮아.' 며칠 지나면 잊힐 줄 알았다. 하지만 잊히지 않았다. 그 감정은 내 안에 가라앉아서, 무게가 되었다. 그리고 쌓였다. 기분 나빴던 일 하나, 참았던 감정 하나, 웃으며 넘긴 순간 하나. 그것들이 쌓이고 쌓여서, 어느 순간 무거운 짐이 되어 있었다. 말하지 않은 감정은 썩는다.


신선한 과일을 냉장고에 넣지 않고 그냥 두면 어떻게 될까? 썩는다. 냄새가 난다. 주변까지 상하게 만든다. 감정도 마찬가지다. 표현하지 않고 그냥 참으면, 그 감정은 내 안에서 썩는다. 그리고 나를 상하게 만든다. 참으면 관계가 좋아질 줄 알았다. 내가 참으면 상대방이 편하고, 상대방이 편하면 관계가 좋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참으면 관계가 탁해진다. 겉으로는 괜찮아 보였다. 웃고, 대화하고, 함께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내 안에는 앙금이 쌓였다. '그때 그 말, 기분 나빴는데.' '저번에 그런 행동, 솔직히 별로였는데.' 그 앙금들이 쌓이면서, 관계는 점점 흐려졌다. 맑은 물이었던 관계가, 뭔가 찌꺼기가 떠다니는 탁한 물이 되었다.


그리고 어느 날, 폭발했다. 작은 일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참았을 일이었다. 하지만 그날은 참을 수 없었다. 그동안 쌓였던 모든 게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상대방은 당황했다. "왜? 갑자기?" '갑자기'가 아니었다. 오래전부터였다. 수없이 참았었다. 하지만 상대방은 몰랐다. 나는 한 번도 말한 적이 없었으니까. 나는 깨달았다. 참는 건 관계를 위한 것이 아니라, 관계를 망치는 것이었다. 솔직하게 말하지 않으니까, 상대방은 모른다. 모르니까, 계속 같은 행동을 한다. 그리고 나는 계속 참는다. 그렇게 관계는 거짓 위에 쌓인다. 솔직함이 무서웠다.


"기분 나빠"라고 말하는 것. 그 네 글자가 이렇게 무거울 줄 몰랐다. 입 밖으로 꺼내려고 하면, 목이 막혔다. 심장이 빨리 뛰었다. 손에 땀이 났다. 하지만 언제가는 시도해야 할 말이었다. 한번 질러봤다. 속 시원하게. 그렇지만 내가 그렇게 두려워했던 일. 관계가 틀어지고, 분위기가 나빠지고, 내가 나쁜 사람이 되는 일.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솔직함은 관계를 망치지 않았다. 오히려 맑게 만들었다. 참았던 감정을 말하니까, 내 안의 앙금이 사라졌다. 관계가 다시 투명해졌다. 물이 맑아지는 것처럼.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감정을 말하지 않으면, 상대방은 영원히 모른다. 상대방은 초능력자가 아니다. 내 마음을 읽을 수 없다. 내가 웃으면, 상대방은 '괜찮구나' 하고 생각한다. 내가 "괜찮아요"라고 말하면, 상대방은 '정말 괜찮구나' 하고 믿는다. 솔직함은 상대방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었다. '당신의 말이 나를 아프게 했어. 당신의 행동이 나를 불편하게 했어.' 이렇게 말하면, 상대방은 바꿀 수 있다.


하지만 말하지 않으면, 상대방은 기회조차 없다. 솔직한 감정 표현은 예민함이 아니라, 용기다. 감정을 숨기는 건 쉽다. 웃으며 넘어가는 건 익숙하다. 하지만 "기분 나빠"라고 말하는 건 어렵다. 그 어려움을 무릅쓰는 건, 용기다. 그리고 그 용기가 관계를 살린다. 참으면 관계가 좋아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썩어갔다. 솔직하면 관계가 틀어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단단해졌다. 나는 이렇게 살아가겠다. 기분 나쁠 땐 말하겠다. "기분 나빠." "그 말, 별로였어." "그건 좀 그랬어."


짧게, 명확하게, 솔직하게. 변명하지 않고. 미안해하지 않고. 내 감정은 정당하다. 표현할 가치가 있다. 참지 않겠다. 30년 넘게 참는 걸 미덕으로 배웠지만, 이제 안다. 참는 건 미덕이 아니라 독이었다. 나를 썩게 하고, 관계를 탁하게 만드는. 솔직하겠다. 두려워도. 떨려도. 어색해도. 내 감정에 빛을 비추겠다. 어둠 속에 숨기지 않고, 밝은 곳으로 꺼내겠다.


그리고 믿겠다. 말해도 지구는 안 망한다는 것을. 관계는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을. 오히려 맑아진다는 것을. 물론 여전히 어렵다. "기분 나빠"라고 말할 때마다, 심장이 뛴다.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이 생각이 올라온다. 하지만 이제는 그래도 말하겠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때로는 말하고 후회할 수도 있다. 때로는 말했어야 하는데 참을 수도 있다. 그래도 괜찮다. 중요한 건 방향이다. 나는 감정을 표현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겠다. 참는 사람이 아니라. 웃으며 넘기는 사람이 아니라. 솔직한 사람으로. 내 감정을 존중하겠다. 다른 사람의 감정만큼.


내 감정도 중요하다. 내 감정도 가치 있다. 내 감정도 말할 권리가 있다. 그리고 관계를 믿겠다. 진짜 관계라면, 내 솔직함을 견딜 수 있을 것이다. 진짜 사람이라면, 내 감정을 존중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건 애초에 건강한 관계가 아니었을 것이다. 이제 나는 안다. 참은 감정은 썩는다. 하지만 표현한 감정은 흐른다. 물처럼. 맑게. 자유롭게. 그렇게 나는 흐르는 사람이 되겠다. 고인 물이 아니라. 막힌 물이 아니라. 흐르는 물처럼. 감정을 담았다가, 표현하고, 흘려보내는.

작은 것부터 시작하겠다. "그 말, 좀 그랬어." "그건 별로였어." "기분 나빴어." 이 네 글자, 다섯 글자를 연습하겠다. 그리고 매일 확인하겠다. 말해도 지구는 안 망한다는 것을. 관계는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을. 오히려 더 건강해진다는 것을. 나는 이렇게 살아가겠다.


솔직하게.

용기 있게.

맑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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