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이 인정해주지 않으면 끝나는 것
나는 타인에게 인정받으려는 욕구가 강한 사람이다. 이 문장을 쓰는 것조차 불편하다.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머뭇거린다. 인정 욕구가 강하다는 걸 인정하기 싫었다. 왜냐하면 그건 결핍처럼 들렸으니까. '유년기에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 '부모님이 충분한 사랑을 주지 못한 사람.' '어딘가 채워지지 않은 구멍이 있는 사람.' 나는 그렇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부모님은 나를 끔찍이 사랑하신다. 나 없으면 하루도 못 사는 분들이다. 내가 아프면 밤새 걱정하시고, 내가 기쁘면 함께 기뻐하시고, 내가 힘들면 누구보다 속상해하신다. 부족함이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인정 욕구가 강하다. 그렇다면 이유는 다른 데 있겠지. 부모님의 사랑 부족 때문이 아니라, 나 자신 때문일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가진 성향일 수도 있고, 살아오면서 학습된 패턴일 수도 있다.
뭐가 됐든, 나는 인정 욕구가 강하다. 나에게 인생은 늘 증명이었다. 초등학교 때는 공부를 잘해야 했다. '나는 똑똑한 아이예요. 가치 있는 아이예요.' 중학교 때는 상 받는 아이여야 했다. '나는 특별한 아이예요. 인정받을 만한 아이예요.' 고등학교 때는 좋은 대학에 가야 했다. '나는 성공한 사람이에요. 자랑스러운 사람이에요.' 대학에 가서는 학점으로, 수상 경력으로, 활동으로. 직장에 들어가서는 성과로, 인정으로, 칭찬으로. 늘 뭔가로 나를 증명해야 했다.
취미 생활도 마찬가지였다. 운동을 하면 열심히 해야 했다. '나는 꾸준한 사람이에요.' 글을 쓰면 잘 써야 했다. '나는 재능 있는 사람이에요.' 여행을 가면 멋진 사진을 찍어야 했다. '나는 삶을 즐기는 사람이에요.' 이것저것 열심히 살아가는 것 자체가 내 인생을 증명하는 모습이었다. '보세요, 나는 이렇게 열심히 살아요.' '보세요, 나는 이렇게 가치 있는 사람이에요.' '보세요, 나는 인정받을 만한 사람이에요.'
그런데 문제는 끝이 없다는 거였다. 증명하고 또 증명해도,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 정도면 충분할까?' '사람들이 나를 인정해 줄까?' '혹시 내가 부족한 건 아닐까?' 증명의 인생은 평화가 없었다. 늘 긴장했다. 늘 불안했다. 늘 조바심이 났다. 왜냐하면 증명의 끝은 내가 정하는 게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증명하려는 것에는 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내가 아무리 잘해도,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내가 아무리 애써도. 결국 남이 인정해주지 않으면 끝나는 것.
그것이다. 나는 내 인생의 주인이 아니었다. 주인은 타인이었다. 타인이 "좋다"라고 하면 나는 가치 있는 사람이 되었다. 타인이 "별로다"라고 하면 나는 가치 없는 사람이 되었다. 타인이 "인정한다"라고 하면 나는 존재할 이유가 생겼다. 타인이 "인정 안 한다"라고 하면 나는 존재 이유를 잃었다. 내 가치는 타인의 손에 달려 있었다.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얼마나 잘했다고 내가 생각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타인이 인정해 주는가. 그것만이 중요했다.
그래서 나는 타인의 눈치를 봤다. '이렇게 하면 인정받을까?' '저렇게 하면 칭찬받을까?' '이건 괜찮을까? 저건 부족할까?' 그래서 나는 타인의 기준으로 살았다. '이 정도면 잘한 거지?' '사람들이 좋다고 하니까, 나도 좋은 거겠지?' '다들 이렇게 하니까, 나도 이렇게 해야 맞는 거겠지?' 내 기준은 없었다. 나는 뭘 좋아하는지, 나는 뭘 원하는지, 나는 뭐가 좋은지. 몰랐다. 아니, 중요하지 않았다. 타인이 인정해 주는 것이 중요했다.
그리고 어느 날 알게 됐다. 나는 나를 살고 있지 않았다. 나는 타인이 원하는 나를 살고 있었다. 타인이 인정할 만한 삶을, 타인이 칭찬할 만한 모습을, 타인이 좋아할 만한 사람을. 증명의 인생은 피곤했다. 늘 뭔가를 보여줘야 했다. 늘 뭔가를 해내야 했다. 늘 뭔가로 나를 입증해야 했다. 쉴 틈이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타인의 인정은 채워지지 않는 항아리였다. 아무리 부어도, 아무리 채워도, 바닥이 보였다. 왜냐하면 그 항아리에는 구멍이 있었으니까.
타인이 오늘 나를 인정해 줬다고 해서, 내일도 인정해 준다는 보장은 없었다. 타인이 지금 나를 칭찬했다고 해서, 나중에도 칭찬한다는 보장은 없었다. 타인의 마음은 변한다. 그리고 나는 그 변하는 마음에 휘둘렸다. 나는 지쳤다. 증명하는 것도, 인정받으려 애쓰는 것도, 타인의 눈치를 보는 것도. 다 지쳤다. 그리고 물었다. 나 자신에게. '나는 정말 나를 증명해야 하는 사람일까?' 아니었다.
나는 증명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었다. 태어났다는 것만으로,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이미 충분히 가치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걸 믿지 못했다. '나는 뭔가를 해내야 가치 있는 사람이야.' '나는 인정받아야 존재 이유가 있는 사람이야.' 이렇게 믿었다. 그래서 나는 증명의 굴레에 스스로를 가뒀다. 타인이 가둔 게 아니라, 내가 나를 가둔 것이다.
나는 이제 나오고 싶다. 증명의 굴레에서. 인정 욕구의 감옥에서. 타인의 시선이라는 우리에서. 나는 이제 나를 살고 싶다. 타인이 원하는 내가 아니라. 타인이 인정하는 내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나를. 쉽지 않을 것이다. 30년 넘게 증명하며 살았는데, 갑자기 증명을 멈추는 건 어렵다. 타인의 인정이 없으면 불안할 것이다. 타인의 칭찬이 없으면 공허할 것이다.
하지만 연습하겠다. 타인이 뭐라고 하든, 나는 내 기준으로 살아가는 것을. 타인이 인정 안 해줘도, 나는 나를 인정하는 것을. 타인이 칭찬 안 해줘도, 나는 나를 칭찬하는 것을. 내가 나의 판사가 되겠다. 타인이 아니라. 내가 내 인생을 평가하고, 내가 내 가치를 정하고, 내가 나를 인정하는. 그런 사람이 되겠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타인이 보기에 부족해도 괜찮다. 증명하지 않아도 괜찮다. 나는 존재 자체로 충분하다. 여전히 인정 욕구는 강하다.
오늘도 타인의 눈치를 보고, 타인의 반응을 살피고, 타인의 인정을 바란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타인의 인정은 보너스다. 있으면 기쁘지만, 없어도 나는 괜찮다. 내가 나를 알기 때문에. 나는 증명할 필요 없는 사람이다. 나는 인정받기 위해 사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그냥 나로 살아가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