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곁에는 '진짜'만 남았다

가짜가 걸러지고 진짜만 남았다

by 하루

처음엔 당황스러웠다. '왜 멀어지지?' '내가 뭘 잘못했지?' '예전처럼 가까웠는데...' 내가 변한 것은 간단했다. 거절하기 시작했다. "미안, 이번엔 어려울 것 같아." 경계를 긋기 시작했다. "그 말, 기분 나빠." 내 기준으로 살기 시작했다. "나는 이렇게 하고 싶어." 그러자 사람들이 떠났다. 전화가 뜸해졌다. 카톡이 줄어들었다. 만나자는 연락이 사라졌다.


처음엔 슬펐다. '내가 너무 차갑게 변한 건가?' '내가 너무 이기적으로 변한 건가?' '예전의 나로 돌아가야 하나?'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상했다. 왜 내가 거절하니까 떠나는 거지? 왜 내가 경계를 긋니까 멀어지는 거지? 왜 내가 내 기준으로 살기 시작하니까 연락이 끊기는 거지? 그리고 깨달았다. 그들은 예전의 나를 좋아했던 것이다. 거절 못 하는 나. 경계 없는 나. 남의 기준으로 사는 나. 그들은 지금의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지금의 나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그들이 원했던 건 이용할 수 있는 나였다.


고등학교 친구들이 떠났다. 10년 넘게 알고 지낸 사람들이었다. 함께 웃고, 함께 울고, 함께 시간을 보낸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내가 변하자, 멀어졌다. 처음엔 붙잡으려고 했다. '이 관계를 다시 회복해야 하는 거 아닐까?' '내가 먼저 연락해야 하는 거 아닐까?' '내가 양보하면 다시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나는 지쳤다. 관계를 붙잡으려는 게 오히려 나를 더 지치게 만들었다. '왜 나만 애쓰고 있지?' '왜 나만 먼저 연락하고 있지?' '왜 이 관계를 유지하려고 나만 노력하고 있지?'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이 관계를 붙잡으려는 이유는 단 하나. '오래 알고 지낸 사람'이라는 이유. 그게 다였다. 그들이 나를 존중해서가 아니었다. 그들이 지금의 나를 좋아해서가 아니었다. 그들과 함께 있으면 행복해서가 아니었다. 그냥 오래 알고 지냈으니까. 시간이 관계를 정당화하지 않는다. 10년을 알았다고 해서, 그 관계가 좋은 관계인 건 아니다. 20년을 알았다고 해서, 그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건 아니다.


중요한 건 시간이 아니라, 질이다. 나는 시도를 멈췄다. 더 이상 먼저 연락하지 않았다. 더 이상 관계를 회복하려 애쓰지 않았다. 더 이상 붙잡으려 하지 않았다. 그랬더니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카톡방은 조용해졌다. 전화는 오지 않았다. 명절에도 연락이 없었다. 처음엔 허전했다. '10년 넘게 알고 지낸 사람들이 이렇게 쉽게 사라지는구나.' '함께했던 추억들이 이렇게 가벼운 거였구나.' 하지만 후회는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알았으니까. 그들은 진짜 친구가 아니었다는 것을. 진짜 친구는 내가 변해도 남는다. 내가 거절해도, 내가 경계를 그어도, 내가 내 기준으로 살아도. 진짜 친구는 그걸 존중한다.


"그래, 네가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네 선택을 응원해." "변한 네 모습도 좋아." 가짜 친구는 내가 변하면 떠난다. 왜냐하면 그들이 원했던 건 나 자체가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원했던 건 내가 해주는 것이었으니까. 내 시간, 내 노력, 내 희생. 내가 변하자, 걸러졌다. 떠난 사람들은 나를 이용하려던 사람들이었다. 남은 사람들은 나 자체를 존중하는 사람들이었다. 이것이 인맥의 정예화다. 양은 줄었다. 많이 줄었다. 하지만 질은 높아졌다. 정말 높아졌다. 예전에는 100명의 지인이 있었다. 하지만 그중 진짜 나를 아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 예전의 나만 알았다. 거절 못 하는, 경계 없는, 남의 기준으로 사는.


고등학교 친구들과 멀어진 게 슬프냐고 묻는다면. 아니다. 슬프지 않다. 후회하냐고 묻는다면. 아니다. 후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이제 알기 때문이다. 그들은 나를 떠난 게 아니라, 예전의 나를 떠난 것이다. 그리고 예전의 나는 진짜 나가 아니었다. 내가 변한 게 아니라, 진짜 내가 된 것이다. 거절할 수 있는. 경계를 그을 수 있는. 내 기준으로 살 수 있는. 진짜 나. 그리고 그 진짜 나를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들이 떠났을 뿐이다. 그들의 선택이다.


나는 존중한다. 남은 사람들은 다르다. 내가 거절해도 이해한다. 내가 경계를 그어도 존중한다. 내가 내 기준으로 살아도 응원한다. 그들은 나 자체를 좋아한다. 내가 해주는 것 때문이 아니라. 내가 얼마나 잘하는지 때문이 아니라. 그냥 나이기 때문에. 이것이 진짜 관계다. 조건 없는. 기대 없는. 계산 없는.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는. 떠난 사람들에게 미안하지 않다.


내가 변한 건 내 선택이다. 그들이 떠난 건 그들의 선택이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다만 이제는 안다. 관계는 억지로 붙잡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흐르는 것이라는 것을. 억지로 붙잡은 관계는 무겁다. 나도 지치고, 상대방도 지친다. 왜 붙잡아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그냥 붙잡는다. '오래 알았으니까.' '정이 들었으니까.' '헤어지면 아쉬우니까.' 하지만 자연스럽게 흐르는 관계는 가볍다. 애쓰지 않아도 편하다. 붙잡지 않아도 남는다. 진짜이기 때문에. 나는 이제 억지로 붙잡지 않는다. 떠나는 사람은 보낸다. 남는 사람과 함께한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하다.


내 곁에는 진짜만 남았다. 양은 적다. 하지만 질은 높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있으면 평화롭다. 억지로 웃지 않아도 된다. 억지로 맞춰주지 않아도 된다. 억지로 좋은 사람인 척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나로 있으면 된다. 고등학교 친구들이 떠났다. 10년 넘게 알고 지낸 사람들이 떠났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왜냐하면 나는 이제 알기 때문이다. 그들은 가짜였고,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은 진짜라는 것을. 그리고 진짜만 있으면 충분하다는 것을. 관계를 다시 잡으려고 애쓰는 게 나를 지치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시도를 멈췄다. 그리고 놀랍게도, 평화가 찾아왔다.


후회는 없다. 단 한순간도. 떠난 사람들을 그리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남은 사람들과 함께 있는 지금이 더 행복하기 때문이다. 내가 변하자, 사람들이 떠났다. 그리고 그게 가장 좋은 일이었다. 가짜가 걸러지고, 진짜만 남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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