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초반이라는 나이는 고객들에게 전재산과 맞먹는 규모의 자산을 투자하는 인테리어공사를 맡기기엔 리스크가 있는 결정에 속했다. 서너 건의 크지도 작지도 않은 공사를 맡게 된 건 순전히 싼 견적이 필요했던 상호 간의 필요에 의한 선택이었다.
공사를 마치고 수익률을 계산하는 일은 애초에 의미가 없었다. 어차피 공사를 시작할 때부터 난 별 수익을 기대하지 않았었고, 그들 또한 투입할 예산이 부족하니 싸게 처리하고 싶은 입장으로 성사된 공사였음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이 행위는 돈 버는 것과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각 공정팀의 진척이 더딜 때마다 공사비가 줄어드는 압박은 모두 다 나 스스로가 판 '싼 견적서'라는 구덩이였다.
교환가치에 비해 남는 것도 없는 저가수주. 그들의 눈에 비친 나는 그럴싸한 사무실과 화려한 포트폴리오를 갖춘, 소위 '인테리어 좀 한다'는 사람들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을 건 뻔했다.
인테리어업은 까다롭고, 시공자들 공정에 신경 쓸 일도 많고, 돈도 되지 않는 불확실성의 연속이었고 위아래로 치이는 희한한 '사업'이었다.
필름 쪽은 그 당시 한창성행하던 찜질방들과 테마모텔 같은 단가 좀 나오는 현장들이 이어졌고 주택은행과 국민은행이 합병한 KB금융, 조흥은행과 제일은행이 합병한 '스탠더드차타드' 은행현장의 필름공사들이 마무리되는 시기였다. 부산을 드나들며 '부산은행'지점들과 광역시들의 'BC카드' 지점등으로 여전히 바쁜 필름공사를 하고 다녔다.
필름공정을 하러 현장에서도 어쩔 수 없이 인테리어 전체의 프로세스가 자꾸 눈에 들어온다.
"넌 필름쟁이야" 이건 복잡하고 돈도 안 되는 그럴싸한 조율놀이에 불과해.
능동 어린이대공원 정문 옆 'ㅇㅇ빌라트', 세대별로 할당된 전용주차장과 공용현관엔 번호키가 있었고 강화유리 슬라이드자동문이 있는 제법 고급빌라에 살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소비는 생산을 창출한다'는 이론을 실행에 옮기며 광장동 'W'호텔 '바'로 향했다. 피나콜라다를 한잔 시켜놓고 -내 심정은 소주 한 병이었지만- 담배를 꺼내 밖으로 나갔다. 아차산 자락에서 내려다보니 강변에 내려앉은 안개 너머로 '광진도서관'이 보인다.
평일 저녁의 바는 한적했다. 실내 좌석은 야외 공연장처럼 계단식으로 배치돼 있었는데 조도는 어두울 정도였고 내외부의 경계를 모호하게 한 설계는 묘한 편안함을 선사했다. 열대 나방유충이 들어있는 테킬라 엑스트라급 한 병을 주문하게 된 건 '바' 하단의 홀로그램 같은 현란한 무지개 조명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완벽하게 설계된 '인테리어 마케팅'이었다."
만져보지 않아도 손끝에 전해질 것 같은 벽의 질감마저 몽환적이다.
숏트헤어에 몸매가 드러나 보이는 스판 검정모직바지를 입은 여자 서버가 내 테이블에 청포도 몇 알갱이와 그 술병을 내려놓았다.
압도적인 공간감. 메뉴판의 테킬라 값은 싸게 마저 느껴졌고, 서라운드 음향장비에서 Santana의 'smooth'가 흘러나올 땐 내게 왜 이러나 싶을 정도로 마음을 사로잡았다.
평범해 보이는, 약간 어두운 표정으로 스타렉스를 타고 온 이 필름인간을 따스하게 품어주는 것 같았다. 여전히 올림픽대교 교탑위엔 횃불 모양을 한 성화가 깜박거리고. 지난 몇 달간의 위태로운 외도에도 아직 무탈함에 안도하며, 동시에 내 사업의 정체성에 혼란스러웠다.
술병 바닥이 드러나 보일 때쯤이었다. 웰컴투동막골에 나온 강혜정을 닮은 여자서버가 다시 내 테이블로 다가왔다.
'더블유 바'에서 한 병 이상 구매한 자 에게 호텔숙박비를 30프로 할인해 준다는 말에 잠시 망설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음주운전을 할 수는 없었으니까. 동시에 세계적으로 트렌디한 객실인테리어를 볼 수 있는 기회는 내 호기심을 자극했다. '바'로 유입시켜서 객실로 올라가게 만드는 참다운 인테리어마케팅을 구사하고 있었다. 난 유혹에 약한 남자였다.
다음날.
목동의 한 대형마트현장, 오기로 한 외주작업팀은 말도 안 되는 핑계로 오지 않았다. 마트의 신선코너 상단 MDF면에 당근이며 물방울이 맺혀있는 신선채소들의 실사이미지가 인쇄돼 있는 캘지*를 붙이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간판집에서 출력된 자재를 공수해 온 현장소장은 이들의 마감 수준에 걱정 어린 눈빛이 선 했다. 숙련된 오버레이전문인 우리 팀이 붙여 주기로 하고 나서야 외부간판 작업자들은 시끄럽고 어수선한 현장을 빠져나갔다.
인테리어에 관해선 나도 저들과 다를 게 없었단 생각을 하니, 이런저런 아쉬움을 남긴 페라가모와 새라헤어녀에게 미안한 마음마저 들었다. 그들 또한 인테리어구매 경험이 없는 초보 점주들이었을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필름 쟁인가 인테리어 쟁인가.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법'이라고 자꾸 현장에서 내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타 공정들에 눈길이 간다.
'간판장이로 가자. 이게 더 나아 보인다.'
틴팅필름, 에칭시트, 캘지, 유포지, 쏠벤인쇄시트, 시트컷팅, 돔보컷팅 다 윈도에 붙이는 필름의 종류다.
선릉역 8번 출구 'ㅇㅇ시트'는 필름과 간판재료를 유통, 가공하는 업체였다. 자재출고로 이곳을 자주 드나들었고 간판업자들과도 안면이 트여 광고시트* 작업도 해 봄직한 일거리가 되었다.
커피를 타 건네주던 미스 리는 내게 늘 친절했다. 그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다.
W호텔 바에서 잠시 내 이성을 마비시켰던 요소는 '디스플레이와 싸인물'(시각디자인)이었다.
선릉역 시트사장의 주문으로 안성 세븐힐스 컨트리클럽 그린이 내다보이는 라운지 카페의 유리 틴팅작업을 하게 된다.
고가의 비산방지 및 시선차단과 열차단이 되는 필름이다. 이쪽 분야도 업종에 담는다.
마석 상생공단 가구공장.
페라가모의 룸방에 가구납품을 소개했던 박사장을 찾아갔다.
추운 계절, 사무실옆 조립식 패널로 만들어진 방에 말 그대로 소주병과 멸치가 널브러져 있었다. 어깨에 이불을 반쯤 뒤집어쓰고 있는 그가, 낼모레 어머니생신에 찾아뵐 경비를 빌려 달라고 한다. 석 달이나 밀려있는 천만 원 남짓의 미수금을 독촉하러 찾아갔는데 되려 이십만 원을 내놓으라니.
일단 '이 사람을 살려야 한다. 그래야 오백이라도 받는다.'
미수금의 절반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은 반토막난 주주의 '물타기'논리와 비슷했다. 이십만 원을 건네주고 성과는커녕 착잡함을 안고 공장을 나왔다.
인테리어업체를 통해 백화점, 학교, 대형사무실 등에 직접생산 하여 납품하는 가구업체였는데 나는 맞춤가구들에 최종 옷을 입히는 필름마감을 맡아 처리했다. 동남아근로자들도 보이지 않는 걸로 봐선 사실상 공장생산라인이 멈춰있었다.
업체 간의 거래에서 잘못되는 건 한순간이다. 이게 단종업체의 한계라는 거.
프랜차이즈 브랜드 매장들을 공사하는 업체의 현장소장이 내게 귀띔을 해준다. 급여가 몇 달 밀려있고 회사는 폐업수순으로 갈 것 같다고. 이 업체에도 난 꽤큰 금액의 미수금이 물려 있었다. 불안한 마음에 매출세금계산서 발행증빙으로 '지급명령' 소송을 제기했다. 서너 달 후'승소판결정문'을 받았지만 지급해 줄 거래처는 자본금 잠식상태의 법인이었고 폐업하게 되면 사실상 돈 받을 길이 없었다. 청산하면 그만이다. 과점주주(자사주식지분이 50%를 초과하는 대표이사)가 아니면 대표개인적으로 지급해 줄 의무도 없다. 나도 희망이 없어 보인다.
내가 막 인테리어로 전향을 시도하고 회의에 빠져 있을 때 많은 영향을 받은 사람이 있었다. 그는 내 거래처 중 역삼역사거리 내리막길에 위치한 규모가 갖춰진 인테리어업체의 '실장님'이었다. 그 후에 자신의 인테리어회사를 창업하고 금융업계 일을 수주받는 업체로 성장시켜 나갔다. 의례 날 매 현장으로 불러 줬다. 그는 쪼잔하지 않을 정도로 세심했고, 차분한 말투에 어울리는 실버프레임 안경을 착용하고 있었다. 또 현장 작업자들이 모여 믹스커피와 담배를 피우는 동안, 현장에 임시로 펼쳐놓은 콜핑테이블에서 개별포장된 곡물이 박혀있는 떡과 원두커피를 즐기는 인물이었다.
오후 5시. 다들 연장벨트를 풀어놓고 떠난 현장에서 청소를 돕고 같이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다. 그의 출시된 지 얼마 안 된 진주색 그랜저 XG 조수석에 '블루오션전략'이란 파란색 표지의 책이 놓여 있었다.
내가 인테리어업으로 전환하고자 한 것은 빈번하게 발생하는 미수금 문제를 피하고 싶어서였다.
인테리어공사 계약에서 최 상위단계에 있는 인테리어업체는 일반소비자에게 공사비를 받지 못하는 경우는 드물다. 인테리어업체가 시공업체에게 제때에 지급하지 못하는 건 대부분 고정비가 많은 운영구조 때문이다.
미수금으로 사업의 향방에 회의적인 생각으로 실의에 빠져있던 그때, 뜬금없는 '블루오션 전략'이 있다니, 난 퇴근길에 곧장 강변역 테크노마트 서점으로 달려갔다. 앞장의 서문과 뒤표지의 추천사만 읽었는데도 든든함 마저 든다. 그간의 마케팅 책들과는 또 다른 시선의 통찰을 보여준다.
단 한 권의 책을 읽은 사람이 위험하다는 걸 경계하고 살았지만 난 이런 마케팅전략에 관한 책이라면 수십 권을 섭렵한 사람 아닌가. 더군다나 그 보다 더 위험한 건 난관을 타개하기 위한 변화를 시도하지 않는 것이다.
얼마 후 박동은 전자책 만드는 회사로, 개구리는 울산으로 내려가 '인테리어'회사로 들어가기로 한다.
블루오션 따윈 없을지도 모른다. 난 좀 지쳐 있었고. 이런 상황이 나 스스로를 그저 책 한 권으로 설득하고 있었다.
이때 성동세무서에서 고지받은 체납부가세와 종합소득세는 7000만 원에 육박했다. 사업자는 직권폐업된 상태였고. 선택은 이미 서울을 떠나는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이곳의 아침공기는 신선했다.
비염석인 코가 뻥 뚫리고 머릿속 마저 맑게 해 준다. 최근의 골칫거리들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었고
내가 누군지 모르는 곳이다.
필름업체라 해도, 인테리어 하는 사람으로 소개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곳.
여기로 날 스며 넣기로 한다. 날 간판업자로 보는 이도 있었다. 내 '주업'이 필름일 뿐이지 틀린 말은 아니었다.
정보의 비대칭이랄까 그게 뭐든 지방은 다 비쌌다. 비싸서 비싼 게 아니라 비싸도 되는 시장이었다. 수요도 적고 공급은 더 적은 시장. 어차피 보통의 소비자들은 꼬치꼬치 파가며 골치 아프게 신경 쓰고 싶어 하지 않는다. 치악산으로 둘러싸인 이 도시는 익숙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적막하기도 했다.
옛말에 돈을 벌라면 시골로 가라는 말이 있다. 그곳에는 경쟁이 적거나 없으니 거의 독점에 가까운 위치를 점할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리라.
이런 게 '블루오션'아니겠는가! 경쟁하지 않는 것이 최고의 경쟁력이라니 아무튼 난 '원주'에서 유일한 필름업체가 된다.
레드빛 도시에서 내가 만나왔던 수많은 단종업체의 사장들처럼 나도 어딘가에서 소주 한잔에 넋두리를 말아 마시며 미수금만 세고 있을 수는 없었다.
진주색 그랜저 XG 조수석의 그 영롱한 파란색 표지는 '치악산'의 푸르름과 닮아 있었다.
*캘지 : 사진 이미지 등을 인쇄한 광고용 필름.
*광고시트 : 상업시설의 주로 유리면에 부착하는 글자와 로고가 인쇄된 이미지 필름들의 총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