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ginner's Luck

초심자의 행운

by 인디에이전트

한동안 서울 현장으로 고단한 출장이 이어졌다. 파트타임 직원에게 맡겨놓은 필름매장은 기대만큼 수익을 내지 못했지만, 시공 의뢰가 조금씩 들어오기 시작했고, 자재 매출도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상승하고 있었다.


이즈음 나는 결단을 내렸다. 서울의 확실한 단골 거래처 세 곳만 남기고, 잠재적 미수금 리스크를 안고 있는 나머지 거래업체들은 모두 과감히 정리했다. BC카드와 신한캐피탈 같은 금융사 지점들의 유리 칸막이의 에칭시트* 작업, 프랜차이즈 카페의 CI/BI 로고와 그래픽 시트 부착작업들을 주로 하고 있었다.


원주에서 홈페이지 제작과 사진 보정을 하는 커플을 만난 건 행운이었다.

전면 유리창에 '홈페이지 제작', '웹호스팅', '아기 돌 사진 보정'등의 광고용 시트 부착작업을 하면서 이 커플과 친밀한 관계가 됐다. 각각 웹과 포토샵에 능숙한 이들에게 내 디지털 연장이 되어줄 '인테리어 웹사이트'제작을 의뢰했다.

당시 막 유행하기 시작한 플래시 기법으로 메인 페이지를 구축하고, 검색 광고를 등록했을 때, '인테리어' 키워드로 검색되는 지역 내 사이트는 대여섯 개에 불과했다.


몇 군데 현장에서 필름 시공을 하며 목수 반장, 단종업체 사장들과 연락처를 교환했다. 시공업체 기반이 필요했다. 현지인테리어업체들의 현장 관리력과 디자인 구현, 시공 수준을 관찰했다.

강남에서 데뷔한, 서울 물 좀 먹은 인테리어러에게 이곳은 해볼 만한 시장이라는, 여기서 뭔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꿈틀거리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웹디자이너에게 현장에서 주문받은 간판 시안 제작과 로고 디자인 아웃소싱 했다. 각 건들에 시안 디자인비를 지급하는 것으로 그들에게는 당장은 얼마 되지 않지만 추후의 부가적인 수입을 기대할 수 있었고, 나에게는 든든한 디지털협력자가 생긴 것이다.


웹사이트를 통해 브랜드 주얼리숍 인테리어 공사문의가 들어왔다. 3D모델링 주문을 받았고 내 협업자는 3일 만에 스케치업프로그램을 마스터했다. 인테리어를 모르는 '웹마스터'와 나란히 앉아 3일 내내 모델링하고 렌더링을 돌렸다. 그럴듯한 결과물이 나왔고 공사 계약이 성사됐다.


'모방은 위대한 창조를 낳는다.'

내 안의 칸트는 압구정, 홍대, 이대의 최신 인테리어 스타일을 각 현장에 맞게 재해석하라고 속삭였다.

'포니테일' 같은 해외 잡지에서 인테리어 콘셉트를 가져오고, 특정 영문 폰트를 조금 비틀어 간판 시안을 만들었다.

카페, 플라워숍, 헤어숍. 인테리어공사 문의가 하나 둘 이어졌다.

인터넷에서 핫하다는 트렌디한 매장의 레퍼런스 이미지를 받아, 몇 가지 아이템을 변형해 점주들의 반응을 이끌어 냈다.


무조건 예쁘기만 한 공간보다는, 이 매장에서 직접적인 매출로 이어질 잠재구매 고객들의 눈높이에 맞는 디자인을 제안했다. 십수 권의 마케팅 서적으로 무장한 후에 예비 점주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요소들을 극대화하며, 시장의 소비자를 겨냥했다. 상업 인테리어 분야에서 비주얼 머천다이징(VMD)기법 까지 접목하는 전문가로 성장하고 있었다.


헤어숍 공사에서는 새라헤어녀와 작업했던 공사경험이 빛을 발했다. 샴푸대 배수 설비는 어느덧 중급경력자의 내공으로 처리했고, 여자 손님들의 입소문이 가장 많이 일어나는 공간이기에 쿠션의자 하나, 냉난방기 바람방향에도 심혈을 기울여 배치했다.


학원 공사 견적 상담 때는 60㎡ 이상의 면적 확보, 각 강의실 최소 10㎡, 청소년보호법에 따른 '시창'과 비상 대피 안내도 의무 설치등, 소방법규와 교육청 인가 규정을 명확히 브리핑하는 것만으로도 원장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


확장 이전해야 하는 영어학원에 견적 방문을 한 적이 있었다. 공사상담 중 지나가는 대화에 참여한 원어민 강사와 슬랭*을 석어 몇 마디 프리토킹*을 주고받았다. 웃으며 너스레를 떠는 그녀에겐 반가운 고향 아재의 사투리 같은 친근함 이였으리라. 이로 인해 영어학원 원장에게 나는 글로벌 감각(?)을 겸비한 인테리어 전문가로 인식됐을지도 모른다.


26살 때였다. 관세청 사거리에 '포스코 휼스'라는 포스코 계열사, 얼떨결에 1차 서류심사에 합격해 면접을 보러 갔고, 나를 포함한 50여 명은 회사소개 동영상을 보며 대기하고 있었다. 나는 거의 끝번호였다.

면접 순번을 기다리는 동안 비슷한 또래의 참가자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전문대 출신은 나뿐인 듯했다. 미루어 보아 뭔가 내가 특별한 우위에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져 긴장되는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다 되어서야 호명된다. "역시 주인공은 마지막에 등장하는 법이지"


면접관은 상무이사였다. 한 여름 장마철 빗속을 가르며 혼자 자전거를 타고 대관령을 넘어 강릉으로 향했던 자기소개서 스토리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가볍게 가족관계를 묻고 답한 후, 자전거 이야기로 두 남자의 분위기는 달아올랐다.

머릿속으로 첫 급여 액수를 세고 있을 때쯤이었다.


사이클맨은 투명유리 응접 테이블 밑에 있던 '더 코리아 헤럴드' 신문을 꺼내 펼친 후에 형광펜으로 표시된 사설란을 읽고 번역해 달라 주문했다. 그 순간 바로 내 앞전에서 면접을 마치고 나오던 이의 상기된 얼굴이 떠올랐다.


구어체로 서술된 미시경제학 관련 논평. 심장이 쿵쾅거렸다. 해석은커녕 나는 영문 한 줄도 제대로 읽어 내려가지 못했다.


After a while he said,

"어머니가 대학 등록금 다 보내주시고, 아르바이트 한 번 안 하고 학교를 다녔는데 너무한 거 아니냐."

"어딜 가서 면접을 보더라도 글로벌 시대의 인재는 영어가 필수다. 그 어디라도 면접을 보러 갈 때는 영어 실력은 갖추고 가라."


호의적이고 인자해 보이는 그의 조언과 위로가 섞인 책망을 듣고 나와야 했다. 내 얼굴은 붉그락거렸고, 졸업식 이후로 처음 꺼내 입었던 내 양복은 초라해 보이기만 했다. 도망치듯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계단실까지 쫓아와 하얀 면접비 봉투를 건넨 여직원의 눈도 마주하지 못한 채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 충격적인 사건은 그로부터 얼마 후 내가 무작정 호주로 떠나게 된 계기가 되었다.

1년 이상 현지에 머물며 영어를 마스터할 계획이었지만 고작 3개월 만에 돌아왔다. 그래도 영어권 원어민들과 웃고 떠들 정도의 회화 수준은 됐다.


그 영어학원 원장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인테리어 법규 전문가와 공사 계약을 했다. 이후로 공사소개도 받게 됐다. 물론 영어 몇 마디 했다고 계약이 된 건 아니겠지만, 글로벌기업 면접관의 통찰력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렇게 난 제2의 텃밭에 안착하고 있었다.



*에칭시트 : 유리면의 반투명 시선차단 시트, 안개무늬시트라고도한다.

*슬랭 : Slang , 은어/속어

*프리토킹 : free convers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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