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내 첫 인테리어 현장인 마사지샵은 12월에 오픈을 했다. '인테리어공사'는 무사히 끝났지만 남아 있는 공사잔금은 아직 입금 되지 않고 있었다. 같이 일을 벌인 동업자선배가 나머지 사업자금을 조달 하지 못해 조금 지체될 거라고 했지만 벌써 2주가 넘어가고 있었다. 동업은 늘 혼자결정 하지 않아도 되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 목수며 도배며 아직 시공비를 못주고 있는 상황에 들뜬 연말분위기에도 마음은 즐겁지 않다.
그로부터 얼마쯤 지났을 때에는 엎친데 덮친 격으로 동절기소방점검에 걸려 보완이 될 때까지 영업이 잠시중단된다고 했다. 마사지샆은 지하였고 칸막이가 천장까지 올라간 상태는 아니지만 일정면적을 초과하는 소방점검대상건물이었다. 다중이용시설로 영업신고를 해 소방시설을 갖추어야 했던 것이다.
다중이용시설에 관한 소방법적용으로 몇 가지 소방시설을 겸비해야 했다. 친구는 내게 지급해 줄 예산으로 먼저 소방설비에 돈을 써야 했고 내가 받을 잔금은 아직도 '붕' 떠있는 상태. 난 지급해야 할 시공비에 점점압박 받고 있었다. 이런 상황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이기도 했다.
필름현장에서 나온 돈으로 각 시공비를 지급했고, 그로부터 1달 후 공사잔금을 정산받았다.
인테리어라는 것이 단순히 예쁘게 만드는 것을 넘어 법규와 자금 흐름까지 책임져야 하는 실전임을 느꼈다.
이때는 강남 곳곳에 소위 '어둠의 마사지샵'이 성행하던 시기였다.
다행히 샵은 문전성시를 이뤘고, 돈 냄새를 맡는 어둠의 세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곳을 드나들던 유흥업계 인물들이 친구의 소개를 타고 줄줄이 전화를 걸어왔다. 몇몇 미심쩍은 제안을 걷어내고 나니, 사당역 사거리 뒷골목 지하의 낡은 카페를 '비즈니스룸'으로 탈바꿈시키는 현장이 내 손에 쥐어졌다.
페라가모를 신고 프라다 가죽 손가방을 겨드랑이에 낀 야심 찬 '업주'에게 현장 개요를 전달받는다. 친구는 그를 중계동에서 지분을 가지고 비즈니스룸사업을 운영하는 신사장이라 소개했다. 돈 좀 있는 양반이라 지난번처럼 공사비가 지연되는 일은 없을 거라 거듭강조했다.
사당사거리 뒷골목 지하현장, 벽 하단에 낙송합판이 둘러져 있었는데 그위엔 반투명 바니쉬가 산화돼 있었고 환기시설은 멈춰져 몇 군데 곰팡이가 자라고 있었다.
무늬목으로 마감된 카운터 아웃코너부엔 MDF가 으스러져 있고 면치가공된 5T 유리아래 상판은 위스키를 접대하던 영업맨들의 명함으로 장식돼 있었다. 먼지 쌓인 금장코팅 체인에 매달려 있는 샹들리에는 전구 2개가 나가 어두운 이곳에, 룸 8개와 탕비실, 간이샤워시설을 만들어야 했다. 지하라 특히 배수시설에 신경 써야 하는 현장이었다.
내게 '설비공사'는 익숙하지 않은 공정이었다. 보통 내가 각 현장에 갈 때에는 철거가 끝나고 배관설비관로 포설 후 목수가 투입되고 나서부터 현장에 가기 때문에 이런 설비공사는 자주 접할 수 없는 공정이었다.
공사를 맡겨준 '페라가모'보다 더 전문가라 할 수도 없을 정도. 괜스레 아는 척할 필요는 없었다. 괜찮은 설비업자를 불러 배수의 해법과 적당한 견적을 받아 처리하면 그만인 것이다. 이 지하 배수설비를 잘 풀어낼 인물을 소개받았다. 엄청난 내공이 묻어나는 설비사장은 자신의 오랜 노하우에 입에 침이 마를 정도로 강의를 시작했다. 2시간짜리 무료 강의가 끝났을 때 난 이미 급배수설비 '중급'이 되어 있었다. 현장은 역시 최고의 학교였다.
이렇게 나의 두 번째 인테리어현장도 지하. 쾌쾌한 곰팡이 냄새가 어느새 익숙해지기 시작하는 데뷔전을 막 치른 인테리어쟁이가 돼 가고 있었다.
평소 손발이 잘 맞았던 목공반장을 부른다. 소송*한치두치각재로 가벽틀을 짜고 '타카타카', 아직 내가 '초짜' 인걸 다 알고 있으니 목공반장은 내게 칸막이의 내경과 외경, 문 열리는 방향등, 박동이 포토샵으로 그려놓은 평면도를 수정해 준다. 목공반장이 조공으로 데려온 조카와 그의 친구의 눈에는 내가 인테리어 하는 사람으로 보일까.
3년 전 필름으로 입문했을때의 내 모습이 겹쳐 보여 묘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은 추리닝 바지를 입고 있지만 이들도 몇 년 지나면 에이징 된 못주머니를 허리에 두르고 한대가리를 받는 어엿한 목수가 되 있을 것이다.
여느 때와 같이 목수가 MDF판재를 켜 석고보드 위에 붙이면 약간의 텀을 두고 따라가며 퍼티를 잡고 프라이머를 바르고 바탕처리를 하며 공정을 따라간다. 현장의 간단한 관리업무를 보고, 필름 피부착면에 밑작업을 해놓으면 박동과 개구리가 작업 중인 필름현장을 마치고 와 마감래핑만 하면 된다. 방염처리를 해야 하는 이런 '다중이용시설/유흥시설'은 필름공정이 필수다.
내가 인테리어현장을 맡고 필름파트를 직접 처리하니 일정도 탄력 있게 조정할 수 있다. 내 인테리어현장에서만 필름을 할 수 없지만 이는 원청인 고객에게 직접 받는 소비자단가(BtoC)이기에 수익도 좋았다.
도배 역시 소방규정에 맞는 방염벽지를 써야 하는데 일반벽지보다 40%가량 더 비싸다. 반면 합지는 수성인쇄방식 이다. 화재발생 시 불에 타도 유독가스발생이 덜한 성질을 가지고 있어 소방규정을 충족한다. 장폭합지는 겹침시공 시 세로 이음새가 있지만 조도가 낮은 '룸'에서는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룸살롱의 복도상단에는 세련돼 보이는 딥그린톤 수용성페인트로 마감했다. 이 도료는 무기질안료로 만들어져 아크릴수지계열이나 에나멜 래커 같은 화학성이 없다.
인테리어공사에서 적용해야 할 소방법규정 에는 방염인증자재사용과 필증구비, 복도는 두 사람이 마주쳐 지나갈 수 있는 폭 1200mm 이상을 확보하면 되고 문 열리는 방향은 화재대피 시 밀고 나갈 수 있게 바깥쪽으로 열리게 설치하면 된다. 방염의 성격은 불에 타지마라는 불연재가 아니라 화재로 인한 연소 시 유독가스를 배출하지 않으면 충족되는 거라 보면 된다.
뱅뱅사거리에서 소방법을 익혔으니 이 정도는 기본 아니겠는가. 도배마감 후 5일 만에 벽지가 마른다.
도배사는 이렇게 습한 현장에서는 하자가 발생할 수 있다고 설파했다. 콘센트와 스위치, 다운라이트 조명설치가 완료되고 클래식한 체리톤의 카운터도 메이플패턴의 필름으로 말끔히 단장. 샹들리에가 달려 있던 곳엔 누가 봐도 2000년대 강남의 '룸'으로 보일법한 모던한 스틸와이어 펜던트가 설치되었다.
착수금 30%를 받고 시작된 공사는 4주 만에 완공이 되어 공사잔금을 받는 과정만 남았다. '페라가모'는 내가 소개한 마석 가구공장에서 온 인조가죽소파와 테이블과 디스플레이할 비품들을 배치하며 오픈을 서둘렀고, 순조로웠다. 각실의 냉난방기와 간판설치를 마치고 나서 오픈직후에 공사잔금을 치러준다는 약속을 받고 몇 군데 잔손보기 하고 마무리된 현장을 나왔다. 추리닝 목수조카와 담배를 피우던 입구에는 분홍 리본을 두른 개업화환이 몇 개 놓여 있었다.
오픈다음날 '비지네스룸'을 찾아갔다.
벽지에는 곰팡이가 피어오르고 있었고 유쾌하지 않은 정체 모를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하수배관을 점검했는데 1층에 있는 삼겹살집의 유분슬러지가 쌓여가고 있었던 것이다. 다행히 구조적 문제의 원인을 이해한 건물주는 나를 설비메커니즘중급으로 만들어준 설비사장에게 의뢰해 침전물들을 처리했다.
벽지는 환기가 안된 것이 화근이었다 '페라가모'의 주장은 그랬다. 인테리어공사 시 환기에 대해 미리 문제를 파악해 대비했어야 하는데 그 책임소재는 나에게 있다는 것이다. 난 입구와 반대 방향에 흡배기구를 설치하고 식초와 베이킹소다를 물로 희석해 벽지에 스프레잉 하고 닦아 냈다. 오픈한 지 2주가 지나서야 잔금을 받았는데, 그는 이 사안을 문제 삼아 공사비를 깎고자 했지만 그럴 명분이 없다는 걸 체념한 듯 더 이상의 구실을 찾지 못했다.
그래도 '페라가모의 룸살롱'에서 예상 못한 수확이 있었다. 두 번이나 공사마무리 할 때의 고초를 겪고 나니 '인테리어나까마' 일은 나하고 안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름만 하고 다니는 게 얼마나 수월하고 편한 일인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회의에 빠져 1층 삼겹살집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있었다.
그때, 식당 사장이 옆에서 계산하던 손님에게 나를 가리켰다. "이 사람이 아래층 공사한 인테리어사장인데, 일 잘해."
인테리어 공사기간 내내 시공팀들과 점심을 먹으러 드나든 탓에, 그간의 식대에 답례라도 하려는 듯했다. 아래층 공사 스토리를 훤히 아는 식당 사장에게 나는, 무상으로 처리하지 않아도 될 부분까지 세심히 살펴주는 ‘젊고 착한 인테리어 업자’로 보일 뿐이다.
그녀는 압구정 새라미용실 출신 디자이너로, 곧 개업할 미용실 공사의 '인테리어 업자'를 찾고 있었다. 망설이다 건넨 내 명함엔 '인테리어 필름'이라고 적혀 있었지만, 식당 사장님의 보증 덕분인지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그렇게 세 번째 현장, 공사를 하게 된다. 내 어깨 위로 '인테리어 업자'라는 새로운 무게가 조금씩, 하지만 확실하게 얹히고 있었다.
*소송 : 소련 소나무, 추운 환경에서 천천히 자라 강도가 좋은 소나무 심재.
미송은 미국소나무, 무른 특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