뱅뱅사거리

by 인디에이전트

박동은 키 188에 '모델라인'에서 섭외가 들어올 정도로 잘생긴 얼굴의 필름쟁이다. 전엔 웹마스터급은 아니어도 IT분야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그가 노다다 판으로 뛰어든 것이다. 그는 가는 현장마다 사다리가 필요 없었으며 여자들 뿐만 아니라 아저씨들에게도 눈길의 대상이었다.

우리 팀 얼굴마담도 되는 역할에. 하지만 신은 공평했다 길쭉한 허리는 이미 디스크 수술을 두 번 받았었고 난 그의 세 번째 수술을 위해 입원해 있는 동안 보호자이자 간병인으로서 분당 '제생병원' 환자식을 같이 먹고 있었다. 전신마취를 해야 하는데 보호자가 없으면 안 되는 상황, 광주 부모님껜 걱정을 끼칠까 알리지 않고 싶어 했다.


수술비를 지원했다. 일을 억지로 시키지도 않았는데 박동은 효율성을 추종하는 사나이로 변모했으니까 그건 내 책임도 있으니까....


개구리는 필름쟁이로서 정점에 있었고 나이는 어리지만 일 머리가 빨랐다. 우린 매 현장들을 나름의 잣대로 품평하는 걸 즐겼다.

어디 현장은 "와 멋있어 이런 자재를 그렇게 쓰다니", "그 현장은 소장이 영 몰라서 일이 뒤죽박죽이네", 하다 보면 인테리어 현장파악에 그럴싸한 일가견이 생긴다.


우리와 같이 현장에 있는 금속팀과 목공, 타일은 거의 세트 수준이다. 한 현장에 있다 보면 서로 시공범위에 부대끼며 민감해지기도 하지만 그들의 공정이 선행되어야 우리가 한 꺼풀씩 옷을 입혀나가는 마감이 나온다.

3년여를 이렇게 보내다 보니 그동안 현장메모 했던 종이들은 사라졌어도 머릿속에 만큼은 이미지로 각인되어 데이터로 쌓이게 된다. 자연스럽게 목공과 금속, 타일, 도배, 조명, 같은 공정들이 눈에 익는다.


"인테리어 별거 아니네"...


허리디스크가 고질인 박동과 아직 너무 어린 개구리가 평생을 필름쟁이로 먼지 구덩이에서 살아가길 바라지 않았다.

도서관사무실에서 난 동생들의 진로가 신경 쓰였다. 나도 이 일에 오래 머물고 싶은 생각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일의 규모가 커지는 만큼 미수금은 점점 불어 났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몇몇 인테리어업체들은 시공비를 받으러 갈 사무실조차 없었다. 사실상 악성채권들이 된 셈이다. 강남, 종로의 업계 탑 10에 들어가는 인테리어회사와도 일해 왔지만 수금에 관해선 별반 다를 게 없었다.


1년 넘게 받지 못한 미수금들로 난 지급에 애를 먹고 있었다. 자재를 수급하는데도 점차 차질이 생기기 시작했고, 일하기가 버거워진다. 내게 일거리를 주었던 일부 인테리어업체 사장들은 전활 받지 않기도 했다. 나 역시 외주시공팀과 자재공급업체에 제때 지급하지 못하는 상황까지 처해진다. 돈은 그렇게 날 압박하고 있었다.


결정을 해야 했다. 박동은 성균관대 야간 평생교육원에 등록했고 , 개구리는 일과 후 전문대 야간 실내건축과를 다니게 됐다. 나 또한 웹사이트에 업종들을 업데이트하고 이제 자연스럽게'인테리어업' 세팅을 준비한다.


세미정장에 스웨이드화를 신고 현장을 검수하는 인테리어 디자이너들, 발주고객에게 이런저런 현황보고와 향후 완공될 공간을 브리핑하는 모습은 꽤나 인상적이었다.

'내 머릿속에 지우개'(2004년 개봉)에 나올 것 같은 현장소장은 4B연필로 샵드로잉*한 석고보드에 캐드도면을 붙여놓은 채 시공 전반을 훔치며 공정별 진척도를 체크한다.

뭔가 있어 보이기까지 한다. 보통 규모가 있는 현장에선 다년차 과장급이 현장소장이 되고, 그 보다 작은 현장에선 대리직함이 현장업무를 총괄하는 현장소장을 맡게 된다.

각 공정의 시공팀장들은 현장소장과 현황을 수시로 소통하고 다음에 이어질 상세일정을 공유해야 전체적인 공사의 흐름을 맞출 수 있다.


나 역시 필름파트 팀장으로서 매 현장의 소장들과 늘 소통을 해왔기에 그들의 애로 사항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들의 어려움을 잘 처리해 줘야 다시 불러 주는 것이다.

이렇게 현장마다 여러 현장소장들을 알게 되었고 그들에게 다양한 현장 노하우를 익히게 된다.


오히려 그들은 한 달에 한 현장 정도를 관리하지만 필름공정만 했던 나는 한 달에 열 군데 이상의 상업시설과 아파트등 다른 여러 현장들을 커버했다. 경력은 짧아도 현장경험은 내가 훨씬 많은 셈이다. 같은 공정인데도 순서와 프로세스를 달리하면 효율을 올리는 경우도 있었다. 이것은 절대 어디서도 배우기 어려운 직접적인 학습효과 이기도 했다.


친구들과 지인들이 요즘 뭐 하냐 물으면 '인테리어필름' 얘기를 한다. 그 후에 꼭 되묻는 말이 있는데 "인테리어 하는 거냐"라는 말이다. "사진을 한다는 거야?" 할 땐 매번 설명하는 게 곤욕이다.

하물며 일부 인테리어업계에 있는 사람들도 잘 모르는 분야이기도 했으니 - 요새도 '필름' 하면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 그럴 바엔 생각 없이 "인테리어 해"라고 했던 적이 있었는데

뱅뱅사거리에 마사지삽 개업을 준비하는 친구가 '인테리어공사'를 의뢰한다. 본의 아니게 거짓말을 한 건지, 아니면 내가 그렇게 보였는지는 몰라도, 아무튼 난 이 '공사'를 하기로 한다.




*샵드로잉 : 실제 적용할 현장상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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