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T 커터와 옥탑방의 여름

by 인디에이전트

2001년 여름.

나는 돈이 필요했다. 이 일은 순전히 돈으로부터의 시작이었다. 시간이 있었고 당시 내 피폐해진 정신을 어디론가 도피시킬 대상이 필요했는데 그러기 위해선 몰입할 "일"이 있어야 했다. 그 두 가지 교집합에 딱 맞아떨어진 것이 '인테리어필름'이라는 현장시공 일이었다.


8월 15일 광복절. 보통은 태극기를 달고 쉬는 빨간 날, 나는 마포역 근처 태영건설 아파트 신축현장에 첫발을 디뎠다. 현장은 찜통이었고 타설 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콘크리트가 뿜어내는 습도와 한여름의 열기가 뒤엉켜 숨이 턱 막혔다. 나를 포함해 피고용의 기회를 주신 사장님의 동생인 부장님, 그의 고향 후배 과장님, 이렇게 셋이 현장에 투입되었다. 돌이켜 보면 비교적 단순한 시공임에도 세 사람이 투입되었다는 건 나를 비롯한 멤버들이 다 초짜라는 반증임에 충분했다. 오후 2시쯤이 되자 그 둘은 나를 배려해 퇴근해도 좋다고 했다. 막상 퇴근해도 별다른 '몰입'거리가 없었던 지라 현장에 머물며 눈짓으로나마 시공하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아니나 다를까 마치 내가 엄청난 열의가 있는 사람이 되어 있음은 뭔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거의 없었다. 오히려 내가 그 수준 있는 실력을 알게 될까 피하는 눈치였는데 난 거기에 찬물을 끼얹은 샘이 되고 말았다.

그들은 내 열의(?)를 부담스러워했지만 결국 난 첫날부터 할 일이 없어 바로 "필름'을 붙이며 현장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레이스 6 밴을 타고 강변북로를 올라탈 때쯤엔 아직 더운 습기로 가득했다 영동대교를 건너 좌회전, 청담역에 내려 건대입구로 향하는 퇴근길. 아직 해는 중천에 떠 있는데, 내 마음은 지하 3층보다 어두웠다. 4층 옥탑방, 나름 전망은 좋았지만 그 방에 누우면, 우울이라는 물질이 천장에서 뚝뚝 떨어지는 것 같았다. 이제부터는 '일'로 나마 슬프리만큼 우울한 감정을 걷어 낼 수 있으리라 되뇌었다.


다음 날, 코엑스 지하 '반디 앤 루니스' 서점 내에 있는 문구점으로 향했다. 현장에서 쓸 개인 공구는 직접 사라고 했다. 9,000원, 당시에도 커터칼치곤 꽤 비싼 값을 주고 산 일제 'NT 커터'. 그 차갑고 날카로운 금속성이 묘하게 마음에 들었다. 이 칼 한 자루가 내 밥벌이가 된다. 문구용 칼과는 차원이 다른 묵직한 그립감. 그 칼을 손에 쥐고 미래를 다짐했다.


당시 '인테리어 필름'은 인테리어현장에 출시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생소한 자재였고, 그에 따른 시공법 역시 현장에 막 도입되던 초창기였다. 페인트와 달리 방염 인증이 쉽고 MDF*에 붙이면 원목처럼 변하는 이 신소재는 현장에서 마법 같은 취급을 받았다. 덕분에 우리는 먼지 뒤집어쓰는 현장작업자가 아니라, 마치 첨단소재산업에 종사하는 엔지니어 대우를 받곤 했다. 물론 나는 엔지니어 행세보다는 매달 들어오는 월급이 더 중요했다. 30만 원 월세를 내고, 밀린 카드값을 막고, 소줏값을 더하면 로그아웃되는 계좌. 그래도 '출근'할 곳이 있고 '퇴근'이라는 노동 후의 위안이 있다는 사실이 나를 간신히 지탱하게 했다.


3개월 후 100만 원, 6개월 후 120만 원. 회사는 나름 비전 있는 급여를 제시했다. 1년만 버티면 기술자가 되어 2~300만 원을 벌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내겐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나는 뭐든 오래 진득하게 하는 타입이 아니었다.

입사 6개월을 꽉 채우기 전, 나는 독립을 결심한다. 월급 120만 원. 이 돈으로는 내 개인경제의 '맨징'도 불가능했다. 당시 지인이 건넨 암웨이 테이프 강연이 내 머릿속에 맴돌았다.


"30대엔 30평 아파트와 3000cc 차, 40대엔 40평..."


야심에 찬 그 연사의 테이프 강연이 내게 자각으로 꽂혔다. 대기업 과장님이나 돼야 받을 것 같은 월 300만 원. 나 역시 그 목표로 독립군이 되기로 한다. 나는 그 정도의 돈이 필요했다. 아니, 벌어야만 했다. 자가동기부여를 위해 난 월급 120만 원을 받을 때에도 항상 내 신용카드 결제액을 포함한 지출을 월급보다 많게 설정했다. 어디선가 "소비가 생산을 창출한다"란 글을 읽고선 그 이론은 나만의 경제철학이 되었다. 쓸 돈이 모자라면, 정해진 월급여를 받는 생활을 그만둘 수밖에 없을 것이고, 어떻게든 벌게 될 것이라는 배수진. 그것은 28살 청년의 객기이자, 보다 나은 삶을 위한 발버둥이었다.


"나가지 마라. 아직 때가 아니다." 모두가 말렸다. 하지만 내겐 비효율적이라 생각한 '월급쟁이' 생활을 끝내기 위해 사표를 던졌다. 퇴사 기념으로 은마아파트 상가에서 '축 발전'이 새겨진 금장 반신거울을 사무실에 헌사하고, 오래된 중고 엘란트라 한 대를 샀다. 트렁크에는 핸디코트 빈말 통 하나와 안전모, 그리고 손때 묻은 NT 커터가 든 작은 공구가방을 실었다.


세상은 바야흐로 '닷컴'의 시대였다. 전산과 출신이지만 웹사이트 구축은 전문가에게 맡겨야 했다. 옥수동 상가를 개조한 사무실 복판에서 맥심커피믹스를 건네는 웹에이전트에게 40만 원을 주고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검색 엔진 최적화(SEO) 따윈 몰랐다. 명함 하단에 'www'하나는 박혀 있어야 그럴듯해 보이는 시대였으니까.


을지로에서 인쇄업을 하다가 새로운 일거리를 찾아온 '남가좌동 형님'을 보조로 채용했다. 그렇게 난 사장이 되었다. 내 첫 달 수익목표는 월 300만 원.

트렁크에 실린 NT 커터 날처럼, 내 욕망은 날카롭게 번들거리고 있었다.


이것이 내 24년 인테리어 인생의 시작이었다.





*MDF : 나무 톱밥을 잘게 부숴 접착제와 섞어 압축한 가공 목재로, 인테리어, 가구 제작에 널리 쓰이며, 습기에 약해 필름 마감이나 방수 처리가 필요한 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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