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후, 과거의 인연들로부터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전 직장에서 관리하던 외주 팀장들은 자신들이 수주한 현장의 공사물량 일부를 내게 넘겼다. 초반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 반면 이렇게 계속 하도급을 받고 움직 일순 없었다. 내가 추구하는 사업의 방향은 누군가의 하청 업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시장과 대면하는 직접적인 '수주'를 구축하는 데 있었기 때문이다.
웹사이트가 열였고 조금씩 트래픽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인테리어업체들은 아직 생소한 필름공정을 처리해 줄 업체가 필요했는데 나는 결과물로 신뢰에 보답했다. 소개를 받은 업체들도 생겨나기 시작했고, 직접 처리하지 못하는 일정은 외주시공팀에게 아웃소싱 했다. 점차 필름업체의 하청일 보다 인테리어업체의 오더를 직접 받게 되는 패턴이 자리를 잡아가게 된다.
'박동'과 '개구리'를 다시 만난 건 2002 한일 월드컵이 열리던 해 봄이었다. 전 직장에서 짧은 인연이 다였지만 나를 잘 따라주던 동생들. 그들은 각자의 선택으로 독립을 결정했고, 한 달여 시간을 보내다 날 찾아온 것이다. 고심 끝에 같이 일하기로 결정한다. 기본급은 얼마 되지 않지만 내 원칙은 일 하는 만큼 지급하는 '컨추렉'(contract)방식 이었다 이 제안으로 효율은 기대이상의 수준으로 향상되었다. 아침에는 교통체증이 심한 러시아워를 피해 좀 늦게 현장에 도착하곤 했다. 대신 타 공정팀이 퇴근한 아무도 없는 조용한 현장에서 몰입할 수 있는 방식이 훨씬 더 생산적이었다 - 난 아침형 인간이 아니다 - "오후 6시에 일 마칠까? 아니면 8시까지 하고 삼겹살 먹을까?" 하면 다들 후자를 선택했다.
내가 독립하기로 결심하게 된 건, 내 소득과 직결되는 효율성에 회의가 들기 시작하면서부터다. 그건 초보를 면하며 업무의 시야가 넓어져서 그런 거 일수도 있다. 하지만 일을 더 많이 잘해도,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더라도 그 월급은 고정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그 팀은 유의미한 성과를 내야 하는 동기가 약해진다. 물론 돈과 효율성으로만 다 책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갇혀있는 업무 구조에선 자기 능력의 70% 밖에 성능을 내지 못한다. 내게 그것은 적합하지 않았다. 기본급은 적지만 일하는 만큼 지급하는 시스템은 동생들에게도 엄청난 효율과 잠재력을 끌어내기에 충분했다.
1999년 10월.
나는 케언즈 공항에 도착했다. 현금 30만 원 외에 믿을만한 다른 자산은 '영어실력'이었는데 삼성역 근처에서 신규오픈하는 영어회화반 홍보용 무료수업을 몇 번 받은 수준이 전부였다. 호주는 광활한 면적에 비해 인구가 적어 인건비가 유독 높은 편이었다. 여행 1주일 만에 텅 빈 여행경비를 벌기 위해 찾아간 농장에서 '컨추렉'(contract) 망고피킹 일을 했다. 박스에 수확한 망고를 담고 내 '넘버'를 붙이면 일과 후에 디렉터가 카운팅 하여 정산해 주는 방식이었다.
정해진 시간 내에 일하는 만큼 벌어가는 구조 속에서 깨달았다. 명확한 보상이 담보되고 개개인이 주체로서 일할 때, 인간의 효율은 비약적으로 상승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 경험으로 나는 합리적인 배분 모델을 내 작은 조직에 이식했고 그것은 동생들에게 단순한 임금 이상의 만족감을 안겨 주었다.
이게 효율적이라 생각했다.
이제 내 순수입은 월평균 1000만 원을 향하고 있었다. 고된 일상에서도 제일 뿌듯하고 기분 좋을 때가 동생들 페이해 줄 때다 "고생했다 씩 한번 웃자" 하면 문자로 "씩 ~~"을 보내주던 동생들, 개구리 친구 '깽'도 울산에서 올라와 합세한다. 멤버는 5명이 됐고 교차로 구인광고로 2명의 보조를 더 구해 빌드업 완료상태,
이제는 만방으로 '수주계약'을 따내야 한다.
일정이 없는 날은 사무실로 출근한다. 내 사무실은 '광진정보도서관'이다. 평일 오전 9시에 모여 마케팅 관련책과 자기 계발 도서를 읽게 하는 게 첫 업무다. 흉내만 냈지만 10시에 모여 5분 회의, 12시에 구내식당 점심을 먹고 오후 2시 전략회의를 마치면 다들 퇴근이다.
난 도서관 파다. 쓸만한 사양의 PC와 책들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학식' 분위기 나는 스테인레스 식판에 담긴 점심도 먹을 수 있으니 이만한 곳이 없다. 지금도 가끔 강변북로를 타고다가 여길 보면 반갑기 그지없다. 도서관 2층, 창을 가득 매운 한강은 고단한 하루를 보낸 나를 말없이 품어주는 것 같았다. 잠시 마음을 놓아도 좋다는 위로의 풍경. 그 평온함과 현장의 치열함 사이,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보낸 시간은 달콤했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내 마음속에는 필름 1 회베*로는 다 채울 수 없는 공간의 밑그림이 그려지고 있었다. 그리고 설렘임과 동시에 내가 마주해야 할 또 다른 시작이 기다리고 있었다.
*회베 : 제곱미터의 현장용어 / m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