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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류아 Feb 01. 2019

독백1 : 글의 탄생은 참 신기해

어느 날 녹음한 중얼거림, 첫 번째.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참 신기해요 뭐가 신기하냐면, 어.. 내가 쓴 글을 보면서, '와 이거 어떻게 썼지?' 이런 순간이 되게 많거든요? 삶도 마찬가진 거 같애요. 지금 이 당시에는, '내일 하루 어떻게 살지?', '앞으로 난 어떻게 될까?' 이랬는데, 또 어떻게어떻게 살고 있고.. 그리구.. 뒤를 돌아보면, 넘어지고 엎어질지언정 어쨌든 잘 살아와서 지금이 있는 거고, 또 미래도 있을 거고.

 마찬가지로 글을 한 편 한 편 쓰기 전에, 쓰고 나면. 어, 다음에는 글을 쓸 수 없을 것 같은.. 모종의.. 어떤, 절망감? 부담감에 사로잡히기도 해요. 제가 글 쓰는 주기가 워낙 길기도 하지만, 아무튼. 침묵의 시간에는, '아 이제 끝인가보다.' 하는데 또 어느 날 불현듯 심상이 밀려오고, 글을 쓰게 되고, 다듬고, 완성해서, 또 다시, '아 이게 마지막 글인가보다.' 이런 절망감 비슷한 거에 빠지기도 하고..

 그런데도 글은 계속 태어나고.. 혹은 보관되죠. 삶도 마찬가진 거 같아요. 그래서 그 신비에 참 재미가 있구요. 그래서 그 재미로 하루하루 살아가고. 뭐, 뭔소리 하는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정리해서 또 글로 하나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그럼 이만."


-2018.09.07. 저녁, 집으로 돌아가는 길. 익숙한 공원을 가로지르며.


 가끔 이런저런 이유로 녹음기를 켜고 독백을 한다. 대개는 글감이 떠올랐는데 적을 수 없는 상황에. 아니면 생각이 너무 빠르게 번져 도저히 손이 다 잡아내지 못할 때라든가, 감정을 좀 더 생생하게 잡아내고 싶을 때. 그리고 내 목소리가 어떤지 궁금해서 듣고 싶을 때(*자기가 듣는 자기 목소리는, 남들이 듣는 것과 좀 다르다. 연구로 밝혀진 사실.)등등.

 위의 독백을, 어제 집에 돌아오는 길에 다시 마주했다. 무심결에 틀었다. 저거 말고도 몇 개가 더 있었다. 무료한 차에 몰아서 하나하나 들어봤는데, 피식피식 웃음이 나왔다. 분명히 내가 녹음한 거고, 내 목소리 맞는데. 가만히 듣고 있노라면 꼭 누군가의 독백을 엿듣는 기분이 든다. '과거의 나'이기 때문일까? 바로 10분 전도 과거는 과거니까.

 한편, '나'라는 사람이 몹시 친숙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오래 전부터 알아온 친구가 곁에 있는 것처럼, 편안하다. 오랜 친구의 새로운 면을 발견한 느낌이기도 하다. 친숙한데 낯설고, 낯선데 새롭다. ... 일일히 다 묘사할 수 없다.


 그래서 독백 말미의 다짐(?)과는 달리 '정리해서 또 글로 하나 만들'지 않고 날것으로 올려본다(평소 정성 쏟는 '이미지 찾기'도 안 한다. 순수하게 언어(말과 글)만 남겨본다(단. 중간중간 '색깔 입히기'는 필요할 듯하다).  늘 하던 방식이 아니라 찜찜하다. 어색하다. 평소에는 늘 하는 '지독한 퇴고'도 안 할 거다. 그 덕에 더 찌뿌둥하다

 그렇지만 이 모습이야말로 '나'다. 고상하게 다듬고 숨기고 꾸미지 않고, 속에서 나오는 그대로의 이야기. 독백 그대로 옮겨 놓고 보니 재밌다. 글에서는 보기 힘든 단어들('그리구', '같애요', '있구요'...)이 특히 눈에 띈다. 어쩐지, 나와 좀 더 친해진 기분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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