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다시 읽다가 -십여 년이 지난 후
박민규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다시 읽고 있어. 이번이 3번째인가 그래. 읽으면 읽을수록, 주인공이 참 내 마음 같다. 경험은 다르지만, 떠안고 있는, 혹은 떠안았던- '상처의 결'은 너무나 같아. 참 신기해. 마음결이 같을 수 있다니.
소설이 세상에 나온 2009년, 나는 어찌할 바 모르고 헤맸다. 작가가 되고픈 꿈과, 과연 그게 가능할지? 의구심으로 뭉게뭉게 안개에 덮인 꿈 사이를 헤맸다. 한편, 검붉은 피가 줄줄 흐르는 마음 곳곳을 조심스레 흰색 천으로 찍어 닦고 닦고 또 닦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2010년, 너에게 '딱 네가 좋아할 소설'이라고 했던가. 이젠 기억나지 않는, '반드시 읽게끔 하는 말'을 선물로 먼저 받았다. 소설을 사랑하는 깊은 마음과 재능으로 빚은, 탁월한 언어. 그 덕에 이 소설을 만났다.
난 그 무렵 일본 작가 소설에 푹 젖어 지냈었어. 그래서일까, 한국 작가 소설은 매우 낯설었고. 박민규라는 작가도 처음이었다. 그의 독특하고 능수능란한 문장도 처음이었으며.. <~파반느> 뒤에 딸린 음악 CD라든가, 문단 파괴라든가.. 남녀 주인공의 말이 중간중간 파란색으로, 분홍색으로 자그마하게 표기됐다든가.. 너무나 새로웠다. 게다가 주인공이 '정말정말 못생긴 여자'라니. 작가 자신이 밝힌 것처럼, 이런 소설은 전무후무했다.
그러나 단순히 소재가 특이해 좋아한 건 아니었다. '상처의 결'이 너무나도 공감돼서. 또 섬세한 심리묘사와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 등이 나를 매료시켰다. 책 고르는 안목이 뛰어난 너에게 재삼 감탄했다. 몇 번이나, 말이야. 참 고마웠어, 이 소설을 소개해줘서.
십여 년이나 지나서도, 처음보다 더더욱 공감하며 이 작품을 거듭 읽을 줄은, 그때는 몰랐다. 그리고 십여 년의 세월이 지나, 이젠 연락조차 어려운- 아니, 어쩌면 불가능한, 사이가 될 줄은 더더욱 몰랐어.
삶이란 참 신기해. 십여 년이나 흘렀는데도 계속 하는 일이 있어. 반면 십여 년이나 지난 까닭에- 또 그 사이에, 관둔 일이 있어. 혹은 십여 년 뒤에도 지금과 같을 거라고, 혹은 더 나아질 거라고 자신하는 일도 있어. 네게 이 책을 추천 받고, 읽고, 독후감을 나눌 무렵은.. 자신했던 듯해. 앞으로도 계속, 우리는 메신저로 문자로 깔깔대며 대화하고, 책 이야기를 나눌 거라고. 삶을 나눌거라고 말이야. 응. 한치의 의심도 없이 믿었지.
이젠 단지 이 소설만이 홀로 남았지만..
또 다른 십여 년 뒤에도 이 책을 읽을까? 그때도 불현듯
생각나서, 편지를 쓸까? 아마 그럴 거야. 왜냐하면, 이 소설이 구석구석 내 마음을 알아줬으니까. 마치 속을 들여다본 듯, 정확하게 묘사해주었으니까. 마치 네가 내 마음을 다독여주었던 것처럼. 토닥였던 것처럼, 말이야. 살아가다 문득, 그 마음이 생각나는 순간이 있어.
너도 건강하게, 평안히 잘 지내면 좋겠다. 그러기를 항상 기원해요.
글을 마무리하기 전, 잠시 숨을 차분히 고릅니다. 새삼스레 다시 전할래요-
"이 소설, 추천해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