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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류아 Dec 07. 2018

쓰러졌다 돌아오기까지.

나만 몰랐던 기다림

지난주 금요일 저녁, 길거리에서 갑자기 쓰러졌다.

 정확히는, 쓰러졌다‘고 한다’(하나도 기억 나지 않으니, 이 표현이 정확하겠다). 정신을 차리니 내 방 침대 위. 얼굴에 덕지덕지 붙은 붕대와, 팔에 감긴 병원 팔찌. 내 이름과 병기된 ‘ER’(응급실). 정말 기억이 나지 않느냐는 가족들.

 주말 내내 안정을 취한 뒤 재차 방문한 병원에서도 같은 질문을 받았다. 그러나 진짜 기억이 나지 않았다. 금요일 저녁~토요일 오전이 통째로 사라졌다. 마치 없는 시간처럼.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여러 검사가 필요했고, 결국 입원했다.

 그런데 별 이상이 없단다. 담당 선생님도 갸우뚱 한다. 쓰러진 건 꿈이 아닌데.. 왜 그럴까. 입원 내내 가만히 내 생활을 돌아봤다. 그리고 가져온 책을 읽다 눈물이 핑 돌았다.


사람은 자기를 기다려 주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는 한 온전한 정신으로 생명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정말로, 인간의 정신은 그 육체가 쇠약한 상태에 있다 할지라도 육체를 다스릴 수 있습니다.

- 헨리 나우웬(최원준 역), <상처 입은 치유자> 中



묵직한 부담에 꽉 눌려 산 요즘.

 학교, 직장, 공동체.. 어느 한 군데 편한 곳이 없었다.

 학교는 마지막 학기라 부담이 적으나 무사히 졸업해야 한다. 직장은 취업 자체에 감사하지만, 전공과 전혀 관련 없는 분야다. 바닥부터 시작하는 한편 성과를 내야 한다. 공동체에서는 맡은 일이 많아 자잘하게 신경 쓸 게 많다. 너무 애쓴 탓도 있다.

 그리고 감정이 흐르는 사람이 있다. 오랜 시간, 애틋한 마음이 흐르고 있다. 내게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는데.. 하지만 그이는 뚜렷한 지향점이 있다. 목표를 향해 올곧게 뻗은 직선 위에, 나는 없다. 너무 슬프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단지 그의 꿈을 응원할 밖에. 한편으론 혹시 이쪽을 볼 기회가 찾아오진 않을까, 가슴 시리도록 아파하며 기다린다. 때때로 너무 힘들다.

 이 모든 부담을 안고 살았다. 일부 위험을 인지하고 미리 덜어내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그러지 못했다. 결국 내가 선택한 방법은 ‘애써 버티기’였다. ‘버티다 보면 내성, 능력이 생겨 괜찮아지겠지..’하고 말이다. 큰 오산이었다. 금요일 밤의 기절은, 삶이 위험하게 흘러간다 '구조신호' 아니었을까?

 


 병상에서 맞는 마지막 밤, 기나긴 검사를 끝내고 누웠다. 고단했다. 병실은 껌껌했다. 자리에 드는데 꼭 관 속으로 기어들어가는 섬짓한 느낌이 밀려왔다. ‘어이구. 누가 보면 중병 든 줄 알겠다!’ 애써 픽 웃어넘겼지만, 마음 깊은 데서부터 휘감는 공허는 부정할 수 없었다. 퇴원하고 돌아가면, 크고 작은 '일' 밖에 없다..


허전해서 핸드폰을 켰다. 검사 받는 동안 온 메시지와, 지난 며칠 간 받은 것을 다시 읽었다:

화면 너머로 마음이 전해져 왔다.
“검사 결과 뭐래? 이상 없더냐?”
“건강히 회복되길 기도할게.”
“무슨 일이에요.. 완전 깜짝.. 아프지마요..ㅠㅠ”
“괜찮아?”
"내일 퇴원이지~? 건강하다니 다행. 입원 하느라 미룬 만남 까먹지 말구~ 곧 봐! 보고 싶다."
“아무 이상 없으셨으면 좋겠어요.. (...) 제겐 항상 고마운 분이랍니다. 푹 쉬시구 ABR!! 절대안정하셔요ㅜㅜ”
...

 화면 너머로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자세를 바꿔 누웠다. 심장 부근에 포근한 열기가 돌았다. 덩달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입원 기간 동안 연락해준 한 사람 한 사람을 생각하다 가만히 눈을 감았다. 아아 그래. 이제 돌아가자. 많은 이들이 기다린다. 나를, 나라서, 말이야.



 자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계속 살아 있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길고 힘든 여행에서 돌아오는 사람들은 누구나 역이나 공항에서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을 찾습니다. 또한 자신이 돌아오기를 집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에게 자신의 얘기를 들려주고 싶어하며, 자신이 겪었던 고통과 즐거움의 순간들을 그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합니다.

- 헨리 나우웬(최원준 역), <상처 입은 치유자> 中


내 방, 책상 앞에 앉았다. 지난 며칠을 되돌아본다.

 쓰러진 당일, 새벽인데도 한데모여 응급실로 찾아오고, 입원 내내 간간히 안부를 묻던 친구들. 이번주 아예 푹 쉬라며 배려해주신 사장님. 마치 짠 것처럼, 정말 외롭고 힘든 순간마다 온기 서린 메시지를 보내준 지인들. 곁을 지켜준 가족들. 그리고 성심성의껏 도와주신 간호사, 의사 선생님들.. 사실 이 모든 사람들이 기다렸는데. 나만 몰랐다. 모두들 감사합니다.


저, 돌아왔어요. 많은 일이 있었답니다.

그간의 이야기, 함께 나누고 싶어요.


그리고 기다려줘서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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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메일 - Seryuah@naver.com

*모든 독자님께 열려 있습니다 ^^


사진 출처(이하 작가명): http://pixabay.com  

표지 및 마지막: "Pexels"

1번: "miktirma"

2번: "Myriams-Fotos"

3번: "StockSn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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