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 이발소 앞에 서서 참외를 깎고 목로에 앉아 막걸리를 들이키면 모두들 한결같이 친구 같은 얼굴들
- 신경림, <파장> 中
참으로 오랜만에, 친구들.동료들과 모여 한바탕 수다를 떨었다.
술 대신 커피와 비트주스.
간만에 모여 앉은 우리들.
단골카페에서, 한바탕 흥겨운 이야기판이 벌어졌다: 이야기의 공유. 감정의 교류. 삶 나눔을 통한 연대감 등등.하도 재밌어 잠시 현실을 잊을만큼 흥겹다. 틈만 나면 손에 쥐고 놓지 않던 스마트폰도 멀리하고, 각자 일터(밥벌이)에 대한 생각도 잠시 치워두고.
인심 후한 카페 사장님이 넘치게 주신 음료를 하나씩 앞에 놓은 채, 둘러 앉아 이리저리 서로를 마주했다. "왜 왔어? 이제 그만 집에 가." 대개, 누군가 익살맞게 던진 흰소리가 마중물 역할을 한다.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
"토크(Talk)하자" 는 표현을 즐겨 쓴다.
토크가 시작되면, 기억에 남는 '썰'(說), 새로운 '썰'.. 썰의 향연이 펼쳐진다. 예전에 나누었던 얘기도 다시 꺼내보니 또 새롭거나 발전(혹은 반전)되어, 끝이 없다. 시시덕거리며 계속 이어진다. 종종 누군가 열 받으면 목청을 높이기도 하지만, 이내 재기발랄한 입담과 폭소로 마무리 되며 배꼽 잡고 웃는다. 때때로 잠깐 침묵이 흐르기도 한다. 이 또한 대화의 일부. 끊어질 듯 이어질 듯, 이야기는 지속된다. 조곤조곤 때로는 급격하게, 물결친다.
'이건 이렇지 않나?', '저건 저렇지 않냐?' 서로 의견과 정보를 교환한다. '누가 요즘 이렇다던데.', '그 친구 소식 들었어?' 자리에 없는 이들의 소식도 듣는다.
"너 잘 지내니?" 다함께 안부를 묻고,"네 잘 지내요. 그런데.."모두에게생각과 마음을 나누며 답한다. 공감/신중한 조언이 오간다. 이야기가 또 생겨난다.
딱히 대단한 내용은 없다. 거창하거나 으리으리하지도 않다. 그저 우리네 사는 이야기. 누구나 경험하고 있을 그렇고 그런,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들. 그렇기에 더욱 재밌다.
'수다'로 풀어지기 시작한 '이야기 타래'는, 끝이 없을 듯 이어진다. 다들 어지간해선 집에 갈 생각이 없고, 귀는 활짝 열려 있으며 저마다 양 볼에 이야깃거리가 그득하다. 그러나 시간이 한계를 긋는다. 체감될 정도로 바깥이 제법 어둑하다. 막차 시각이 다가온다. 속절없이 파장(罷場)을 선언한다. 그러나 아쉬운 탓에, 엉거주춤 일어나는 엉덩이가 영 무겁다. 어기적어기적 밖으로 나온다.
제각각 가는 방향이 나뉜다. 아쉬움 가득 갈 길을 한 번 스윽 바라본 뒤, 글로 묘사하면 '킥킥/헤헤'이/가 어울릴 얼굴들을 하고, 힘차게 손을 흔들며 헤어진다. "잘 가요!"
다음을 기약하며.
집으로 가는 길. 느릿느릿 휘적휘적 걸으며 밤하늘에 걸린 달을 바라본다. '아아, 너 참 곱고나.' 마음속으로 감탄도 잠시. 이윽고 방금 헤어진 이들의 얼굴이 달 위에 엷게 나타났다 사라진다. 혼자 피식 웃는다. 즐거움이 온 몸에 퍼진다. '그래. 이게 사람 사는 재미 아니겠어?' 마냥 낄낄댄다. 다시만나면 또 무슨 이야기가 나올지 상상하다 재차 웃는다. 기대된다. 다음 만남이.
까다로운 격 없이, 큰 허물 없이, 속물 같은 손익계산 없이, 둘러 앉아 마냥 재잘거려도(수다 떨어도) 괜찮은 사람들이 있어 얼마나 감사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