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고 싶다

by 한가온

나는 성인이다. 것도 나라에서 정한 ‘중년’까지 얼마 남지 않은, 제법 적지 않은 나이를 먹은 성인이다.

눈에 보이는 아무 편의점에 들어가 술과 담배를 살 수도 있고, 맘만 먹으면 PC방에서 새벽 내도록 게임을 할 수도 있다. 그렇대도 청소년 보호법 따위를 근거로 들어가며 내게 어떠한 법적 제재를 가할 수 없는, 그러한 성인이다.


그러나 성인은 아니다. 내 말은, 공맹과 같이 지덕이 뛰어난 사람은 아니라는 거다. 그러니까 나이만 꽁으로 먹고, 내면은 아직도 미성숙한 그런 사람이란 말이다.

나이는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먹는 거니까, 별다른 노력이 필요하지 않다. 나이를 먹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은 없지 않은가. 그러나, 나이에 맞게 행동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노력이 필요하다.


재작년 가을 즈음이었다. 내게는 잊을 수 없는 사건이 일어났던 때다.

같은 교과를 맡았던 동료 선생님 중에는 50대 후반 정도의 베테랑 부장님이 한 분 계셨다. 나를 ‘조카’라고 칭하시곤 했던, ‘삼촌’으로서의 친근감을 보여주셨던 분이었다.

여간에, 그즈음하여 ‘삼촌’께서 이끌어가야 하는 교과 업무를 ‘조카’가 도맡아 해야 하는 일이 생겼다. 그에 대한 불만은 없었다. 도움을 주면 언젠간 도움을 받는 곳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그 조카는 당시 어딘가 미숙한 교사였기에, ‘삼촌’께 정중히 부탁드렸다.


‘부장님, 이 업무는 제가 맡아서 하고 있으니 이 부분만 부장님께서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 말과 동시에 고함이 들려왔다.


‘야! 지금 나랑 협상을 하자는 거야? 아무리 시대가 변했다지만 이건 아니지. 이게 네가 말하는 평등이야?’


그리곤, 예능 프로그램에서나 보던 바로 그 말을 뱉어버리고 말았다.


‘나 때는 선배가 시키기도 전에 후배가 먼저, 제가 하겠습니다, 했어!’


한 때는 삼촌, 조카 사이로 지내자던 그가 어째서 갑자기 삼촌이 아닌 선배가 되어 나타난 걸까.

어처구니없는 말에 기함을 한 후배는, 얼굴만 시뻘게진 채로 그 자리를 뜰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뒤, 몇몇의 선생님들은 내게 귓속말로 같은 메시지를 전해왔다.


‘이 부장님이 쌤 요즘 기분 괜찮냐고 물어보더라?’


괜찮지 않을 것도 없었기에, 또 그가 ‘후배’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기에 더더욱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보냈다.

그에게서 사과는 없었다. 나 또한 그에게 화해의 제스처를 보내지 않았고. 그와 나는 서로에게 좋지 않은 기억을 가지고 살 게 분명함에도 말이다.


며칠 전엔 머리를 하러 미용실에 갔다. 날도 따뜻해졌겠다, 분위기를 바꿔보고 싶어 요즘 유행한다는 ‘레이어드컷’에 ‘C컬펌’을 하려고.

무려 ‘수석디자이너’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분께 예약을 했고, 실제 대면한 그녀는 타이틀에는 어울리지 않게 아주 앳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런저런 설명을 마친 그녀는, 능숙하게 내 머리를 손질하기 시작했고 약 세 시간 정도 흐르고 모든 시술은 마무리되었다.

솔직히, 기대했던 스타일이 아니어서 실망이 컸다.

그녀도 거울로 이리저리 결과물을 살펴보다가 내 앞으로 와 말했다.


‘죄송합니다, 고객님께서 말씀했던 정도의 펌이 나오지 않았어요. 다시 방문해 주시면, 무료로 시술해 드릴게요.’


하며, 그 자리에서 곧장 예약을 잡아주었다.

기껏해야 20대 중후반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던 그 디자이너의 얼굴이 다시금 눈에 들어왔다.

마냥 앳되어 보이던 그 얼굴에는, 자기의 일에 대한 책임감이 묻어있었다. 실수했었을 때, 곧장 인정하고 사과하는 그 모습이야말로 ‘진짜 어른’처럼 보였다.

나보다 훨씬 어린 사람임에 틀림없는데도, 그녀는 나보다 훨씬 더 어른에 가까웠다.


집에 돌아오는 내내 그녀를 생각했다. 저렇게 시인하고 주저 없이 사과하는 데에 얼마나 많은 용기가 필요했을까, 얼마나 노력했을까.

나는 그러한 성인이 못 되었으니, 나이를 꽁으로 먹은 사람인 거다.

나이만 먹은, 그래서 동생들만 많아진 그런 사람 말고. ‘진짜 어른’이 되고 싶다.


나는 과연, 한때 ‘삼촌’이었던 그에게 다시 한번 손을 내밀 수 있을까.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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