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내게 잘못하지 않았다

by 한가온

그런 날도 있다. 내게 아무 해를 가하지 않았는데도, 그냥 사람이 싫어지는 날.

싫은 이유가 분명 존재하긴 할 거다. 다만 무어라 명쾌하게 정의하지 못할 뿐. 왜, 주는 거 없이 꼴뵈기 싫다는 사람도 있지 않은가. 그런 것과는 또 다른 문제이다.

개인의 호불호에 관한 문제라기보다는, 단지 내가 상대에게 마음을 줄 여유가 생기지 않는 데서 생기는 문제라고 봐야 조금 더 정확할 거다.

그러니까 상대의 ‘개성’까지 내가 품어주기 힘든, 그런 날을 말하는 거다.


동료 A는 감정 표현에 상당히 솔직한 사람이다. 그건 그만의 개성일 테다. 단점 혹은 결점이라고 말하지 않고, 이를 개성이라 하는 이유는 감정 표현에 솔직하다는 건 때에 따라 장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겨우 새끼손가락 만한 작은 쿠키 하나를 먹고는 기분이 너무 좋아졌다며 길거리에서 춤을 춘다든가, 상사의 ‘아재 개그’를 듣고 재미가 하나도 없다고 말해 오히려 웃음바다로 만들어 버린다든가.


그런데 그날은 내게 그 개성이,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로 다가왔었다.

화를 내기도 하고, 그러다가 눈물을 흘리며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시간이 제법 지났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그는 그 일에 대해 ‘내가 얼마나 화가 났었는지’를 여봐란듯이 큰 소리로 떠들었다.

그 며칠은 내게 정말 지옥이었다. 그가 기분이 좋을 때 발산되는 밝은 에너지가 그대로 전달되듯이, 그가 화났을 때 내뿜은 부정적인 에너지 또한 내게 고스란히 전이되었다. 그는 정말이지 그 누구보다도 진솔한 사람이었기에.

처음엔 무시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뭐랄까, 내가 무시한다고 해서 에너지까지 그대로 무시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다시 말하면, 나는 ‘listen’을 하지 않는 건 할 수 있었지만, ‘hear’까진 어찌하지 못했던 거다.

한 날은 아무것도 먹지 않았는데도, 그가 전하는 ‘화’를 내가 대신 잔뜩 먹고는 급체가 와서 빈속에 소화제를 먹은 적도 있다.


결국 그를 의도적으로 피하기 시작했다. 점심시간에도 나는 따로 밥을 먹었고, 밥을 먹은 뒤 그와 당연하게 했던 산책 또한 하지 않았다. 웬만하면 같은 공간에 있지 않으려 했다. 그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해, 나의 에너지에 온전히 집중하기 위해.


그러고 며칠이 더 지났다. 따뜻한 햇살은 얼음도 녹이고, 사람의 마음도 녹이는 온기가 있나 보다.

그즈음하여 그는 다시금 길거리에서 춤을 추기 시작했고, 내게 어제 먹은 식당에서 제일 맛있었던 메뉴가 무엇인지 말해주며 황홀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그가 제자리를 찾았으니, 나도 제자리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와 다시 식사를 했고, 식사 후엔 그와 커피 한 잔 하면서 주변 산책을 했다. 산책을 하며 종종 이런저런 영양가 없는 대화를 나누기도 했는데, 대화의 주제는 일정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주제에 따라 감정의 폭이 오르락내리락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대화 도중 그가 화를 내고 슬픈 표정을 짓기도 했다는 거다.

그런데 참 이상했다. 이제 그가 화를 내어도 이를 부정적인 에너지를 내게 전가한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이 사람은 그냥, 이 상황에서는 이런 표현을 하는 사람이다.’의 정도로만 생각되었달까.


실상 그는, 변화된 게 없었을지 모른다. 원래 감정 표현에 솔직한 사람이었으니 시간이 지나 자신이 겪은 일에 대해 감정이 무뎌진 것 또한 아닐 터.

단지 바뀐 것은 내 마음의 크기이다.

‘왜 나를 힘들게 해.’라는 생각이 들었던 건, 실제 그가 나를 힘들게 해서 내가 다친 게 아니었을 거다. 다만 내가 그를 품어줄 수 있는 마음의 그릇이 그날따라 작았던 것뿐.

그를 ‘그냥 원래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건, 그날의 나는 그의 개성까지 담아줄 수 있는 포용의 크기가 커졌던 것뿐.


그러니까, 진정으로 잘못한 사람은 그가 아니라 ‘나’였다.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