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논리학에서 가정법은 “If A, then B”의 구조를 가진다. 전건이 사실이 아닐 경우, 그 뒤에 어떤 문장이 오든 전체 문장은 참이 된다.
“크레오파트라의 코가 한 치만 낮았더라면, 역사는 바뀌었을 것이다.”
이 문장이 언제나 참인 이유는 간단하다. 그 전제 자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존재하지 않은 사실을 가정해서 하는 말은 논리적으로는 성립하지만, 삶에서는 아무것도 바꾸지 않는다.
전건 자체가 없는 사실이기에 후건에 무엇을 말해도 문장 전체는 참이기 때문이다.
나는 한때 병원 침대 위에서 ‘만약’이라는 말을 수도 없이 되뇌었다.
“만약 그때 무리를 하지 않았다면”, “만약 조금만 덜 버텼더라면.”
하지만 그 문장들은 현재의 회복을 앞당기지도, 통증을 덜어 주지도 않았다.
“만약 내가 남자였다면, 대통령이 될 재목이었을 거야.”와“만약 내가 남자였다면, 노숙자가 되었을지도 몰라.”
이 두 문장은 모두 참이다. 나는 이미 여자로 태어났기 때문이다.그래서 나는 가정법을 좋아하지 않는다.
재미로는 말할 수 있을지언정, 그 문장이 결국 나를 한 발짝도 앞으로 데려가지 못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가정법은 쉽게 튀어나온다.
“만약 내가 아프지 않았다면”,
“만약 혼자 서울에서 공부하지 않았다면”,
“만약 그를 만나지 않았다면”,
“만약 당신을 그때 만났더라면.”
그러나 그런 문장들 끝에서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미 벌어진 일들은 되돌릴 수 없고, 가정은 책임을 대신 살아 주지 않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였다. 이미 일어난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그 사실 위에서, 이제 어떻게 살 것인지를 묻고 그에 답하는 것.
그래서 나는 ‘만약’을 말하지 않기로 했다. 존재하지 않았던 삶을 상상하느라 지금의 나를 흘려보내지 않기 위해서다.
이것이 내가 선택한 삶의 태도이고, 내 삶에서만큼은 가정법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다.
여기까지는 새벽에 올린 글 원문이고 다음은 이후 다시 제글을 스스로 읽어보며 생각이 바뀐 점을 재반박한 글입니다.
이렇듯 나는 원래 가정법을 "삶의 태도로서는 좋아하지않는다는 입장"이었는데 최근 12.3내란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겪고 이후 일련의 과정들을 목도하면서 "그날 밤..내란이 성공했었더라면" 이란 가정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고,이런 가정은 내란재판에서도 유의미한 양형의 기준이 되고 있었다는 점에서 현실 삶에서 가정이라는게 무의미한것만은 아니라는것을 나 스스로재반박합니다.
댓글에 썼지만 여기에 다시옮깁니다
논리학과 삶의 태도에서 가정법의 유의미성의 차이를 드러내고자한 글이었는데 삶의 태도에서 애매해진 결론이 왜 났을까를 고민해보다보니 저의 결론은 그 차이가 바로 "나"와"우리"였던것같습니다
나의 삶에서 가정법은 무의미하지만 우리의 역사에서 가정은 역사적 사실로서 존재하기때문이죠
가정했지만 전건은 없는 사실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사실들이고 그 결과가 예측되었기에 예를들어12.3 내란이 위험했다고 우리가 판단한 것은 우리가 역사적으로 전두환 등 군부의 위로부터 내란을 역사적으로 겪은 사실이 있었고 그 결과가 어떤 사실들을 이끌어냈는지도 봐 왔기때문에 역사적 가정은 즉 "우리"의 가정은 무의미하지 않다는거죠 즉 "우리"에는 역사성 시간성이 들어가서 비록 현재에는 존재하지않는 사실일지라도 전건의 가정이 과거에는 존재한 역사적 사실이므로 문장전체는 유의미성을 획득한다는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