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작 예찬론자, 일벌이기 선수다. 그런 의미에서 시작은 ‘나의 세계가 확장되는 사건을 마주하는 일’이라고 숭고하게 정의를 해보겠다. 거창한 정의에 이어 지금부터 나의 요즘 ‘시작’들을 대서특필할 것인데, ‘애걔? 겨우?’ 같은 감탄사가 부디 나오지 않았으면 한다. 일상이나 작문을 올리는 블로그에 벌써 59개의 글을 썼다. 건조한 학습플래너 같던 다이어리는 감정 위주로 하루를 반추하는 형식으로 변했고 다꾸의 참맛을 알았다. 마음챙김 명상 수업을 들으며 벽돌 두께의 심리학 저서들을 빌려 읽었다. 출판 편집자라는 꿈이 생겨 컨셉진 에세이 캠프에 지원했고 관심 있는 공모전에 여력이 되는대로 참여하고 있다. 좋아하는 북카페의 단골손님이 되고 싶어 더 자주 방문한다. 이별의 헛헛함을 달래고자 4개의 일본 애니메이션을 섭렵하고 특히 4기까지 장편에 달하는 애니는 3주 만에 몰아보았다. 매번 신메뉴로 집밥을 차려먹는다. 나의 마음을 가장 먼저 쉬게 하고 알아주고 챙겨보는 일들을 시작했더니, 어느 날 내게 고민 상담을 하던 친구가 공감 능력이 높아진 거 같다고 말해주었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일들을 기뻐하자. 모든 일에는 배움이 있을 것이다. 나의 좌우명이다. 수많은 ‘시작’들은 예전의 나였다면 결코 하지 않았을 법한 일이다. 지난 시작이 흐지부지되었던 어떤 일에 다시 도전하는 것 역시 이전과는 분명히 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시작은 곧 새로운 나, 더 많은 나를 알아가는 일이다. 새로운 환경에 자신을 던지고 적응해가는 여러 경험이 쌓이다 보면 우리는 스스로에게 조금 더 관대해지고, 환대를 베풀게 될 것이다.
나는 추진력이 강하지만 뒷심은 약하다. 그러므로 나의 시작은 유익보단 유해한 결과를 초래했었다. 자책만 하던 시절도 있다. 그러나 이제는 시작할 용기를 가졌던 나에게 ‘다음도 있으니 괜찮아’라고 말해주고 싶다. 호기로운 그 시작으로부터 나에게 꼭 어울리는 무언가를 흡수하고 체화하는 과정이다. 모든 이들이 영글어갈 기대에 부푼 채로 기꺼이 시작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