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울리지 않는 백팩을 메고 집을 나섭니다
입학 통지서와 현실 통지표
쉰을 넘긴 나이에 방송통신대학교에 입학했을 때,
"인생 2막 개척!", "도전 정신!"
으로 비쳤겠지만, 저의 진짜 목표는 소박했습니다. '반백수' 생활의 무료함을 달래고, 20대 때 놓친 '학사모 사진' 정도였죠.
그럼에도 정작 졸업식에는 참석하지 않았으니, 그 소박한 목표마저 완전히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공부는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편의점 야간 업무를 할 때라 손님이 없는 새벽 시간에 강의를 듣고 시험공부를 했으니까요. 강의를 들으며
'아는 것이 힘'이 아니라, '아는 것은, 그동안 몰랐던 사실에 대한 미안함'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3년 6개월 뒤, 저는 자랑스러운 학위를 받았지만, 저를 둘러싼 세상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늦깎이 학위로 새 일자리를 구하는 건 여전히 쉽지 않았습니다. 저는 여전히 '반백수'였고,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주말에는 횟집 아르바이트를 하는, 겉으로 보기엔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는 생활이었습니다.
소크라테스, 현실은 모르고 자아만 알다
늦게 시작한 공부 덕분에 세상을 보는 관점은 확실히 업그레이드되었습니다. 특히 고전을 읽고 소크라테스를 접한 것이 결정적이었죠.
“너 자신을 알라!”
이 말을 소크라테스가 직접 하지 않았음을 정확히 알았지만, 동시에 그는 자신을 알기 위해 누구보다 노력한 사람이란 것도 알았습니다.
그가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면서 자신을 깨우치는 장면은 제 마음을 크게 흔들었습니다.
'50년 동안 남의 시선과 세상의 성공 기준만 바라봤는데, 정작 내 속은 텅 비어 있었구나.'
그제야 제 무지를 깨닫고 겸손해졌습니다.
물론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아는 것보다 주식 포트폴리오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라고 했으면 마이너스 60%의 수익률은 면했을 수도 있었겠죠. 하지만 철학은 철학대로 깊은 만족감을 주었습니다. 세상을 향하던 눈을 비로소 내 안으로 돌리게 된 것입니다.
바꿀 수 없는 현실과 바꿀 수 있는 나.
늦은 공부로 깨달은 가장 큰 진리는 이것입니다. 학위가 제 삶의 환경(통장 잔액, 직장)을 드라마틱하게 바꾸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을 바라보는 저의 태도와 내면의 OS(운영체제)만큼은 완전히 업그레이드되었습니다.
배움은 제게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알게 해 주었고, 더 이상 남들이 정해놓은 성공의 기준에 휘둘리지 않는 뻔뻔함(혹은 단단함)을 주었습니다. 매일매일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며 느끼는 소박한 만족감이야말로, 돈으로 살 수 없는 최고의 투자였습니다.
오늘도 여전히 '배우는 반백수'인 저는, 새로운 지식의 길을 거닐고 있습니다. 어울리지 않는 백팩을 메고 집을 나섭니다. 삶은 아직 완성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ing)'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