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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립 턴과 스노클: 제 코에 물 들어갑니다, 살려주세요

물속에서 앞 구르기 하다 깨달은 ‘삶은 고구마’이다

by 반백수 남편

평화롭던 수영장에 '중간 보스'가 등장했다.


"이제 좀 수영하는 폼 좀 나는데?"


어깨에 힘 좀 주려던 찰나, 제 수영 인생에 거대한 시련이 닥쳤습니다. 평화롭던 레인에 '플립 턴'과 '스노클'이라는 두 명의 낯선 폭군이 등장한 것이죠.


벽을 차고 멋지게 돌아나가는 '플립 턴'? 남들이 하면 올림픽인데, 제가 하면 그냥 '풀장에 빠진 통돌이 세탁기'입니다.

돌긴 돌았는데 여기가 위인지 아래인지, 천장이 바닥 같고 바닥이 천장 같은 혼돈의 카오스! 정신 차려보면 제 머리는 벽에 '쿵' 하고 박치기하고 있더군요. (수영모 안 썼으면 혹 났을 겁니다.)


빨대 하나 꽂았을 뿐인데 숨이 안 쉬어지네?


'스노클'은 또 어떻고요. 남들은 인어공주처럼 우아하게 유영하던데, 제가 끼면 영락없는 '인공호흡기 중환자' 꼴입니다.


"주인님, 지금 숨 못 쉬어서 죽이려는 겁니까?"


제 저주받은 몸뚱어리는 당장이라도 수영장 문을 박차고 도망가자고 아우성을 칩니다.

이 낯선 플라스틱 대롱 하나 때문에 제 얼굴은 홍시처럼 붉게 달아오르고, 호흡은 엉망진창, 고음 불가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물속에서 삑사리를 내며 허우적댑니다.


삶은 '고구마', 그래서 사이다가 필요해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고, 코로 물이 한 바가지 들어오는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스치더군요.


"아, 인생이나 수영이나 매한가지네."


잘 나가나 싶으면 역주행하는 것 같고, 폼 좀 잡으려 하면 머리 박고 좌절하는 게 딱 우리네 사는 꼴 아닙니까?


삶이란 게 원래 '목메는 고구마' 같은 거죠?. 퍽퍽해서 목이 턱 막히고 눈물이 핑 돌지만, 꾸역꾸역 씹어 넘기고 나면 그제야 달달함이 느껴지고 배가 부르니까요.

지금 제가 물속에서 겪는 이 '사서 고생'도 결국 내 인생의 근육을 키우는 탄수화물 아니겠습니까? (물론 김치나 사이다가 있으면 더 좋겠지만요.)


엉망진창이어도 괜찮아, 살아있으니까!


비록 지금 제 꼴이 물속에서 감전된 오징어처럼 덜컹거릴지라도, 저는 멈추지 않습니다.

도망가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고, 벽에 머리를 박더라도 일단 한 바퀴 굴러보는 것. 그 '무모한 용기'야말로 제가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몸부림이니까요.


낯설다는 건 그저 아직 안 친해서 어색한 것뿐입니다.


오늘 벽에 머리 한 번 더 박고, 물 한 모금 더 마시다 보면, 언젠가는 저도 물개까진 아니어도 물방개처럼 움직일 수 있겠죠?


오늘도 저는 익숙해지기 위해, 물속에서 힘차게 앞 구르기를 시도합니다.


"여보쇼, 수영장 벽! 내 머리통 맛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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