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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좀 못하면 어때

꿈이 없던 아이, 실리콘밸리로

by 개일

나의 중학교 첫 번째 중간고사.
바짝 긴장을 했다.


위로 4살 차이 나는 오빠가 중학생이 되고나서 본 첫 번째 시험을 시원하게 말아먹은 기억 때문이었다. 엄마에게 대판 혼나는 것을 보고 “와, 중학교는 정말 어렵구나!” 라는 생각이 드는 건 어린 나에게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엄마는 당시 초등학교 3학년이던 나에게 오빠 성적표를 외우라고 했다.

왜 외우라고 했는지 지금에서야 생각해보면, 아마 오빠에게 “동생에게 좀 더 본이 됐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이 있었던 것 아닐까 싶다.

첫째에게 모든 관심이 가있었던 것 때문인지, 아니면 나는 둘째 딸이라서 그런건지 학창 시절 내내 별다른 공부 압박은 없었다. 그냥 나에게는 누군가에게 칭찬받고 싶은 마음만 있었을 뿐.


‘수우미양가’가 골고루 들어갔던 오빠의 첫 중학교 시험 성적표.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그때 처음으로 ‘수’가 ‘뛰어날 수’의 의미로 90점 이상,
‘가’가 ‘집에나 가’라는 말이 아닌 50점대를 뜻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다섯 글자 본연의 뜻이 모두 나름대로 아름다운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은 나중에야 알았다.


수 = 뛰어날 수 > 90
우 = 우수할 우 > 80
미 = 아름다울 미 > 70
양 = 좋을 양 > 60
가 = 옳을 가 < 60


어떤 점수를 받아도 다 좋은 말뿐이니, 앞으로 한참 남은 학창 시절과 모든 학생들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말 같기도 하다.


아직까지도 ‘수우미양가’가 골고루 들어간 오빠의 중학교 첫 성적을 기억하고 있다.
어렸을 때 달달 외웠던 건 잊히지 않아서, 아마 할머니가 되어도 오빠의 성적표는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 다채로운 오빠의 성적표 속 단 하나 있었던 ‘뛰어날 수’, 그 과목은 영어였다.
오빠는 확신의 문과였고 언어 능력 하나만큼은 뛰어났다.
고작 초등학생 때 호주 유학 1년 다녀온 게 다인데, “What’s the matter”와 알파벳 정도만 겨우 떼고 왔던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나와는 달리, 오빠는 확실히 영어를 배우고 온 것 같았다.
성인이 되고 나서야 캐나다로 이민을 온 오빠는, 늦게 왔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거의 원어민 수준의 발음과 말을 구사하니.


어찌 됐든 엄마가 외우라고 했던 그 성적표는 나에게 확실히 영향이 있었던 것 같다.
중학교가 뭔가 굉장히 무서운 곳처럼 느껴졌다.
그 성적표와 함께 시작된 오빠와 부모님의 전쟁 속에서, 나는 나만큼은 혼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참고서와 교과서를 탈탈 털어 작은 글씨까지 외워버렸다. 예습과 복습을 꾸준히 하는 모범생은 아니었고, 벼락치기 스타일이라 수학 학원을 꾸준히 다닌 것 외에는 그냥 암기로 밀어붙였다.


누군가에게는 앞으로의 학창 시절을 크게 좌우할 중학교 1학년 첫 중간고사.
가물가물하지만 그때 시험을 모두 마치고 난 후의 나의 감정은
‘어려...운가?’
였다.


당시 오빠는 고등학교 2학년, 부모님과의 전쟁이 최고조로 가기 직전이라 더 긴장을 했을 텐데, 나는 생각보다 시험이 어렵다는 느낌이 없었다. 달달 외운 암기 공부법이 효과가 있었는지, 전교 1등은 아니어도 반에서 1등.


총 8개 과목 중 5개 만점, 2개 96점.
하지만 평균은 96점.
나의 평균을 끌어내린 단 하나의 과목, 영어.


80점.


유학도 잠깐이지만 다녀오고, 틈틈이 ‘리틀팍스’라는 영어 교육 영상도 보고, 오빠가 영어를 잘하니 나도 영어는 잘하겠지 하는 근거 없는 자신감 때문이었을까. 영어 공부는 딱히 하지 않았다. 조금은 해둘 걸 그랬나 보다.


나중에서야 한국의 영어 시험 또한 사회나 역사처럼 암기 과목이라는 것을 깨닫고 교과서를 달달 외워 시험을 잘 보긴 했지만, 아쉽게도 첫 시험은 아니었다.


그깟 영어 좀 못 본 게 뭐냐 싶겠지만, 어린 학생에게 첫 시험에서 단 하나의 과목을 말아먹은 경험은 생각보다 오래간다.
“난 영어를 못하는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오래 무의식에 남아 있다.


영어에 대한 다른 기억도 있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 나갔던 영어 말하기 대회.
즉석에서 말할 주제를 제비뽑기로 뽑고 바로 영어로 스피치를 해야 하는 대회였다. 정말 영어를 잘하는 아이들만 신청한 것인지, 다른 친구들은 즉석에서도 술술 잘 말했다. 지금 생각해도 놀랍다.
하지만 영어를 바로바로 내뱉지 못하는 나는 미리 스피치를 외워 갔다.


내가 뽑은 주제는 ‘알라딘을 만난다면 무슨 소원을 빌 것인가’.
나는 준비해둔 스피치를 외우고 가서,
“제가 이 주제로는 할 말이 없어서, 다른 것에 대해 말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라고 영어로 말한 뒤 준비해둔 내용을 그대로 읊었다. 절대 이길 수 없는 대회였다.


또 다른 기억은 중학교 때 참가했었던 영어 골든벨 대회. 담임선생님이 한번 나가보라고 해서 별 생각 없이 나갔다가 보기 좋게 첫 번째 문제에 탈락했었다.


문제는 "How many legs does a squid have?" 였고 중학생이던 나는 Squid가 뭔지도 몰랐었나보다. 첫번째 문제 탈락자는 나를 포함한 단 두명이었고, 사회자가 장난스럽게 왜 틀렸는지 물어보려고 나에게 다가왔다. 그렇지, 당연히 이런 문제는 틀리면 안되지. 심지어 중학생이었는데.

많이 당황했던 나는 다람쥐와 헷갈렸다고 대답했다. 나와 함께 틀린 두번째 학생도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해 틀렸다고 답하더라. 그 이후에 골든벨이 어떻게 끝났는지는 아쉽게도 기억에 없다.


그 정도로 영어는 잘할 생각도 없고, 그냥 담을 쌓았다. 교과서만 달달 외우며 어찌저찌 시험 점수만은 잘 받으면서 중학교 생활을 지냈다.


그렇게 조금 창피했던 기억과 중학교 첫 영어 성적이 더해지며, 나는 영어에는 재능이 없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중학교 졸업식 한 달 전, 캐나다로 떠났다.

이제 영어는 점수나 대회가 아니라, 그저 나의 생각과 의견을 전하는 하나의 수단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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