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기획 팀장 일기 14편
회사에서 가장 조용한 팀이면서도
가장 많은 전쟁이 스쳐 지나가는 부서가 있다.
바로 전략기획팀이다.
오늘은 ‘보이지 않는 전쟁’을
하루 종일 다루어야 했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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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팀장님, 영업이랑 생산이 또 부딪혔습니다…”
아침 9시 40분.
생산팀장이 다급하게 말문을 열었다.
“영업에서 주문 일정 조정 요청이 왔는데
현장은 도저히 소화가 안 된다는데요…
팀장님이 좀 중재해주시죠?”
5분 뒤, 영업팀장에게 연락이 왔다.
“생산에서 또 책임 안 지려고 한다는데요?
팀장님이 판단해주세요.”
말투만 다를 뿐
두 팀은 똑같이 말하고 있었다.
“우리가 맞고, 상대가 틀리다.”
그런데 전략기획팀은
진실 게임에 참여하는 팀이 아니다.
전략기획의 역할은
누가 옳은지를 가르는 게 아니라
회사 전체에 가장 적은 비용을 남기는 결론을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두 팀을 한 회의실로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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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실’만 보면 갈등은 해결되지 않는다
두 팀이 마주 앉자마자
서로의 감정이 먼저 튀어나왔다.
- “생산이 자꾸 핑계를 댄다.”
- “영업이 맨날 무리한 약속을 잡아온다.”
나는 손을 들어 조용히 말했다.
“사실부터 말하지 맙시다.
오늘은 감정부터 꺼냅시다.”
둘 다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일반적으로 회사에서는
감정을 드러내면 ‘비전문적’이라고 취급된다.
하지만 전략기획팀장은 안다.
“갈등의 진짜 원인은 데이터가 아니라 감정이다.
감정이 풀려야 비로소 데이터가 움직인다.”
30분쯤 지나자
양쪽의 감정이 조금 정리되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말을 꺼냈다.
“좋아요. 이제 감정은 정리됐으니
데이터를 다시 보죠.”
그리고 조용히 ‘제3의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영업의 일정과
생산의 물리적 제약을
모두 충족시키는
조정 버전이었다.
두 팀은 잠시 침묵하다가
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갈등의 해결은
누가 이기는지가 아니라
누가 먼저 숨을 고르느냐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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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정치적 충돌을 피하는 게 아니라 ‘재배치’하는 것
점심 직전,
재무팀장이 내 자리로 찾아왔다.
“팀장님… 생산팀에 CAPEX 줄여달라고 말 좀 해주세요.
우리가 먼저 말하면 싸움 납니다.”
재무 vs 생산의 전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재무는 비용을 줄여야 하고
생산은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둘 다 맞다.
둘 다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재무팀장님이 직접 말하지 마세요.
제가 말할게요.”
그는 놀랐다.
“그럼 생산에서 팀장님을 부담스러워할 텐데…”
나는 웃으며 답했다.
“전략기획팀장이 불편한 역할을 맡는 이유는,
어떤 팀의 ‘적’이 되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팀의 ‘중립지대’가 되기 위해서입니다.”
정치는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재배치는 가능하다.
전략기획팀이 중간에 서면
전쟁은 충돌이 아니라 조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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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팀장님, 이건 누가 잘못한 겁니까?”
오후 늦게, 대표이사 회의에 들어가자
대표가 바로 물었다.
“이 충돌은 누가 잘못한 겁니까?”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아무도 잘못하지 않았습니다.
조직 구조가 만든 충돌일 뿐입니다.”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누군가의 잘못을 찾는 순간
조직은 서로를 탓하는 루프로 빠진다.
전략기획의 본질은
잘못을 찾는 게 아니라
문제가 반복되지 않을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대표가 조용히 내 말을 들은 뒤 말했다.
“좋아요. 구조부터 다시 보죠.”
오늘 가장 중요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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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밤 10시, 다시 혼자가 된 사무실에서
모두 퇴근한 사무실에서
나는 오늘의 노트를 정리하며 적었다.
“전략은 전쟁을 없애는 기술이 아니라
전쟁이 잘못된 곳으로 번지지 않게 하는 기술이다.”
전략기획팀장은
싸움을 막는 사람이 아니라
싸움의 흐름을 바꾸는 사람이다.
조직의 갈등은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전략이 있으면 갈등은
소음이 아니라 추진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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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한 줄
전략기획자는 분쟁을 끝내는 사람이 아니라
분쟁의 방향을 바꾸는 사람이다.
전략은 결국 ‘보이지 않는 전쟁’을 다루는 기술이다.